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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일들에 진심인 편입니다.

<손> - 나의 이야기.

by write ur mind

매년 나의 새해 다짐에 들어가는 항목에는 언제나 운동과 영어공부, 가끔 프랑스어가 있지만 (아마도 예상대로) 늘 그렇듯, 흐지부지 된다. 그 뻔한 새해의 다짐과 함께, 내가 늘 계획하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글씨체 바꾸기'이다. 글씨 잘 쓰기, 예쁜 손글씨 연습하기.


학교 다니는 학생도 아닌데 글씨를 잘 쓰고 싶어 하는 건, 은근 글씨가 나의 콤플렉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 글씨는 악필이라 할 정도는 아닐지는 몰라도 정돈되어있지 않고, 일정하지 않고, 조금 들쑥날쑥이며... 깔끔하지도 개성이 있지도 않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불완전한 글씨체'이다. 상황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고, 몇 글자 정도는 그럭저럭 보기 좋게 적을 수 있지만 긴 문장을 적기 시작하면 금세 흐트러진다.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고 나면, 썩 명필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글씨체를 갖던데... 나는 딱히 '내 글씨체'도 없이, 여전히 불완전하다.

공부하고 상담을 하는 일 정도까지만 해도 나 혼자 보는 나의 노트에 휘갈기는 편이라 내 글씨를 누가 볼 일이 많지 않았지만. 작년부터 사무직 일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컴퓨터 문서의 시대라고는 해도, 여전히 사무실의 각종 서류에는 글씨와 싸인을 남길 일이 참 많다. 그래서 단정하고 또박또박 글을 적고 싶은데, 이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 '글씨 잘 쓰는 법'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몇 개 찾아보기도 했다. 간단한 노하우를 몇 개 습득하고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자음의 크기는 일정하게, 모음의 위치와 간격도 신경 쓸 것. 빨리 쓰려하지 말 것. 일단 정자체로 또박또박 쓰는 연습을 하다가 그 안에서 살짝 변형을 하면 나만의 글씨체가 된다는 것...' 막상 기본 원칙은 크게 어려운 건 아닌 것 같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필사를 하거나, 내 수첩에 몇 가지 적을 때 신경 쓰며 적어보기도 하지만.. 또 바쁜 일이 있거나 무언가 기억해놔야 해서 휘갈기는 메모를 적을 때면 금세 잊고 또 들쑥날쑥한 불완전한 글씨체를 어딘가에 남긴다.


이 나이에 글씨가 뭐 별거라고. 하면서도 나에게 글씨는 '잘 차려입은 아가씨가 고르는 작고 특별한 귀걸이 하나' 정도의 의미처럼 느껴진다. 좋은 생각,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 한 줄, 친구에게 선물하는 책 위에 적는 메시지... 그런 것들을 나만의 근사하고 단정한 글씨로 적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글씨가 좀 별로라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못 알아볼 만큼의 글씨도 아닌데. 나는 왜 예쁜 글씨를 이렇게나 갖고 싶을까. 나에게는 사사로운 사치품, 허영 같은 일이다. 자기만족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작은 허영심이 나를 조금 더 빛나게 해주는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늘 마음 쓰여하는 많은 일들 중 상당수의 것들이 이렇게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일이 많은 편이다. 손해 보면 큰일 나는 일, 꼭 의무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일 같은 것들에 나는 기본적으로 무신경하다. 이 나이에 내가 진심인 일들은 글씨 잘 쓰는 것, 매년 마음에 드는 필사 노트와 다이어리 수첩을 고르는 일, 글을 적으러 가는 카페 테이블의 크기와 높이가 적당한지 고민하는 일, 가끔 들르는 화원에서 만나는 만세 선인장과 수채화 고무나무 화분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씨 잘 쓰는 법'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내가 어쩌면 인생에서 진짜 필요한 건 잘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새로 장만한 필사 노트에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 펜으로 사각사각 글씨를 쓰면서, 조금이라도 단정하게 써보려고 애를 쓰는, 그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손'이라는 글쓰기 주제를 받아 들고 내 손이 하는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내 손이 늘 애쓰고 있지만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을 떠올렸다. 올해는 아직 몇 달 더 남았으니, 글씨 연습은 계속해봐야겠다. 어딘가에 남을 내 흔적에 신경 쓰는, 별일 아닌 것에 마음 쓰여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 글: 나영/ 인스타그램 @etesian_wind

* 그림: 소현/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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