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앤디 2
혜진은 박물관 입구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혜진, 아까 그 사탕 더 있어요?”]
[“네.”]
혜진이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옆에 앉은 조쉬에게 건넸다. 조쉬가 사탕을 먹었다.
[“이 사탕은 맛이 이상해요.”]
혜진이 그러면 왜 달라고 했냐는 표정으로 조쉬를 바라보았다.
[“사탕 맛이 이상한 건지 제 입맛이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다른 거 줘요?”]
[“또 있어요?”]
혜진이 가방 안에서 작은 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 종류가 각기 다른 사탕들이 대여섯 가지 있었다.
[“와우! 이렇게 많았어요?”]
조쉬가 봉지를 가져가 안을 열심히 살폈다. 혜진은 이분이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이건 다 한국 사탕인가요?”]
[“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 처음 보는 거예요.”]
[“……”]
조쉬가 사탕을 하나씩 들어 포장지를 진지하게 읽었다.
[“시나몬은 저도 아는 거고, 여기에는 아몬드가 붙어 있네요. 저는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건 먹으면 안 되겠군요. 딸기, 레몬… 이건 저도 먹어봤던 거예요. 제가 어릴 때 먹은 거와는 좀 다르게 생겼지만요. 이 초록색 사탕은…”]
조쉬가 투명한 포장지에 담긴 초록색 알사탕을 꺼내 들었다.
[“무슨 맛이죠? 채소 맛?”]
[“청포도요.”]
[“청포도…”]
조쉬가 포장지를 뜯어 초록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가 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맛에 집중했다.
[“아! 이런 맛이군요. 예상하지 못한 맛이에요. 처음에 봤을 땐, 민트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음~ 그런데 청포도가 이런 맛인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흥미롭네요.”]
뭐가 흥미롭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혜진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그런데요, 조쉬.”]
[“네?”]
[“무슨 일 있어요?”]
[“네? 왜 그런 걸 물으시죠?”]
혜진이 길 한가운데에 서서 우왕좌왕하는 앤디를 가리켰다.
[“아까부터 저렇게 전화만 하시잖아요. 무슨 일 있나요?”]
조쉬도 앤디를 바라보았다. 앤디는 전화 통화 중이었다. 재킷은 진즉에 벗어 한 손에 들고 있었지만, 땡볕 아래 오래 서 있는 통에 그의 이마엔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 없어요. 아무 일도.”]
[“그래요?”]
혜진은 조쉬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혜진은 가방 속을 정리했다. 빈 물병과 사탕, 초콜릿 껍질을 한데 모았다. 혜진은 조쉬가 비운 물병도 챙겼다. 물티슈를 보여주며 손을 닦겠냐고 물었지만 조쉬는 거절했다. 조쉬가 혜진을 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진, 제가 당신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무엇을요?”]
[“전에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공항에서 만났었다고요. 그런데 제가 당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죠.”]
[“아…네.”]
[“왜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요?”]
[“그건… 말할 거리도 아니에요. 뭐 하러 그런 말을 해요? 당신을 곤란하게 할 뿐이잖아요.”]
[“……”]
[“그리고 그건 만났다고 할 수도 없어요. 제가 당신을 본 거죠. 저만 본 거고, 조쉬가 저를 본 게 아니에요. 당신은 유명하고 너무나 많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혜진…”]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괜찮아요. 당신은 바쁘잖아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억할 게 얼마나 많아요? 그런 걸 다 기억하고 일일이 미안해하며 살 수는 없어요. 잊어버려도 돼요.”]
[“……”]
조쉬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홍보 일을 몇십 년째 하고 있었다. 한번 본 사람의 얼굴과 이름, 목소리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고도 저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지 위험한 사람일지도 판단해 내는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특별한 능력은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만 발휘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아예 관심을 꺼버린 거야…’]
조쉬는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 옆에 앉은 이 사람은 자신을 잊어버려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잊어버려도 된다고 하면서도, 이 사람은 노란 꽃이 달린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명찰이 달린 노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앤디와 조쉬의 눈에 띄기 위해서라면 머리 위에 꽃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엉뚱하고 희귀한 것이라도 온몸에 치렁치렁 달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정반대의 이유로 이런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앤디와 조쉬가 필요할 때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조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에휴, 그나저나 저분은 더운데 왜 저렇게 서서… 여기 앉으시라고 해야겠어요.”]
혜진이 가방과 쓰레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조쉬가 그녀를 말렸다. 혜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혜진, 괜찮아요. 아마 자리를 비켜줘도 앤디는 앉지 않을 거예요.”]
[“네? … 왜요?”]
[“앤디 코넬은 신사거든요.”]
[“아…”]
혜진은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렇다면 앤디가 비어 있는 저쪽 의자에라도 앉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쉬가 말했다.
[“저는 기억하겠습니다.”]
혜진이 조쉬를 보았다.
[“이곳에서 있던 모든 일을 기억할 거예요. 기억하고 싶어요. 약속할게요.”]
[“……”]
[“정말입니다.”]
[“네, 알았어요.”]
[“진짜예요.”]
[“좋아요.”]
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와우, 제 말을 안 믿는군요?”]
[“믿습니다.”]
[“안 믿잖아요.”]
[“믿어요.”]
[“아닌 것 같은데요?”]
[“아까 우리가 보고 온 건축물의 이름이 뭐였나요?”]
[“뭐요?”]
조쉬가 깜짝 놀랐다. 그의 입이 벌어졌다.
[“… 첨! 첨!”]
“… 첨성대.”
[“제가 그걸 말한 거예요. 첨-성-대.”]
[“어제 그 절 이름이 뭐였나요?”]
[“네?”]
조쉬가 깜짝 놀랐다. 혜진이 웃었다.
[“그건, 제가 잊어버렸다고…!”]
[“하하하, 농담이에요.”]
혜진은 웃어넘겼지만, 조쉬는 양심이 따가웠다. 관심이 있었다면 벌써 검색을 해보았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도 실시간으로 연락하는 그가 아니던가? 심지어 조금 전에 들어갔던 박물관에서도 그 절 사진을 보았었다. 그런데 또 잊어버린 것이다.
[“… 부끄럽네요.”]
[“아니에요. 정말 농담한 거예요. 그리고 조쉬, 그러지 마세요. 다 기억할 수 없어요. 당신보다 가본 곳이 훨씬 적은 저도 갔던 곳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제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보고도, 내가 이런 사진을 언제 찍었나 하며 놀라는걸요.”]
[“……”]
[“행복한 기분만 가져가도 충분해요.”]
조쉬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혜진을 보았다. 혜진이 고개를 약간 숙여 머리 위에 있던 노란 꽃이 조쉬 얼굴 앞에 오게 했다.
[“행복한 기분만 가져가도 충분해요.”]
그녀가 노란 꽃을 흔들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혜진이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한번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조쉬와 혜진이 마주 보고 웃었다. 전화 통화를 하던 앤디가 조쉬와 혜진을 보았다.
[“… 그래, 그 병원으로 예약해 둬. 검사를 다시 받게 할 거야. 알았어.”]
앤디가 전화를 끊었다. 그가 조쉬와 혜진에게 걸어갔다.
따뜻한 햇볕 아래 키가 작은 두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었다. 머리 위엔 차양이 넓은 꽃무늬 모자를 쓰고 팔에는 하얀 토시를 끼고, 바람이 잘 통하는 꽃무늬 조끼도 입은 그들은 화려한 꽃무늬 천으로 만든 손수레를 하나씩 끌고 천천히 길을 가고 있었다. 뒤에 가던 할머니가 먼 곳을 보고 말했다.
“오늘 어디 극단이 온다켔나?”
“…뭐라고?”
“오늘 어디 재미난 거 한다고 한 적 있어?”
“뭐?”
“안 들리나? 이제 귀도 먹었나?”
“아, 참.”
앞서가던 할머니가 귀에 꽂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뺐다. 그녀는 조끼 주머니에서 이어폰 케이스를 꺼냈다. 조그만 금빛 케이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녀는 이어폰을 넣고 뒤에 있던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하얀 옷에 하얀 모자를 맞춰 쓴 사람 둘과 머리에 커다란 꽃 모형을 달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 맞네. 맞네. 뭐 하는갑네.”
“아이고, 또 나만 몰랐네. 왜 나만 안 알려주는 기야?”
뒤에 서 있던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봐, 이봐. 나만 안 알려주고 있어. 이따가 가서 내가 얘기할 끼야.”
“어데? 어데 얘길 하는데?”
“시청에.”
“시청에? 거기 누구 말할 사람 있는가?”
“거기 내 조카 손주가 있다 안 하나.”
“조카 손주?”
“응.”
“니 조카 손주 녹즙 판다고 안 했나?”
“갸도 내 조카 손주고, 갸도 내 조카 손주다.”
“맞나? 이야, 니 손주 많네?”
“많지.”
앞에 서 있던 할머니가 다시 그 극단 사람들을 보았다.
“옷이 희한타. 아, 외국인이네?”
“맞네, 맞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거 보니, 꺼꾸리와 장다리 아이가?”
“외국인 콤비인갑다. 아이고~ 재밌겄다.”
“응? 꺼꾸리가 이쪽으로 오는데?”
“아이고, 크다.”
[“실례합니다.”]
꺼꾸리 외국인은 가져온 빈 물병과 간식 껍질을 할머니가 세워둔 꽃무늬 손수레에 넣었다.
[“괜찮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가 뒤 돌아 걸어가자 할머니들이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이게 뭐꼬?”
“이걸 여기 와옇는데?”
남자는 돌아가며 한 번 더 할머니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멋지게 제 갈 길을 갔다. 저 멀리 장다리와 머리에 꽃을 단 여인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들은 언짢은 표정으로 근처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꺼꾸리가 손수레에 넣은 쓰레기를 꺼내 버렸다. 혜진이 할머니들께 달려갔다. 그녀가 두 노인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 모습을 앤디와 조쉬가 지켜보았다.
[“오…이런…”]
앤디가 사과하러 할머니께 가려 하자 조쉬가 그의 팔을 잡았다. 저 멀리서 그런 앤디를 본 혜진도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앤디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할머니들이 혜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멀리 서 있던 앤디와 조쉬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앤디와 조쉬도 손을 들어 할머니들에게 인사했다. 할머니들이 떠나고 혜진이 앤디와 조쉬에게 걸어왔다. 앤디가 말했다.
[“미안해요. 내 실수예요. 나는 청소하는 분인 줄 알고…”]
[“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다 이해하셨어요.”]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앤디가 무언가를 생각했다.
[“음, 하지만… 이상해요.”]
[“뭐가요?”]
[“사실, 저분 수레 안에 이미 쓰레기가 있었어요. 그걸 확인하고 넣은 거예요.”]
[“쓰레기요?”]
[“네. 잡초가 한가득 있었어요.”]
[“아… 앤디, 그건 잡초가 아니에요. 그건…”]
혜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혜진은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많았다. 이 이야기의 끝은 대게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그게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떻게 그런 걸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둘 다 약간의 혐오감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았기에, 혜진은 딱히 대답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조쉬가 나섰다.
[“앤디, 그냥 넘어가요. 다행이에요. 경찰에 신고라도 당하면 어쩔뻔했어요?”]
[“뭐? 신고?”]
[“이번에 이상한 기사가 나면 홍보 영상 정도로 안 끝날지 몰라요. 여기서 살아야 할지도요. 하하.”]
조쉬가 놀리자, 앤디가 멋쩍어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앤디가 자전거를 가지러 갔다. 조쉬가 혜진 옆으로 와 살짝 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네?”]
[“사과했고, 그게 끝이었나요?”]
[“아…”]
혜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쳤다고 했어요.”]
[“네?”]
[“한 번만 봐달라고, 마음이 조금 아픈 외국인이고 제정신 아니라고 했어요.”]
[“뭐라고요?”]
[“그랬더니 걱정하시면서 잘 돌봐주라고 하고 가셨어요.”]
[“하하하.”]
큰 웃음이 터진 조쉬가 재빨리 입을 가렸다.
[“좋은 방법이에요. 아주 깔끔했어요.”]
[“고마워요.”]
혜진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그 뒤를 앤디와 조쉬가 따랐다. 따뜻한 봄바람에 조쉬는 기분이 상쾌했다. 묵묵히 자전거를 운전하는 앤디를 보며 조쉬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만났던 것처럼 첨성대와 대릉원 사이 주차장에 혜진과 앤디, 조쉬가 모였다.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조쉬와 앤디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혜진은 자전거를 반납하고 돌아왔다.
[“자, 여기요.”]
혜진은 새로 사 온 물을 조쉬와 앤디에게 하나씩 건넸다. 조쉬가 물었다.
[“이제 어디를 가죠?”]
[“뒤에 보이는 곳이에요. 대릉원이에요. 신라시대 왕과 귀족들의 고분이 모여있어요.”]
[“묘지 산책이요? 멋지네요. 저에게 딱 맞는 장소예요.”]
[“……?”]
혜진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앤디의 표정이 굳는 것은 보지 못했다.
[“자네는 이만…”]
조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갑시다!”]
[“네…”]
조쉬가 일어나 대릉원 입구로 향했다. 그 뒤를 혜진이 쫓았다. 앤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따랐다. 입구로 들어가니 훤칠한 소나무 군락이 하늘까지 솟아 있었다. 짙은 솔향이 코를 채웠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셋은 왠지 말이 없었다. 저 앞에 아이들 여럿이 손잡고 두 줄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려 하자 손잡고 있던 아이가 제 짝을 잘 달래서 선생님을 따라 함께 뛰어갔다. 조쉬가 앤디 옆으로 왔다.
[“앤디, 저분들이 뭐 하는 중인지 맞혀 볼래요?”]
앤디가 조쉬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파란 모자와 파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 여럿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었다.
[“……”]
[“저분들이 이곳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분들이에요. 아까 그 할머님들과 또 그다음에 보았던 여자와 남자분들은 청소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옷차림이 비슷했을 뿐, 각기 다른 자신만의 임무를 하고 있었어요.”]
조쉬가 앤디를 놀리듯 말했다. 그들은 아까 월성 해자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돌면서 철조망이 둘러싸인 흙 벌판 옆을 지나갔다. 벌판 안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쭈그려 앉아 땅을 파는 남자와 여자 몇 명이 있었다. 그때 앤디는 그들이 잔디를 가꾸는 사람인지 물었었다. 혜진이 유적을 발굴하는 중이고 저들은 연구원들이며 아마 고고학자일 거라 답하자 앤디가 깜짝 놀랐다. 조쉬는 그때도 앤디를 놀리며 웃었다. 앤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아.”]
[“좋아요.”]
조쉬가 앤디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혼자 다녀도 되겠어요. 마음이 놓여요.”]
[“……”]
조쉬가 앞서 걸어가고 앤디가 그 뒤를 따랐다. 나란히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혜진은 생각했다. 어쩌면, 앤디가 그렇게 착각한 것은 앤디의 잘못이 아닐지 모른다. 다들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니, 이곳이 익숙하지 않은 앤디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하얀 옷에 하얀 모자를 쓰고 초록 숲길을 걸어가는 앤디와 조쉬가, 혜진은 아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저 옷은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같이 가요.”]
혜진이 서둘러 그들을 따라갔다. 나무숲이 끝나자, 평지가 나왔다. 깨끗한 파란 하늘 아래 잘 다듬어진 둥그렇고 거대한 녹색 언덕 여러 개가 눈앞에 등장했다. 고운 잔디가 덮인 고분이 겹겹이 펼쳐진 모습이,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가 그린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말 이곳이 묘지란 말인가?
[“이곳부터 고분이 시작돼요. 어떤가요? 옛날 사람들은 이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바깥세상과 다른 세상. 이승과 저승.”]
혜진의 설명에 두 남자가 침묵했다. 그들은 천천히 고분 사이를 걸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대릉원은 너무나 아름답고 숨이 막히도록 평화로웠다. 하늘 위 빛나는 태양도 이곳의 한 부분인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에, 걷는 이들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누군가의 무덤이 왜 이리도 찬란한 것인가? 초록색 둥근 동산을 차례로 지나치며, 셋은 이상한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작은 새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 잎이 무성한 나무 위에 앉았다. 새의 고운 노랫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새소리가 커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소리가 작아진 것이었다.
[“새는 이승과 저승을 다니면서 사람과 신을 연결해 준다고 믿었어요. 작은 마을에 가면 마을 입구에 높은 막대기 위에 새가 앉은 모형이 있는데, 그것이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마을을 지켜준다고 생각해요.”]
혜진이 길가에 서 있던 키 큰 가로등을 가리켰다. 꼭대기에 작은 새 조형물이 달려 있었다. 조쉬가 혜진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걸 믿나요?”]
[“음…글쎄요. 네, 믿는 편이에요.”]
앤디는 말이 없었다. 셋이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혜진이 공간 끝을 가리켰다.
[“저쪽에 우리가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고분이 있어요. 이름은 천마총이에요. ‘천마’는 천국의 말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가 매표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흔들리는 노란 꽃이 두 남자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앤디가 조쉬에게 말했다.
[“돌아가면 곧장 닥터 아시프에게 가봐.”]
닥터 아시프는 런던의 왕립 암 전문 병원에서 근무하는 영국 최고의 암 전문의였다. 그와 만나려면 최소한 2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암에 걸린 사람 중에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를 만나는 환자는 대체 언제 예약을 했다는 건지 궁금할 지경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앤디는 달랐다. 그는 그 닥터 아시프와 언제든 원할 때 연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그 병원 암 연구소에 오스트리아의 호텔을 기증했다.
[“이전 검사는 어디서 한 거야? 닥터 아시프에게 하지 않았지?”]
[“다른 곳에서 했어요.”]
[“다시 처음부터 해 봐.”]
[“……”]
조쉬가 대답하기 전에 혜진이 왔다. 그녀는 작은 표 3장을 들고 있었다.
[“자, 여기 표를 받으세요. 저 고분은 아주 옛날, 한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에요. 약 1500년 전이라고 해요.”]
앤디가 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오래된 곳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맞아요. 신기하죠?”]
조쉬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들었다.
[“조금… 무서운데요? 가기 전에 기도라도 하고 가야 할까요? 혹시 무덤의 저주 같은 건 없겠죠?”]
[“하하하, 저주요? 투탕카멘처럼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럼, 뭐가 있나요? 축복이 있나요?”]
조쉬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가 본 곳이잖아요. 맞죠?]
[“네.”]
[“어땠어요? 다녀오니 축복이 있든가요? 저주가 있든가요?”]
혜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또 그 두 사람뿐이어서 혜진은 기억의 상자를 얼른 닫았다.
[“축복에 가까워요.”]
[“그래요? 휴, 다행이에요. 그럼, 행운의 무덤 속으로 가 봅시다.”]
조쉬가 앞장섰다. 혜진이 피식 웃었다. 앤디는 불안한 눈빛으로 조쉬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어두운 무덤 입구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한국어 대화와 영어 대화를 구분하기 위해 영어 대화는 [ ] 기호로 표시하겠습니다.
*통화음, 방송음 등의 기계에서 나오는 대화는 < > 기호로 표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