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

사춘기를 겪는 아이를 보는 엄마 마음.

by 모도



"또 자??"
새벽까지 핸드폰을 하고 잠들었던 아이는 아침도 거르고 잠을 청했다. 방학이기도 해서 푹 자게 내버려 뒀더니 꼼짝 않고 자는 폼이 겨울잠 자는 곰이다. 점심 먹으라고 깨우러 갔더니 위아래 붙은 눈꺼풀이 간신히 떨어지다 다시 붙는다. 지방도 없는 얇디얇은 눈꺼풀이 그렇게 쉽게 중력의 힘을 받을 줄이야. 생존을 확인시켜 준 후 곧바로 잠든 아이.
"자게 내버려 둬. 저렇게 정신없는데 일어나 봐야 먹겠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아이 넷을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신경 쓸 일이 많아 머릿속이 늘 너저분한 책상 같다. 그래서 주의력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상위 목록에서 하위 목록으로 나누어가며 정리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쓰는 날도 생긴다.
예를 들면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쓴다. 서평 마감, 화장실 청소, 색깔 옷 빨래, 에세이 한 꼭지 쓰기. 이제 세부적으로 작은 계획을 세운다. 서평 마감을 위해서 아이들이 없는 오전에 책을 다 읽고 서평에 넣을 내용을 정리해 둔다. 저녁 식사 후 서평을 완성한다.
화장실 청소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하교 후 씻으면 시작. 색깔 옷 빨래는 아이들 옷과 합쳐서 세탁.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서 오전 중에 초고를 완성하고 아이들 숙제 봐주면서 틈틈이 퇴고한다. 다음 날 아이들이 등교한 후 전체적으로 읽어보고 마지막 퇴고를 한다.
이렇게 세부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셋째, 넷째가 어릴 땐 정신없이 생활하다 보면 놓치는 경우가 많아 알람을 맞춰 놓고 하루치 해야 할 일을 완료했다. 게임 속 캐릭터가 퀘스트 깨부수듯, 체크리스트의 작은 네모 칸에 브이 모양을 그려 넣으면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브이의 왼쪽은 힘 있게 눌러 그리고, 오른쪽은 힘을 빼고 마음껏 삐쳐 올린다. 그 맛에 매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습관은 빠르게 자리 잡혔다.

아이가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핸드폰을 코 앞에서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못마땅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고 만다. 곧 할 거라는 공부는 매일 쌓여가고, 아이의 천하태평한 말에 속 끓이는 건 내 몫이었다. 계획을 세워 하나씩 체크해 가는 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누굴 닮아 저러지?"
애꿎은 유전인자를 탓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막아냈다.
"누굴 닮긴 누굴 닮아. 딱 니 닮았고 박서방 닮았지."
"니 학교 다닐 때, '저거 언제 사람 되나' 그러면서 키웠다. 니는 안 그런 줄 알제?"
외할머니의 폭탄 발언에 아이는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표정으로 소리 내 웃었다.
"풉!! 하하하하하!!!!"
그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크게 혼을 내진 않지만, 입술에 힘을 주고 할 말이 있다는 듯 쳐다보는 내 표정이 편하지는 않았을 터. 내심 미안했다. 그러다, 내 마음을 다 알면서도 보란 듯이 뒹굴거렸단 사실이 괘씸해졌지만, 아이가 오랜만에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도 처음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며 하루를 살진 않았다. 아이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자꾸 빼먹는 일이 생기고 꼭 해야 할 일을 미뤄 손해 보는 일들이 생겼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일상에 적용해 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가 속한 사회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실패, 실수 그리고 성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자신이 스스로 부족하다 느끼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결심이 서야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도 잘 안다.
엄마라는 사람이 그렇다. 내 아이가 큰 실패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큰 아픔도 없었으면 좋겠으니까, 좋다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게 본심이다.
좋다는 건 다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내 방법을 강요하고 설득했다. 아이가 제대로 못하면 강압적인 방법이라도 써 가면서.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강요가 오히려 아이를 더 무기력하게 했다는 것을 모른 채.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는 게 맨날 놀기만 하니?'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말이 왜 그리 못 미더운지.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역할을 서술한 책이 많다. 책에선 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게 부모의 몫이고, 아이의 독립을 응원하고 부모도 아이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지만, 내 행동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마음 깊은 곳에선 실패하며 헤매지 말고 정도만 걷길 바라는 마음이 여전한가 보다. 나도 내 몫을 못하고 있으면서 아이에게 제 몫을 다하라고 말하니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아이와 나는 오늘도 동상이몽 속에서 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버틸만하다는데서 숨통이 트인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오늘을 버티는 게 사춘기를 보내는 내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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