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29.
풍요로움 속에서 공허함과 외로움은 배로 증폭된다. 커질 대로 커진 이 감정을 더는 담고 싶지 않아서 밤산책에 나섰다. 크고 노란 보름달이라도 보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급하게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서두르다 보니 겉옷도 없이 제법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그대로 맞게 됐다. 어느 방향으로 달이 걸려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달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보름달이 밝게 뜨는 날인데……"어디 있는 거야?" 다른 날 같았으면 선선하다고 할 법한 바람이 유독 차게 느껴진다.
걷다가 하늘을 보니, 제법 구름이 많다. 오늘은 꼭 따뜻한 그 달빛을 보고 싶었는데, 구름에 가려 안되려나보다 체념했다. 체념과 함께 실망을 안고 한참을 걸었다. 나무 사이의 가로등 불빛을 달로 착각하며 설렘을 안았다가 놓기를 반복하던 그때, 드디어 만났다. 나무 사이에 구름이 걷히자 드러난 둥근 얼굴. 그렇게 우리의 숨바꼭질은 시작됐다.
잣나무 잎 위로 모습을 드러낸 보름달을 찾았다.
놓칠세라 그 자리에 서서 달을 잡는다. 찰칵.
그럼 이제 내가 도망자가 되어 걸음을 바삐 옮긴다.
길을 따라 늘어선 느티나무의 무성한 잎 사이로 숨는다.
하지만 주변의 구름을 밝히는 환한 달빛에 금세 들키고 만다.
천진난만한 달은 다시 또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에 뛰어들어 몸을 숨긴다.
자신이 뽐내는 노란 달빛을 잊은 채 구름을 모아 몸을 가린다.
그럼 나는 달이 꼭 쥐고 있던 구름이 스르륵 풀려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제 갈길을 가는 구름 사이로 다시 그 노란 얼굴이 둥실 떠오르면, 다시 달을 잡는다. 찰칵.
그렇게 돌고 도는 우리의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노란 달빛 보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