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치켜뜨는 아이.

아이의 태도만 나무랐다.

by 모도


첫째가 가장 먼저 변하기 시작한 건 표정이었다.

속엣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입술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느라 용쓰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얇은 입술이 입 안으로 쏙 말려들어가는 모양새가 딱 나 같았다.

아이가 고개는 고정한 채 나를 쳐다본다. 눈동자만 위로 치켜뜬 모습.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변화는 아이가 불량스러운 학생이 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 어른을 대하는 버릇없는 태도에만 잔뜩 화를 냈다.

아이가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이의 변화는 불량스러웠다. 삐딱했고, 걱정스러웠다. 밖에서도 저러고 다니면서 부모 욕먹게 하는 건 아닌가라는 마음이 쓰였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이에게 하려던 조언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아이의 태도에만 포커스를 맞춘 내 눈. 나도 아이 못지않게 눈에 힘을 주었고, 아이와 나는 눈싸움하듯 힘겨루기를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아이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아니, 엄마가 너한테 서운하게 한 게 있어도 그렇지. 어른한테 그런 태도가 뭐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다,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 마음을 내가 어쩌지 못해, 속이 너무 답답했다. 묵은 체증이 남은 사람처럼 긴 한숨을 내 쉬길 반복했다.

그러다 한참 오래전, 아이의 눈빛이 내가 알던 아이의 눈빛이었을 때, 아이와 나눈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돼요?"

"네가 학원도 안 다니면서 문제집도 안 푼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거지."


내가 모든 일의 기준이었다.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면서, 이유도 설명한 적 없었다. 불만 섞인 표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육아서에 나오는 강압적인 부모가 나였다.

아이에게 내가 정한 일만 하도록 강요했다. 핸드폰은 하루 한 시간, 하루 30분 책 읽기, 9시에 잠자기, 친구와 노는 건 주말만 가능. 그 어떤 항목도 아이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았고, 자고 일어나면 지키고 싶지 않은 항목이 새롭게 추가됐다.

첫째가 새롭게 추가된 항목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건, 초등학교 들어간 지 6년 만에 처음이었다. 투정을 부리긴 해도 뭐든 잘 따르던 아이였다.

"투정 부리지 말고, 문제집 얼른 풀어."

강압적인 말로 아이의 입을 막아버렸던 엄마였다.


요즘은 육아서도 티브이 프로그램도 참 잘 나온다. 아이의 변화는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사춘기 관련 서적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른다. 다 호르몬 탓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육아서엔 내가 어떤 부모 유형인지 테스트하는 항목이 있었다. 금쪽같은 ㅇㅇㅇ에선 다양한 증상을 가진 금쪽이를 키운 부모들이 나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이의 문제 행동 원인은 내 강압적인 육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모든 걸 내 뜻대로 결정했고,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좋다는 걸 더하기만 했다. 아이가 주는 작은 신호들은 무시한 채.

아이의 힘준 입술과 눈빛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을 텐데 눈 감고 못 본 척 한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받아주면 버릇 나빠진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ㅇㅇ아, 다 너를 위한 일이었어."

아이는 들리지도 않게 구시렁거린다.

"내가 원하는 게 뭔대요?"

그렇게 우리 모자는 첫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이라서'라는 이유는 모르고 당한 첫째에겐 상처가 되었고,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부모라는 감투를 쓰게 했다. 아이의 걸걸한 변성기 목소리가 커지고,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주저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너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묻는 말에 '됐다고요.' '뭐요.' '왜요.'라는 말로 일관하던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조명 하나 없는 터널을 걷는 일처럼 힘들었다. 터널 끝에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이는 자기가 말해 봤자, 또 엄마 마음대로 할 거라는 믿음이 뿌리 깊었다. 아이에게 너의 말은 수용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매일 이야기했다. 처음엔 '이 엄마가 왜 저러나' 하고 가자미 눈으로 쳐다보더니, 자신의 뜻을 규칙에 반영하고 수정하는 엄마를 의아하게 보았다.

아들은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눈동자만 치켜뜨던 아이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내 눈과 나란히 시선을 맞춘 날. 갓 태어난 신생아 때 배냇짓하며 잠깐 눈 마주쳐도 행복해하던 내가 생각났다.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까만 터널 끝에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내 아이는 자라는 중이고, 나 또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희미한 빛을 향해 방향을 잘 잡았길 바라며 오늘도 한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