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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Mar 02. 2021

소녀와 나.

시작하는 글.

소녀는 휴교가 일상이 되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또다시 휴교령. 집에서 매일 온라인 수업만 듣고 있다 보니 지겨웠는지 어느 날 같이 카페를 가자고 한다.

"엄마, 내일 내가 커피 사줄게. 우리 데이트하자."

"정말? 그럼 일찍 일어나야 해. 엄마는 아침 커피가 필요해."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아홉 시 반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분명 늦은 밤까지 꼬물딱 꼬물딱 무언가를 했겠지. 야행성이고 학교 안 가는 날은 오로지 '늦잠자도 된다'는 것 하나로 신이 나는 녀석이다. 일어날 때를 기다릴까 하다가 푹 재우기로 하고 혼자 나가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


"나랑 카페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늦잠 잤으면서... 기다리다 나왔어. 오후에 같이 가자."

"칫. 관둬. 나 실망했어."


집에 들어가니 잔뜩 짜증 난 얼굴. 푹 찔러도 까르르 웃는 사춘기이지만 깃털 같은 일 하나로도 삐져버리는 것 또한 사춘기이다. 조금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나도 심술이 난다. 

'지가 늦게 일어났으면서 아침부터 짜증은....'


그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둘이서 종일 투닥댔다.

"엄마는 나랑 약속도 안 지키고"

"그게 엄마에게 짜증 낼 일이야?"

"내가 언제 짜증 냈다고 그래. 그래도 약속 안 지킨 것 맞잖아."

"카페, 오후에 같이 가면 되잖아. 너 안 일어나길래 그러려고 했어."

"됐어. 나 안가."

"어, 너 정말 안 간다고 했다?"

"...."


또 금세 풀이 죽어버리는 A형 혈액형의 소녀. 그런 모습을 보면 속으로는 또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짜증 좀 받아줄걸 그랬나... 생각하다 휴전을 제안한다.


"그러지 말구 기분 좋게 나가자. 달달한 거 먹자."


그렇게 힘들게 카페에 갔다. 나는 라떼, 소녀는 망고빙수를 시켜놓고 앉아 수다를 떤다.

"엄마 나랑 있을 땐 핸드폰 금지. 내 얼굴 좀 보면서 말해!"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이것만 답하고... 끝."

"아휴 진짜...."


별로 할 얘기도 없으면서 얼굴을 보라고 하는 소녀. 카페에 "Jane Eyre"를 들고 왔다. 학교에서 과제를 내어주어서 읽고 있다고 한다.

"나도 제인 에어는 안 읽었어. 하도 길어 보여서... 재밌으면 추천해줘. 그리고 나중에 영화 같이 보자."

책, 영화, 음악... 묘하게 취향이 잘 맞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남자 배우도 비슷하다. 성격은 참 많이 다른데, 신기할 정도로 취향은 비슷한 곳을 향해 있다. 소녀의 삶에 내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과 감성이 소녀에게 스며들었겠지만, 이제는 소녀가 나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듣다가 제목을 알려주거나 파일을 보내주고, 새로 나온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머리를 맞대고 빙수를 한 숟가락씩 먹다가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같이 글 쓸래?"

"어떤 글?"

"그냥 지금 생각한 건데 같은 주제로 너와 내가 각각 글을 쓰는 거지. 각자의 이야기를. 주제만 같고 내용은 자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흠..."

"일단 몇 개만 써보자. 그리고 쓰면서 어찌할지 결정해나가면 돼."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으로 종일 싸우던 어느날, 망고빙수를 먹으며 17세 소녀와 글쓰기 계약을 맺었다. 글쓰기 주제들을 몇 개 정하고, 매주 목요일 마감. 첫 번째 글감은 소녀에게 정하라고 했더니 우리가 주루룩 나열한 단어들 중 주저 없이 하나를 고른다.


"19금".


그렇게 우리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글의 다음 편이 계속해서 나올지, 아니면 흐지부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같이 글을 쓰다 또 싸우게 될지도 모르고, 서로의 글이 마음에 안 들어 투닥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소녀와 함께 무언가를 하기로 약속했다. 소녀는 우리의 약속에 한 가지 더, 추가 조건을 제안했다.


"엄마, 책 나와서 팔리면 우리 5:5로 나누기하는 거다. 알았지? 그런데, 작가 이름은 누구 먼저 넣을 거야?"

"가나다 순으로 해야지. 나이순으로 해도 그렇고, 그러니 내가 먼저!"

"헐..."


아무래도 종종 투닥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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