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ind.
1.
작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꺼내어 읽었다. 첫 문장부터 마음이 쿵쿵.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느낌인거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지루하고 따분한 데미안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적을 수 있는건지... 한 줄 한 줄 감탄하며 읽게 되었다. 여전히 데미안을 잘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가득 들어 있다고 느껴졌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생각과 감정들이 책을 읽으며 떠다녔다. 이렇게, 뒤늦게나마 데미안을 다시 읽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도 사람 사이의 인연과 같아서, 나에게 맞는 때가 따로 있음을 깊이 깨달았다.
2.
오래 전 난생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로마는 여행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그 때 본 로마는 오래되고 낡은 도시, 타들어갈 듯 더운 나라였다. 고풍스럽기는 했지만 여행의 끝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 도시는 먼지와 부서진 유적들의 무덤같이 느껴지기만 했다.
3년 전, 두번째 여행에서 로마를 첫번째 도착지로 방문을 했다. 그 때 다시 만난 로마는 다른 세상인 것만 같았다. 4월의 봄날 찾아간 로마는, 눈만 돌리면 곳곳에 보이는 조각상들과 골목골목마다 서 있는 온 도시의 건물이 고풍스러운 곳이었고 거리의 가로수에서 오렌지 향기가 퍼지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시내 버스에 앉아 바라보는 로마는 마치 그림같이 다가왔고,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로마의 예술가들은 더없이 특별해보였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상과 느낌은 달라진다. 장소뿐만 아니라 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세상에 너무 이른 것도, 너무 늦은 일도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데미안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그리고 로마를 한번 더 가서, 다시 새롭게 그 도시를 마주하고 확인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인 일들이 있다. 우리는 많은 순간들을 돌아보며 '이미 늦어버린 일'인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하지만, 사실 진실로 너무 늦어버린 일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시 돌아보지 않은 일, 영원히 잊어버린 일은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잊고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뒤늦게라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소중하게 재확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많은 일들이나 우리가 만나고 경험하는 많은 인연과 관계들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금 다시 깨달아서 좋았다고.
전에는 몰랐던 좋은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고.
그리고.
뒤늦게라도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