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강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23년 10월 어느 날 무릎이 붓기 시작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출근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거 왜 이러지?'
목발을 짚은 채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피검사를 하고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연골 파열이 의심된다며 확인 후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때 나는 아픈 것보다 돈 걱정이 되었다.
'MRI 비용 비싸다고 하는데 갑자기 이걸 어떻게 내지? 또 카드 할부 해야 하는 건가?'
아픈 순간에도 돈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서러웠다.
그래도 아프니 어쩌겠는가? 보험을 알아보며 입원 수속을 진행했다.
그날 저녁 바로 MRI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50분가량 나 홀로 윙윙 거리는 기계 속에 있었다.
몸과 마음이 차가웠다. 50분은 마치 5년, 아니 50년이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의 궤적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행복했던 기억, 서운했던 기억 그리고 지금 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는 모습이 생각났다.
학창 시절 친구들, 대학에 입학하여 지금 배우자를 만났던 일도 떠오른다.
아이 셋을 낳고 지금까지 키워왔던 모든 순간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있어야 하는가? 죽을병은 아니지만 나이 40에 무슨 일인가?'
눈가에는 서러움으로 인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의 눈물엔 앞으로 살아갈 삶의 변화를 다짐하는 결심이 함께 있었다.
다음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픈 다리로 인해 잠도 오지 않는다.
병실에는 시계 초침 소리만 가득했다. 째깍거리는 소리는 들리는 데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다음날 오전 선생님은 '통풍성 관절염'이라는 말씀을 했다.
다행히 연골이나 뼈에 이상은 없었다.
그래 난 통풍환자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술과 몸에 해로운 음식을 매일같이 섭취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을 마시고 늘 피곤한 상태로 살았다.
군대에 갔을 때는 건강한 몸이었지만 제대 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자리는 더욱 늘어갔다.
'일하고 먹고 자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 나쁜 생활 습관을 반복했다.
결국 30대 초반 일이 터졌다.
업무차 독일에 출장을 갔다. 맥주와 소시지의 나라 독일말이다.
10일 간 엄청난 양의 술과 육류를 섭취했다.
귀국하기 전날 복숭아 뼈가 붓기 시작했다.
발목이 삐었다고 생각하고 파스를 뿌려댔으나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결국 응급차를 타고 비행기를 탔고 항공기 뒷자리에 누워 귀국했다.
이후 찾은 응급실에서 통풍 확진을 받았다.
그렇게 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통풍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통풍 발작이 2~3회 반복되었으나 아플 때만 약을 먹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여전히 술과 몸에 해로운 음식을 달고 살았다.
아이 셋을 키우는 10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살았다.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잠자리 들기 전 소주 한잔이었다.
생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잠시 했지만 꾸준히 하지 못했다.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좀 아프면 어때. 약 먹으면 되지.'라며 내 몸을 점점 망가트리고 있었다.
회사 업무 특성상 술자리가 많았지만 내가 먼저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MRI 기계 속 50분, 의사 선생님께 진단받은 순간에 난 결심했다.
'이번엔 다르다. 생활 습관 바꿔낼 것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배우자 얼굴을 떠올렸다.
퇴원하며 다시 결심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것을 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두 다리 튼튼하게 걸어 다닌다.'
마흔을 넘어서는 시점에 찾아온 건강 적신호는 나에게 행운이었다.
지난 40년을 떠올리게 했고, 변화를 결심하게 했다.
루이스 E. 분이 말한 인생에서 슬픈 세 가지를 내가 다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있었는데, 했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바쁜 생활 속에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고, 지난 시기를 후회만 하며 살았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지 못했다.
'잘 되겠지. 누군가 내 인생 책임져 주겠지'라며 소극적인 자세로 살았다.
작은 아픔이었지만 변화될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다.
'정면돌파'
마흔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시기, '불혹'이라 이야기한다.
나의 마흔은 좀 다른 것 같다.
하루를 소비하며 살았던 나는 생산자로서 변화될 결심을 한다.
하루를 충실히 살며 이제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마흔에 찾아온 건강 문제와 함께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불편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인 문제.
어떤 어려움이 변화를 결심하게 했는지 계속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