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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ug 28. 2024

너를 파리에 두고 호치민으로 오던 날.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2022년 여름, 나는 대학입학을 눈앞에 둔 아이를 파리에 두고 호치민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기숙사도, 의료보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쩔 수 없이 나는 돌아와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머지는 생전 처음 가족과 떨어져 프랑스에서 혼자 살게 될, 이제 막 18살이 된 아이가 해결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 우버택시를 부르면 30-40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와 헤어지는 그 순간. 택시를 불러놓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데 그날따라 택시가 빨리 왔다. 그 전날, 헤어질 때 서로 울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은 그 순간 무너졌다.


택시가 도착하고, 내 짐을 싣고, 둘 다 폭포수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끌어안고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 나는 아이에게 이 말을 던졌다.


"마약! 임신!

 그건 안돼. 알았지?"


어이없지만, 그 순간에는 아이에게 해야만 한다고 여겼던 그 말이, 그렇게나 절박하고 간절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호치민으로 가는 열여섯 시간 동안 나는 내내 울었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적었던 편지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현아,


엄마는 힘들고 속상할 때, 이런 생각을 해.


"한 달 뒤 오늘은 이 기분이 조금 옅어져 있거나 가라앉아 있을 거야." 


정말,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래.

그 어떤 대단한 일도, 기쁨도 아픔도.. 시간의 흐름 속에선 '순간'일뿐이더라.


즐겁고 신나고 새로운 경험들은,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겨. 많이 만끽하고 기억해. 그 안에 오래 머물러.

그런데 부정적이고 어렵고 슬픈 일들은,

흘려보내줘. 크게 바라보고, 네 인생의 나날 중 하나의 '점'일뿐이라는 생각으로 대해.


그게, 네가 그곳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늘 기억해.

모든 일은 지나가고, 방법이 없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일단 해보면 다 어찌 될 거야."

"무슨 일이든 다 방법은 있어."

"지나고 나면 다 별일 아니야."

이런 주문을 많이 많이 외우길 바래.


별로 재미없거나 무의미한 일에 네 시간을 소비하지 마. 원하는 일, 너에게 중요한 일을 찾아서 많이 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백 퍼센트 믿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마음이 시키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보고, 너의 판단과 경험으로 성장하길 바래.


너 자신을 믿어.


너는 바른 아이니까, 너를 믿어도 돼. 별로 틀리지 않을 거야.


엄마가 네 삶에 대해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네 마음에 드는 네가 되는 것."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이미, 언제나 네가 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 있어.

너는 지금, 네가 바라던 그 사람이야.


그러니... 너를 믿어. 너의 스무 살은 눈부실 거라고.



그날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매일 아침과 저녁 안부 인사를 카톡으로 남겼고, 나는 손목시계에 호치민과 파리의 시간을 듀얼로 설정해 놓고 살았다.


얼마 전, 두 번째 여름방학을 맞아 1년 만에 호치민에 온 아이는 이제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나도 나이가 들었다. 20대의 아이는 앞날을 바라보고 꿈꾸고 있고, 나는 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아쉬워하는 날들이 늘어간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아직도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아이가 먼저, 우리가 예전에 함께 썼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호치민의 작은 카페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둘이서 주제를 정하고 어떤 형식으로 글을 적을지 의논했다.


3년 전, <너는 꿈이 많고 나는 생각이 많지>로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이 나왔었다. 그때보다 훌쩍 자란 소녀가 어떤 이야기를 적을지 궁금하고,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어버린 내가 씩씩하고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많기도 하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고, 우리가 5시간의 시차와 3만여 km의 거리를 뛰어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조금 설레는 마음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그녀가 다시 파리로 돌아가면... 호치민에 남은 나는 우리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던, 카페에서의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 같다.


그림: 이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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