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앤디 2
맑은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일렁였다. 깨끗한 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너울춤을 추었다. 바다 풍경은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곳은 해수욕하는 해변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티브이에서 보기만 했지, 여기에 이렇게 직접 온 것은 혜진도 처음이었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웅장한 바위 무리가 보였다. 누군가의 혼이라도 스며있는 듯, 신비롭고 강인한 바위였다. 주연과 혜진은 모래사장 근처에 앉아 있었다. 주연이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그녀가 뚜껑에 커피를 따라 혜진에게 건넸다. 혜진이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야, 너무 맛있다. 사 먹는 거보다 백배 낫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배웠는데. 아까 봤지? 나 원두도 직접 볶아.”
“그러니까. 깜짝 놀랐어.”
아침 식사를 하고 혜진이 설거지를 하는 사이, 주연은 부엌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를 꺼내 원두를 볶았다. 혜진이 전화 통화를 할 때, 주연은 다 볶은 원두를 갈아 거름종이에 넣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고 있었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경주에 커피 잘하는 데가 많잖아. 그런데 다니면서 배웠지.”
처음 경주에 왔을 때, 주연은 경주에 아는 사람이라곤 시부모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시내에서 먼, 농사짓는 곳 근처에 살았고, 주연은 남편과 병원이 가까운 시내 아파트에 살았다.
“처음엔 남편이 그나마 괜찮아서 시내에 있으면서 나랑 여행사 일 같이 다니고 그랬는데,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니까 이 사람도 시부모님 댁에 가 있으려고 하더라고. 거기 가면 답답한 것도 덜하고, 속 편하고, 큰 개 두 마리 있는데 산책도 다니거든.”
시부모님 댁 마당에 아궁이와 큰 솥이 있어, 거기서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삶아 먹고 또 원두도 가끔 볶아 커피를 내려 마셨다고 주연이 말했다. 저녁 무렵 한적한 시골집에 커피 향이 은은히 퍼지면, 마당에 누워있던 영리한 개 두 마리가 벌떡 일어나 산책하러 나간 주인아저씨를 찾으러 갔다. 개를 앞세워 마당에 들어서는 남편은 하루 중 가장 즐거워 보였다. 평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제 집에 들어가 잠든 개가 코 고는 소리에 주연과 남편은 함께 웃었다.
“여기 내려오니까 좋아?”
“내가 좋을 게 뭐 있나? 남편이나 자기 부모님이랑 있어서 좋겠지.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사는 건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픈 사람을 자기 부모님이랑 같이 있게 해 줘야지. 아, 그러고 보니 서울에 있을 때보다 남편 맡아줄 사람이 있어서 맘 편한 건 있네.”
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간호는 외롭고 잔인하고 혹독하다. 혜진도 몇 번이나 치른 고생이었다. 눈앞에 바다가 시원했다.
“바다 예쁘다.”
“제주 바다 어땠어? 좋았어?”
“좋았지.”
“그래. 바다는 제주 바다지 경주 바다가 뭐가 좋아.”
“딱히, 뭐… 따지고 보면 멀지도 않으니, 그 물이 그 물 아닌가?”
“하하하, 그런가?”
주연과 혜진이 웃었다.
“승우는 잘 있어?”
“응.”
“아까 승우랑 통화한 거야?”
“아, 아니야.”
“그래? 난 또. 웃으면서 전화를 받길래 좋은 통화인 줄 알았네.”
“아! 하하하. 내가 웃었어?”
“표정이 밝더라.”
“돈 벌라는 전화여서 내 표정이 밝았나?”
“오, 누가 돈 준대?”
“일하던 곳에서 뭐 좀 해달라고 하네.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
“그만뒀다며?”
“그만뒀다기보다는 잘린 건데, 이번에 잘하면 다시 일하게 될 것 같기도 해. “
“그래? 잘됐다.”
“그래서 말인데, 주연아. 나 뭐 좀 빌려줄래?”
“뭐? 말만 해. 뭐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