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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My mind.

by write ur mind

공방에 다니면서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공방에 그림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의 나이는 2,30대의 젊은 주부부터 50대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까지 다양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붓을 잡아본다는 분부터 미술을 전공했지만 그 꿈을 잠시 미루어두어야 했던 사람까지, 미술실력도 천차만별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한가한 오전 시간. 앞치마를 두르고 물감과 붓을 들고 그림을 배웠다.


그림을 배울 때 선생님은 학생들의 나이에 상관없이 OO씨~로 학생들을 불러주셨다. 공방 안에서 그녀들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 아이들의 공부 걱정이나 사춘기 아이가 말을 안들어 속상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누기는 했지만, OO씨~로 불리우는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나누기도 했던 것 같다. 어릴적 이야기, 학교다닐 때의 추억, 결혼하기 전 남편도 모르는 첫사랑 이야기 등등.... 그 어떤 모임보다 '나 자신의 이야기' 들을 많이 나누고 개인적인 기억을 털어놓으며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내 이야기'들을 했다. 그곳에서는 각자 나름대로 특별했고, 저마다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며 꽃을 그리고 풍경을 그렸다.


손에 붓을 들고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소녀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그림을 그리는 일, 오로지 그것에만 몰두해 있던 그 순간의 그분들은 참 아름다왔고 평화로왔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앞치마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의 간식과 그날의 저녁반찬을 걱정하는 원래의 역할로 돌아갔지만 오전 내내 그림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던 소녀가 마음 속에 들어 있어 하루하루를 또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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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위치나 역할을 나타내는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와 아내, 또는 회사에서 내가 가진 직급으로 설정되어버린 역할이 아닌, '나'라는 한 사람으로 불리워 질 때 내 삶의 질이 조금 더 깊어지고 특별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때로는 책임과 의무가 우선이 되는 내 역할은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 한사람에게만 집중되는 시간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온전한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가 다시 호칭으로 불리워지는 내 역할의 자리로 돌아갈 때 내 안에 있는 설레임이 나에게 힘을 주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내 이름을 궁금해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무언가를 배우거나,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당연히 내 이름부터 알려야 한다. 결국, 내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는 곳을 찾는다는 것은 끝없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 일과도 맞닿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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