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10. 그대라는 시_호텔델루나 ost
9월 중순을 넘어가던 주말 아침, 한 친구가 벙개 모임을 제안했다. 말을 꺼낸 친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카톡방에 있는 세 명 모두 뜨거운 반응을 하며 약속을 잡았다. ㅋㅋㅋㅋ
장소는 내가 권했다. 익선동.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한국 패치하고 그 속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옆의 인사동과 북촌은 여러 번 가봤으면서, 익선동이라는 공간은 2년 전쯤에 알게 되었다.
한 언니의 소개로 독특한 카페에서 시작한 우리의 반가움 그리고 대화는 몇 시간으로는 해소하기가 부족했다. 밤을 새워가며 장소도 옮겨가며 전철 첫차가 운행되는 시간까지 함께 깨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기억에 남는 서울의 밤, 계절은 여름이었고, 처음 모임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익선동에 있던 카페 '호텔세느장'이었다.
왜 과거형이냐고? 현재 카페로서의 세느장은 영업종료되었기 때문이다.
벙개로 모인 친구들과 만나 익선동 거리를 걷다가 세느장 건물을 발견했다.
외관에 아직 남아 있는 카페로서의 호텔세느장 간판, 익선동 거리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던 옥상 테이블과 의자가 그대로 보였다.
단 한 번 가본 추억의 장소가 그때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쓸쓸했다.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모임 시간을 보내는 중인데도 마음 한 편에 쓸쓸함이 있었다.
오가며 두 번째로 세느장 건물을 볼 때, 한 친구가 말해줘서 알게 된 사실! 카페일 때 호텔세느장은 내가 흥미를 갖고 챙겨보던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2년 전에 방문했을 때, 난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만 떠올렸지, 호텔 델루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하지만, 호텔세느장이 카페로 존재하던 과거 그 시간에 나는, 좋아하는 드라마의 성지순례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어도 즐거웠다. 그 공간에서 함께한 언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꿈과 목표를 듣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해 주고, 응원을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침 익선동에 가서 또 마침 추억의 장소를 지나며 <호텔 델루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떠오른 곡이 있다.
"그대라는 시"
-쓸쓸하지 않게, 밝고 담담하게
-무심하게 말하듯이.
원곡은 보컬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 곡을 쓸쓸하거나 슬픔이 주제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하던 당시, 한 번은 엄마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지금 보내는 시간들이 나중에는 사진처럼 순간순간의 추억으로 남을 거야."
힘들어하던 날 위로해 주셨던 말씀이었는지, 열심히 잘 살고 있다며 응원을 해주셨던 말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말씀해 주셨던 문장만은 기억한다.
카페 호텔세느장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른 장소가 또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힘을 얻은 기억은 내게 남는다.
친구들과 익선동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거리도, 오늘 우리가 앉았던 카페도 거듭 변하다가 사라질 날이 오겠지만, 난 오늘 즐거웠고 이 추억을 기억할 거야. 너희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
이 마음을 노래에 담고 싶었다.
가사 내용이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반주도 흐르는 듯이 부드럽다.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곡의 분위기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맞게, 극적인 표현을 할 때처럼 단어마다 힘을 주지 않기. 오히려 몸에 앉거나 서는 것 이상으로 힘을 주지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낸 좋은 사람에게 무심하게 말하듯이.
내가 하려는 말에 흔들림 없는 것처럼. 그런 느낌을 노래로 표현하려면 음을 당겨 올리지 말고 정확하게 콕 짚어 소리내야한다. 이것을 잘 표현해 보려 노력했다. 초반에는 특히 끝음을 반음정도 낮은음에서 당겨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음을 정확하게 짚는 것이 듣기에 보다 깔끔하고 자신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