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하는 길이었다. 차를 몰고 나와 양재로 향했다. 우면산 터널을 지나 거북이걸음으로 조금씩 전진해 회사에 도착했다.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겪는 일상이다. 회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리려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아침에 차 문을 열고,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회사로 진입하기 위한 소소한 행동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기억을 지운 것처럼.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예요. 그건 평생 과거라는 철창 속에 갇혀 사는 거라고요."
- 소설 ‘궁극의 아이’ 中 앨리스의 대사
이렇듯 이미 기억과 몸에 체화 된 습관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의식 적으로 실행된다. 아침에 양치질을 하고 샴푸를 펌핑하는 것은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나만의 방식으로 체화 되어있다. 이것을 우린 ‘습관’이라 부른다.
1960년대 네덜란드에서 고안된 자동차 개문사고 방지책인 ‘더치 리치(Dutch reach)’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차량에서 하차하기 전 차문을 열 때, 문에 가까운 손이 아닌 반대쪽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돌려 문을 여는 방법이다.
이들이 자동차에서 내릴 때 문을 ‘오른손’으로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차 문을 열 때(좌핸들 일 경우)에는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그들은 왜 이 불편한 행동을 감수할까? 정답은 네덜란드 도로의 특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인구대비 자전거의 비율이 1.3배 더 많다.(네덜란드의 인구는 1,713만 4,872명 세계69위 / 2020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이다.) 이곳은‘자전거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폭우가 쏟아져도 자전거를 탈 만큼 자전거가 보편화 되어있는 나라다.
이들이 오른손으로 차 문을 여는 것은 차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차 문을 열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이 돌아가면서 차 바깥쪽 거리를 볼 수 있게 된다. 반면 왼손으로 열 경우에는 시선이 돌아가지 않고 바로 차 문을 열기 때문에 옆을 지나치는 자전거와 충돌할 위험성이 커진다.
네덜란드 운전자들의 오른손 문 열기는 이미 운전 학원에서 차 문을 열 때 문과 가까운 왼손이 아닌 문에서 먼 오른손으로 차 문을 열도록 가르친다. ‘더치 리치’는 전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는 운전 문화며 우리나라에서도 차문 충돌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것은 이 차문 충돌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렇듯 습관은 단순히 생활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도 직결 될 수 있는 문제로 확산된다. 이 습관이라는 것을 Atomic Habit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이렇게 말했다.
“습관은 복리로 작용한다. 돈이 복리로 불어나듯이 습관도 반복되면서 그 결과가 곱절로 불어난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는 아주 작은 차이여도, 몇 달 몇 년이 지나면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2년, 5년, 10년 후를 생각해보라. 좋은 습관의 힘과 나쁜 습관의 대가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매일 이것을 느끼고 감사하기엔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는 작은 변화들을 무시한다. 그 순간에는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Atomic Habits(비즈니스북스/제임스 클리어)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하루에 8시간 씩 1주일 (8시간×7일=56시간) 내내 운동을 한다고 해서 건강해 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운동이 몸을 해칠 수 있다. 30분씩 꾸준히 하는 것이 더 건강에 좋을 것(30분×112일=56시간)은 당연 지사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결심을 하고 무언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들을 잘 살펴보면 애당초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영단어를 100개 씩 외운다던가, 책을 쓴다면 하루에 2꼭지 이상 씩 쓰는 것처럼 말이다. 해야 할 일들은 내일이 되면 쌓인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나면 오늘 것까지 복리로 쌓인다. 그리곤 자기 위안적 변명과 함께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
나는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학창 시절 반에서 공부를 잘해본 기억도 없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동생 덕분에 항상 난 집 안에서도 비교대상으로 밀려나곤 했다. 어렵사리 입사한 회사에 퇴사를 밥 먹듯 했고, 무엇을 하던 1~2 개월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러한 마음을 바꿔준 계기가 어느 날 인식도 하지 못할 만큼 슬며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서른 중반 즈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교 동창들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졸업하고 십여 년만의 모임이라 다들 옛날 얼굴을 간직한 채 많이 변한 모습들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을 목격했다.
K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에서 반장을 놓친 적이 없다. 성적 또한 우수해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늘 밝은 웃음으로 급우들을 대해서 인기도 많았다. 졸업과 동시에 헤어지며 내심 마음속으로 K는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해서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녀석의 얼굴은 꽤나 수척해 있었다. 동창회 자리에서도 구석 자리에 앉아 홀로 술잔만 기울이던 어두운 그의 모습이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H는 내가 기억하는 한 고등학교 3년 내내 꼴찌를 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뒤로 체육대학을 준비하는 녀석과 미대를 준비하는 녀석 두 명만이 늘 든든하게 지켜줬다. 시험 때가 되면 으레 교탁을 부여잡고 허벅지를 담임 선생님에게 내놓았다. 양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야 자리로 돌아온 녀석은 다음 쉬는 시간엔 으슥한 곳을 찾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하튼 녀석의 학창 시절 기억은 유쾌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녀석은 서른 중반에 어엿한 중견 기업의 대표가 되어있었다. 눈빛에는 생기가 돌았고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다고 오만하지 않았다. 적당한 무게감과 유쾌함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학창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에게 물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못했는데 어떻게 기업의 오너가 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되돌아온 그의 답은 이랬다.
“졸업하고 매사에 변명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꼴찌였기 때문에, 대학을 못 갔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변명은 또 다른 변명을 낳았고 그러다 결국 안 좋은 생각까지 하게 됐어. 그러던 어느 날 타인과 비교만하고 있는 내가 보이더라고. 아. 나도 누구처럼 돈을 잘 벌고 싶다. 누구처럼 외제차를 타고 싶다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러다 결국 짧은 인생 왜 타인을 신경 쓰고 살까 고민을 하다가 내 자신이 웃을 수 있는 일들을 하자고 결심했어. 그 뒤로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성공’을 하기 시작했어. 예를 들어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기, 흡연하러 나가고 싶을 때 딱 한번만 참아보기, 한잔만 더 마시고 싶을 때 그만 일어나기 등등. 그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까 사업체를 열었고 직원을 채용하고 수출을 하고 있더라고. 별거 없었어. 그냥 조그만 것 하나씩 해 나간거. 그것뿐이야.”
그날 그의 말이 내겐 많은 계기를 줬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 또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시간을 까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 크록(Ray Kroc)은 햄버거 가게를 창업 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바로 맥도날드다. 그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매주 로또를 사고 있지 않은가? 토요일 저녁이면 부푼 꿈을 안고 당첨 방송 앞에 앉아 있진 않는가? 인생에 있어 대반전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꾸준히 조금씩 준비를 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