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앤디 2
아주 오래전, 이곳이 아닌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이다.
세상은 초록 나무와 색색의 꽃과 싱그러운 과일과 맑은 물과 지붕이 우아한 건물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멋진 건물은 당연히 최근에 지은 다리였다. 남천을 가로지르는 이 튼튼한 돌다리는 그 폭이 마차 두대가 한꺼번에 편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이 다리엔 지붕이 있었다. 덕분에 해가 쨍한 날이던 비가 오는 날이던 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품이 넉넉한 다리 아래엔 그리 깊지 않은 맑은 물이 졸졸 흘렀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빨래하기 좋았다.
한 소녀가 있었다. 아기 새처럼 동그란 얼굴에 빨갛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소녀는 두 손에 나무 쟁반을 들고뛰듯이 돌다리를 건넜다. 예쁘게 손질한 길고 검은 머리 위엔 귀한 금장식이 반짝였다. 고운 노란색 상의와 연두색 치마가 부드럽게 펄럭였다. 소녀는 다리 옆 내리막길을 걸어 남천으로 갔다. 물가에 선 소녀는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었다. 쟁반을 덮은 천을 들추자, 안에는 색이 덕지덕지 묻은 작은 붓과 납작한 도자기 접시 여러 개가 있었다. 소녀가 그것들을 물에 넣었다. 맑은 물에 노랑 파랑 분홍색이 넓게 퍼지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소녀는 손에 묻은 물감도 씻어내었다. 소녀가 자신의 얼굴을 물에 비춰 보았다. 두 볼과 이마에도 분홍 물감이 묻어 있었다.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색은 예뻐도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에요. 조심하세요.’
소녀에게 색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 말했었다. 소녀는 두 손에 맑은 물을 담아 세수를 했다. 소녀가 쓰는 색은 동쪽 산에서 자라는 꽃과 풀로 만든 것이었다. 동산(東山) 작은 집에는 물과 풀만을 먹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성 들여 키웠다. 그곳에서 자라는 것들이 약과 독과 색이 되었다. 초록 잎사귀가 물 위에 둥둥 떠내려왔다. 소녀가 잎사귀를 건져 접시를 닦았다. 다리 아래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 빨래가 거기서 가져온 거야?”
“응.”
“많지는 않네?
“같이 있던 이들은 다 내려왔고, 지금은 그 둘만 남았어.”
“그 이상하게 생겼다는 둘?”
“응.”
여인이 물에 젖은 천을 나무 방망이로 내리쳤다. 그녀가 빨래를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고, 시상에, 이게 뭐야.”
“왜 그래?”
여인이 고개를 들고 소녀를 향해 말했다.
“아유, 공주님. 왜 여기 빨래하는데 와서 물감을 버리고 그래요.”
“아, 미안해. 내가 저쪽 가서 할게.”
소녀는 물건들을 건져 쟁반에 넣고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빨래하는 여인들을 지나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에 그녀는 쟁반을 내려놓고 앉아 다시 물건을 씻기 시작했다. 여인이 천을 물에 비벼 헹궜다.
“그래서 그 둘은 배에서 언제 내려온대?”
“곧 내려 올 걸? 이제 준비가 다 끝났으니까.”
“그래?”
“응. 내가 들어보니까 이제 뭔 말을 하는지 대충은 알아듣겠더라고.”
갈색 가루와 초록 가루는 한 나무에서 온 것으로, 그것을 특별한 방법으로 달여 동시에 8일을 먹으면 허약한 심신에 기력이 생겨 건강해지고 뿌연 머릿속 안개가 걷히며 총기를 얻었다. 특히,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이가 먹으면 그 병이 낫는데, 이 나뭇가루는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먹으면, 그게 다른 곳의 말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드는 신기한 효력이 있었다. 동산 사람들이 키우는 많은 것 중 하나였다.
“그래? 아니, 무슨 말을 하데?”
“나한테 뭐라고 딱히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어른 남자는 병사들한테 여기가 정확히 어디냐,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 뭐 그런 걸 묻는 것 같았어.”
“어… 그렇네. 그런 게 궁금하겠네.”
“그런데 작은 남자애는 좀 아픈 거 같아.”
“왜?”
“맨날 누워있고, 자는 건지 앓는 건지 계속 끙끙대고.”
“그래? 약도 별로 소용없는가 보네. 우리랑 다르게 생긴, 먼 데서 온 사람이라 그런가?”
“그래도 애는 애야. 불쌍하더라. 어디 왕자님이었는데, 누가 쳐들어와서 가족이 다 죽고 혼자만 도망쳐왔대.”
“아이고…”
“게다가… 앞이 안 보이나 봐.”
“뭐?”
“내가 그 애가 눈 뜬 걸 한번 봤는데, 세상에, 눈이 뿌연 색이야.”
“눈알이?”
“응. 왜, 있잖아.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그랬는데…”
“아이고! 눈이 멀었는가 보다!”
“그러니까. 딱 우리 할아버지 그때랑 똑같더라고.”
“불쌍해라. 부모 형제 다 죽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서 눈까지 멀었다니. 불쌍해서 어떡해…”
“그렇지…쯧쯧… 그래도 괜찮을 거야.”
“왜?”
“여기서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하셨대. 오래 정착할 수 있게 공주님 중 한 분을…”
소녀는 연두색 치마를 붙잡고 맨발로 물속을 걸었다. 발에 닿는 시원한 물에 기분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돌을 보면 하나씩 집어 치마폭에 모았다. 바위로 걸어가 돌멩이를 내려놓고 아까 물에 담가 놓은 도구도 건져냈다. 물건들이 말끔해진 것을 확인한 후, 소녀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무 쟁반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소녀는 마른 천에 손발을 닦고 신을 신었다. 갑자기 주위가 밝아졌다. 오후가 되어 돌다리에 불이 켜진 것이었다. 소녀는 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어? 이게 뭐지?’
물살에 떠내려온 낯선 물건이 바위에 걸려 있었다. 조그만 가죽 표식이었다. 소녀는 표식을 주웠다. 처음 보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아까 있던 빨래하던 여인들은 이미 가고 없었다. 소녀가 표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가락으로 무늬를 살살 따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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