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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Mar 04. 2021

19금 같이 보는 사이.

<19금> - 나의 이야기.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드라마가 있다. 영국 중세시대가 배경인데 꽤 수위가 높다. 애들은 온라인 수업한다고 다들 방에 들어가 있고, 라면을 하나 끓여서 TV 앞에 앉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갑자기 소녀의 방문이 열리고  "아, 뭐야 엄마!" 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야말로 '아 뭐야... 들켰다.'라는 기분이었지만, 소녀에게는 당당히 말했다.


"엄마 열아홉 살 진즉에 넘었거든. 나 봐도 돼. "

"미성년자가 집에 있잖아. 혼자 있을 때 봐야지!"

"방에서 갑자기 나올 줄 알았나... 너, 알 거 다 안다면서."

"그럼, 당연하지. 알 거 다 안다 뭐."


사실 소녀와는 같이 19금 드라마도 보고, 동성애 영화도 보기도 했다. 민망하거나 이상한 기분은 사실 별로 없었다. 어릴 때 언니랑 영화 보고 음악 들으며 속닥이던 시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 친구랑 이런 걸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내가 키워놓았네? 하는 생각도 하고.


소녀가 '알 것 다 안다'라고 말하는 수준이 궁금하기도 하다. 2021년, 베트남에 있는 프랑스학교의 고등학교 과정에 다니는 글로벌한 십대 아이들의 삶이란 (이 구세대 엄마의 시각으로는) 놀랍고 신기하다. 소녀가 가끔 조잘대며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내가 살았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꽤 많다. 첫 경험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자기들끼리는 매우 진지하게 나누는 모양이다.


내가 소녀의 나이였을 때, 그런 모든 것들은 희미하고 뿌연 안갯속에 있는, 내가 닿지 못한 세상 너머의 이야기인 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간혹 떠도는 소문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카더라' 통신의 형태로, 과장되거나 부풀려지거나,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 모호함을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했는데, 그런 궁금함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라고는 없었다. 역시나 그렇게 애매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문장들로 가득 찬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돌려 읽는 게 전부였을 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TV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띠로리~(?)'하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 부모님은 아무 말 없으셨고 방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가벼운 농담 한마디라도 건네셨다면 좋았으련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부모님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순수하셨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순수하지 못한 나는, 딸과 함께 키득키득 웃으며  19금 영화를 본다. 소녀가 언제까지나 나와 19금 영화를 같이 봐주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의 첫 경험 이야기나, 남자 친구와의 스킨십 진도 같은 것들은 친구들과 속닥이겠지. 엄마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어오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가 안 가르쳐줘도 다... 하다 보면(?)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거니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니, 내가 소녀와 함께 야한 영화를 봐주는 엄마인 게 아니라, 소녀가 나와 같이 19금 영화를 봐주는 것 같다. 우리가 나란히 앉아 과자를 나누어먹으며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종이로 만든 집> 같은 것을 보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 거 다 아는 나이 맞기는 하지. 그래도 <브리저튼>은 아직 좀 이른 것 같아. 엄마 먼저 좀 볼게.


Elio -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보고 우리는 둘 다 티모시살라메의 팬이 되었다.


* 글: 나영/ 인스타그램 @etesian_wind

* 그림 : 찰스/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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