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기회라는 환상

내가 양보한 장학금이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by 라이팅게일

10월로 가는 문턱의 하루 편안하셨나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작가 #라이팅게일 입니다.


오늘은 한국 나이로 고2, 이곳 캐나다에서는 최고 학년인 12학년이 된 딸아이가 지난 여름 방학에 참여한 한 과학 캠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해당 대학은 과학 및 기술 분야로 특화된 곳이었고 캠프는 스무 명의 학생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어서 아이는 별도의 선발 과정을 거쳤습니다. 캠프 요강에서 제 눈에 띄는 것은 경제적 지원이었습니다. 캠프 비용은 굉장히 저렴했는데요, 1주일간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고 그 외 대학 내 리서치 프로그램과 다른 도시로 현장 학습 등 다양하고도 질 좋은 활동이 포함되어 있었고 민간에서 주최하는 비슷한 수준의 캠프에 비해 50퍼센트 이상 저렴한 수준이었어요.


저는 대학 졸업 후 동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행정 조교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인재개발원이란 부서 소속이었는데 채용 박람회를 주최하거나 애니어그램 검사, 토익 시험을 제공하는 등 주로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곳이었어요.


하루에도 수십개씩 외부 기관이나 회사로부터 학교로 채용 공고나 관련 공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중에는 알짜배기 기회들, 잘 알려지지 않은 공기업들의 추천서들도 있었죠. 보통 우리는 이런 추천서라고 한다면 홈페이지에 올리고 홍보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신청서를 받은 후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발, 가장 뛰어난 학생에게 해당 기회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당시 인재 개발원 부서에 일하는 직원들은 업무량에 비해 적은 인원인 6명 남짓이었고 채용 추천 공문과 같은 것은 주요 업무도 아니었죠. 그런 과정으로 처리하기엔 인력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럼 이 기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평소 부서에 자주 방문해 이것저것 질문하는 학생들, 자주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행사에 동원되어 도와주는 학생들, 부서에 봉사활동하는 학생들이나 그 학생들이 추천하는 학생들에게 갔습니다. 그마저도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그 기회들은 그저 사라지는 종잇장이 되었죠.


그때 배웠어요. 기회라는 것은 늘 공정한 절차를 거치거나 모든 스펙을 갖춘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는 것을요.






다시 아이 캠프 이야기로 돌아와서, 민간에서 주최하는 캠프 보다 더 질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했지만 가격은 굉장히 저렴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외부에서 스폰서를 받았다는 이야기죠. 캐나다에서 과학 기술 분야로 유명하고 산학 협력이 잘 되어 있는 대학인 걸 감안하면 놀라울 일도 아니었죠. 이후 아이에게 캠프 후기를 들어보니 저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아이는 캠프에 지원할 당시 장학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캐나다에서 다른 직군에 비해 고연봉에 속하는 개발자인 남편의 소득으로는 해당이 안 될 것이라며, 거기다 장학금이 쓰이더라도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가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캠프에 장학금이 있다는 건 그만큼 예산이 책정이 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예산은 어떻게든 반드시 쓰여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받을 수 있거든요. 대학 내 장학금은 굵직한 것들로부터 아주 자잘한 것들까지 굉장히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 말인즉슨 소득증명을 해야 하는 장학금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아이와 남편은 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반신반의했죠. 저는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아이가 배우길 바랐습니다. 캠프 금액을 지불할 수 있었지만 그건 부모의 돈이지 아이 능력은 아니죠. 그것은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이 대학 등록금을 기꺼이 낼 수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아이가 스스로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는 무사히 스무 명 안에 선발되어 캠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장학금 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서 안에는 연간 소득 수준 범위 항목, 장학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왜 장학금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의만 있었을 뿐 별도의 소득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캠프 비용의 반액을 신청했고 이유란에는 저희 집 경제적 사정에 대해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지구과학에 진심인 딸아이의 열정과 이 장학금으로 아이가 캐나다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것도 잊지 않았죠.


놀랍게도 신청서를 보낸 하루 만에 장학금 수혜자가 되었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그것도 전액 장학금이었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남편과 아이의 얼굴엔 놀란 웃음꽃이 피었고 덕분에 식구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귀한 캠프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아이가 직접 경험을 통해 기회의 숨은 진실에 대해 배울 수 있어 기뻤습니다.


기회는 비단 대학 내 장학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회에 앞서 지레 짐작해 시도조차 안 할 때도 많지요.


5년 전 저는 3년간 맨땅의 헤딩 해외 취업 준비 기간을 지나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3개월 계약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저는 해당 프로젝트에서 팀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될 수 있었을까요?


해당 프로젝트 팀장 공고에 지원한 덕분입니다. 만약 나는 3개월 경력 밖에 없으니 당연히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더라면 그 기회는 제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일한 것은 3개월이었지만 그간 지켜본 팀장의 역할은 과거 담임교사 업무와 비슷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했습니다. 그 경력을 높이 사주신 덕에 저는 캐나다에서 첫 취업한지 3개월 만에 팀장으로 승진 이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는 준비가 완벽히 된 사람이나 성적이 가장 좋고 화려한 스펙을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아무리 크고 빛나는 기회라도 우리는 그보다 더 거대하고 반짝이는 존재란 것을요.


어디 계시건 빛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라이팅게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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