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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이 뭐가 어때서.

<세대차이> - 소녀의 이야기.

by write ur mind

세대차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로 하고 오랫동안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홀로 막막하기만 했다. 이 주제가 어려운 이유는, 나는 별로 세대차이라는 걸 경험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배우 이야기를 함께 하고, 같이 드라마를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함께 즐기고 공유하는 것들이 꽤 많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이 간섭을 하지 않았고 공부든 내가 좋아하는 일이든... 엄마 아빠의 의견보다는 내 뜻에 따라서 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어쩌면 세대차이가 아니라 문화 차이가 아닐까. 베트남에 살면서 국제학교와 프랑스학교를 거치면서 외국 친구들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의 마인드가 꽤 많이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은 종종 경험하기는 했다. 이를테면 중학생이 된 이후로 아빠가 슬립오버는 허락하지 않으신다거나, 너무 멀리 사는 친구 집에 혼자 택시를 타고 가서 늦게까지 노는 것은 안되고... 그런 것들. 친구들은 다 모여서 노는 시간, 나만 끼지 못했을 때는 많이 속상하기는 했었지만, 내가 걱정이 되어 그런다는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단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얼마 뒤면 대학에 갈 거고 집을 떠나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세대차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한 가지가 딱 떠올랐다. 바로 '내가 입는 옷'이다. 엄마 아빠도 그렇지만 한국에 가면 가끔씩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내가 입는 옷에 대해서 뭐라고 하실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는 항상 너무 짧거나, 등이 파여있다든지... 그렇게 내가 입는 옷에 관해서는 항상 하실 말들이 많으신 것 같다. 내가 조금 키가 큰 편이기도 해서 뭐든 짧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데 왜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며 부정적인 멘트를 하시는 건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산 가디건 탑이 하나 있었다. 주문하기 전에 분명히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엄마, 이거 어때?"라고 물어봤었다. 엄마는 그때 분명히 예쁘다고 해주었고 나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며칠이 지나 옷이 배송이 되어왔다. 나는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얼른 입고 싶은 마음에 빨래통에 옷을 바로 넣어 빨래가 끝나고 마를 때까지 '힘들게(!)' 기다렸다. 며칠 뒤, 엄마가 같이 마트에 가자고 해서 그 가디건 탑을 입고 나왔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너무 짧다, 배가 다 보여.”라는 것이다.

솔직히 너무 황당하고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입고 나온 옷을 바로 방에 들어가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엄마는 그제야 괜찮다며 그냥 다시 입고 나가라고 했지만 이미 망쳐버린 기분은 돌이켜지지가 않았다. 그날 어찌나 기분이 상했는지,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옷을 입고 나간 적이 없다.


이 사건이 내가 최근에 느낀 가장 큰 세대차이 사건이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입는 옷 스타일 바꾸어야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내 인생인데 내가 입고 싶은 옷 입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이야기>

소녀가 보내준 이 글을 읽고 소리 내어 웃었다. '이 건방진 마무리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소녀의 말이 맞다. 내가 옷 골라주고 입혀줄 나이도 아니고... 결국 지 입고 싶은 옷 입고 살아가겠지. 소녀의 말대로 집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갈 날이 얼마 안남기도 했다.

키가 크고 날씬해서, 사실 무얼 입어도 잘 어울린다. 내가 소녀여도 짧고 시원하게 입고 다니고 싶을 만하기는 하다. 그래서 크게 옷 입는 걸로 뭐라고는 안 했었는데... 나에게도 한계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배꼽'이었던 모양. 배와 허리가 드러나는 복장에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얼른 마음 풀고 그 예쁜 가디건 꺼내어 입고 친구들 만나러 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소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랑 몸 바꿔서 일주일만 살아주면 안 되니?"
소녀는 한칼에 "안 돼, 절대 안 돼."라고 거절했다.
"아 그냥 상상인데 이렇게 야박하게 거절할 일이야?"라고 하니, 소녀의 대답이 충격적이다.
"엄마 내 몸 가지고 일주일 동안 살찌워버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
헐...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세대차이는 많이 안 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내가 철이 안 나서인 것 같다.

*글, 그림: 소현/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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