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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물안궁' 금지야.

<세대차이> - 나의 이야기.

by write ur mind

"어쩔.."

"안물안궁."


소녀와의 대화 중,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 내 생각을 말하거나 무언가 설명해주려고 할 때, 소녀가 가끔 농담처럼 뱉는 말인데, 은근 빈정이 상한다. 그 말은, 이렇게 들린다.

'어쩌라구, 엄마가 하는 말 난 관심 없거든.'


어느 날 둘이 걷는 밤 산책 중에 내가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빙글빙글 웃으며 "안물안궁인데?"라는 말에 울컥,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제부터 금지야. 그 말. '어쩔, 어쩌라고, 안물안궁..' 다 금지야. 내 앞에서 쓰지 마."

"기분 나빴어? 장난이야~ 화내지 마~"

애교가 들어간 사과에도 살짝 빈정이 상한 마음은 다스려지지 않는다.


내가 사춘기일 때, 엄마가 가끔 말씀하셨었다.

'지혼자 큰 줄 알지.'

그 말을 흘려듣고 말았었는데, 꼰대(?)의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의 소녀에게 가끔 그런 마음이 든다. 너의 생각이 맞다고만 생각하겠지. 네가 지금 느끼고 경험하는 게 중요해서, 엄마의 의견이나 조언은 잔소리로만 들리겠지. 십 대 소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그 뒤에 남는 씁쓸함은 이것이다.

'나는 이제 구세대인 거구나.'

어느 틈에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와 생각을 가진 세대가 되어버렸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자녀교육서에서 나온 말 중에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겠다는 꿈은 당장 접어라. 그 어떤 십 대 자녀도 사십 대 나이의 친구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구!'

뭐 그런 말이었는데,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메시지였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부모의 이해 같은 걸 대단히 바라지 않았고,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나의 모든 의사결정의 'No.1'은 아니었던 듯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방임주의 비슷한 노선을 선택했고,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의 삶과 인생에 관여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바쁘고 나에게 집중된 생각과 고민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 엄마가 되었다. 그 덕에 별 일없이 무난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것만으로 그럭저럭 감사하고 있고, 십 대 자녀와의 관계에서 상처 받는 일 또한 적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안물안궁이거든."

그 말만큼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투덜대고 살짝 빈정이 상해있는 나에게, 에어팟 한쪽을 건네며 나의 소녀가 말을 건다.

"엄마, 이거 들어봐. 내가 오늘 들었던 노래인데 진짜 좋아. 같이 듣자."


인디계열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는 살짝 빈티지스러운 감성에 꽂혀있어서 올드팝이나 복고풍의 인디음악을 즐겨 듣는데, 요즘 자신이 태어난 해에 데뷔한 2인조 남성밴드에 급 관심을 갖고 있다. 이어폰에서는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너 걸음마할 때 내가 이 노래 진짜 좋아해서 이거 CD 사놓고 매일 들었었는데... 우리, 음악 취향은 좀 비슷하네?"라고 하니 소녀가 말한다.


"그거, 안물안궁이거든요.?"


이게 진짜!



* 글: 나영/ 인스타그램 @etesian_wind

* 그림: 소현/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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