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앤디 2
아주 오래전, 이곳이 아닌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이다.
세상은 전부 하얀 모래벌판이었다. 머리 위엔 태양이 불처럼 이글거렸고 대기엔 두꺼운 모래 먼지가 가득했다. 파란 하늘 따위는 없었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세찬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다. 더운 바람에 섞인 모래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얼굴을 할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숨을 쉬면 콧속이 따끔거렸고 한 번도 열지 않은 입 안엔 모래 알갱이가 씹혔다. 그곳을, 낙타를 타고 며칠째 달리는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 낙타 등에 낮은 자세로 앉아 앞만 보고 달렸다. 거칠게 움직이는 낙타 위에서 버티기 위해, 그들은 고삐를 단단히 쥐어 잡았다. 양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맺혔다. 하지만 아픈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찰나의 방심으로 이 거대한 낙타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옆에서 돌풍이 불어왔다. 바람은 낙타의 몸뚱이를 후려친 뒤 하늘로 솟구쳤다. 앞서가던 남자는 머리 위에 쓰고 있던 천이 날아가지 않게 한 손으로 움켜잡았지만, 뒤따라가던 남자는 미처 천을 붙잡지 못했다. 길쭉한 천이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길게 늘어지더니, 이내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짙은 색 피부 위에 잔뜩 붙은 하얀 모래가 반짝거렸다. 풍성한 회색 머리칼 아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바람이 불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앳된 소년이었다. 어디선가 만났다면 곱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할 어린 소년. 하지만 그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 시커멨다.
앞서가던 남자가 뒤를 보고 소년을 확인했다. 아주 조금 나아 보이긴 했지만, 그 또한 너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태운 낙타는 달랐다. 낙타 두 마리는 튼튼한 다리를 크게 휘저으며 단단한 굽으로 모래를 박차고 힘차게 움직였다.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렸지만, 지친 기색이 없는 이 낙타는 분명, 사막을 수월히 건너기로 유명한 혈통이 좋은 낙타였다.
낙타가 언덕을 내려갔다. 유달리 부드러운 모래에 낙타의 앞발이 푹푹 꽂혔다. 태양에 잔뜩 달궈진 지면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소년의 자세가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졌다.
“정신 차리세요.”
남자가 불렀지만,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왕자님!”
남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내 휘둘렀다. 채찍 끝이 소년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반응이 없자 남자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이번엔 소년이 한 손으로 채찍 끝을 잡아챘다. 남자는 순순히 채찍의 손잡이를 놓았다. 소년은 채찍을 당겨 손에 들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 이걸 썼어?”
남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소년이 낙타를 달려 그 옆에 닿았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이야. 로마에서 바친 귀한 물건이야.”
“귀한 물건이니 귀한 분께 썼습니다.”
채찍 손잡이엔 동그란 초록 유리구슬 두 개가 달린 노란 매듭 장식과 소년의 이름이 적힌 작은 가죽 표식이 달려 있었다. 가죽 표식에 이름을 새기고 노란색으로 염색한 아마실로 구슬을 엮은 매듭을 손수 만들어 채찍에 달아 준 것은 소년의 어머니였다. 왕비는 나무와 꽃과 물이 풍성한 그녀의 정원에 염색 장인을 불러 아버지와 소년이 입을 새 카프탄의 색을 고르곤 했다. 소년이 초록 유리구슬을 손에 꼭 쥐었다. 상처 난 손바닥이 쓰라렸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옆구리에 하얀 옷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남자가 말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후……”
두 남자는 그냥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의 감시병이 지키고 있던 감옥에서 몰래 탈출했다. 벽을 타고 넘어 땅으로 뛰어내릴 때, 소년은 발목을 삐었다. 참지 못하고 내뱉은 신음에 감시탑 횃불이 켜졌다. 둘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여기까지 왔다. 성공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성공적인 탈출을 해내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목덜미를 때렸다. 옷 안으로 굴러 들어간 모래가 등줄기를 타고 엉덩이 아래까지 닿았다. 낙타는 쉬지 않고 움직였고 소년의 엉덩이살은 모래 알갱이에 쓸려 껍질이 까지고 진물이 났다. 거기에 땀까지 섞이자,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불이 난 듯 뜨겁고 아팠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정말, 성공인가? 이것을 과연 탈출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감옥에는 초라한 그늘과 썩은 물이라도 있었다. 이 여정은 그보다 배로 괴로웠다.
생명체도 쉴 곳도 없는 곳.
사나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메마른 곳.
며칠 밤낮을 걷고 걸어도 똑같은 풍경만 펼쳐지는 기이한 곳.
사방이 훤히 트였어도 벗어날 수 없는 곳.
벽이 없어도 탈출할 수 없는 완벽한 감옥.
사막이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곳.
“모루스탈…”
중얼거리는 소년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틀 뒤면 도착합니다.”
이틀, 이틀이라니. 지금이라도 당장 쓰러질 것 같은데. 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빌어먹을 낙타에서 떨어져 저 푹신한 모래에 머리를 처박는 것이, 이걸 타고 이틀을 더 달리는 것보다 더 편하지 않을까?
“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빠른 배로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배를 타면 동쪽으로...”
“그사이에 잡히면 어떡하지?”
“……”
그들이 탈출하던 밤, 감시탑에서 날아온 화살이 소년의 옆구리를 스쳤다. 너무 먼 거리였고 빗맞은 덕에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어린 소년이 쉽게 넘길만한 고통은 아니었다. 어둠 속으로 절뚝거리며 도망치는 소년과 그를 부축하는 남자 앞엔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그때 남자와 소년에겐 낙타가 없었다. 감시병들조차 당연히 그들이 가다가 금방 죽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리 무리해서 쫓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겠지? 비명을 들은 것 같아. 형들도…”
“왕자님. 지금은 그런 생각 마십시오. 마음을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황제이자 전사의 핏줄입니다.”
‘전사? 전사라고? 나 따위가…’
내리막이 끝나고 그들은 평지에 들어섰다. 낙타의 뜀박질이 일정해졌다. 모래바람도 잦아들었다. 대기를 꽉 채우던 먼지가 서서히 옅어졌다. 처음으로 하늘 높은 곳에서 푸른색이 옅게 비췄다.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지평선 멀리 산이 보였다. 하얀 모래 산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산은 꼭대기가 붉었다. 시뻘건 불에 휩싸인 작은 방앗간 안에서 들리던 비명이 소년의 귓가에 울렸다. 산꼭대기에 맺힌 비명 없는 붉은색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소년의 푸른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그곳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있었지만, 영원히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년이 들고 있던 채찍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나를 깨워줘.”
“네?”
“내가 정신을 잃을 것 같으면, 이걸로 마구… 때려줘.”
“왕자님!”
소년이 낙타에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모래에 깊숙이 처박혔다. 고통에 찌든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소년은 비로소 편안해졌다.
쏴아아 쏴아아
“헉!”
소년이 눈을 떴다. 그는 딱딱한 나무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이곳은 차가운 파란 바다 한가운데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눈앞에 네모난 돛이 기울어진 채 삐걱거렸다. 그는 배를 타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배는 요람처럼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렸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그의 배는 해안으로 향하던 중, 불행히도 검은 바위 무리에 부딪쳐 한쪽 하부가 부서졌다. 배는 바위에 들려 올라간 상태로 멈췄고,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검은 바위 무리 사이로 파도가 들이치고 내침을 반복했다. 바위에 끼인 나무배는 계속해서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젖은 나무 파편들이 배 주변을 떠다녔다. 남자가 소년에게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
“꿈이라도 꾸셨나 봅니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소년이 일어나 앉았다. 그의 머리 위엔 넓적한 주황색 돛이 펄럭였다. 이 배는 중간에 들른 곳에서 새로 얻은 배였다. 원래 타고 왔던 배는 날렵하고 높은 하얀색의 세모난 돛을 달고 있었다. 남자가 나무 쟁반에 있던 작은 보따리를 꺼내 풀었다.
“아까 보급선이 왔었어요. 이번에도 물과 음식을 주고 다시 돌아갔어요. 이것 좀 드세요.”
남자가 물 한 잔을 소년에게 건넸다. 소년이 물을 마셨다.
“우웩! 퉤!”
“왜 그러십니까?”
소년이 물 잔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초록색이잖아. 썩은 물이야!”
“아닙니다. 찻물입니다.”
“뭐?”
“여기 오기 전에도 드신 적 있으십니다.”
“어?... 아… 그게 이거야? 하지만 색이 좀 다른데?”
“비슷한 음료입니다.”
소년이 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난 며칠 동안은 불평 없이 드시더니 갑자기 이러시는 걸 보면, 입맛이 살아나셨나 봅니다. 좋은 징조네요.”
소년은 머쓱해했다. 혼자 아프고 쓰러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음식 투정까지 한 것인가 부끄러웠다.
“그냥 물은 지금 없습니다. 다음에 그들이 오면 그냥 물을 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소년은 남자가 건네는 윤기가 도는 갈색 음식을 받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이 역시 며칠 동안 몇 번이나 먹었던 음식이었다. 소년이 인상을 썼다.
“이건 정말 음식이 맞을까? 맛이 특이해. 약 맛이 나.”
“8일을 먹었으니, 독은 아닐 겁니다.”
소년이 피식 웃었다. 남자도 웃었다.
“배는 어때?”
“물이 더 이상 새지는 않아요. 가라앉아 죽지 않을 만큼만 고쳐주고 갔습니다.”
소년이 저 멀리 해안가를 바라보았다. 나루에 묶인 작은 배 두 척이 보였다. 그 뒤로 감시병 대여섯이 서 있었다. 소년의 배가 바위에 좌초된 지 8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들은 그들이 육지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기한 사람들이다. 왜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고 그냥 보고만 있을까?
‘그래도 음식을 준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닐까?’
소년이 음식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구석에 있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소년의 물건이 담긴 가방이었다. 단출한 옷 몇 벌과 보석이 달린 작은 칼 그리고 낡은 채찍이 있었다. 저들이 하려고만 했다면 벌써 이런 배 따위는 몇 번이고 샅샅이 뒤져 하찮은 무기들은 모두 가져가고 소년과 남자는 감옥에 가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나무 쟁반 옆엔 깨끗한 천이 있었다. 음식을 주고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이 들이 어떻게 적일 수 있을까? 소년이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어?... 그게 어디 있지?’
“왕자님!”
남자가 불렀지만, 소년은 듣지 못했다.
“왕자님!”
“왜!”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멀리 있던 작은 배 두 척이 그들 바로 옆에 있었다. 감시병이 배 위로 올라왔다.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소년은 일어나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신 그는 한 손으로 가방 안에 있던 칼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