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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06. 2024

울고 있는 얼굴이 된다

[그곳에 같이 갈래요?] 퍼핀

자전거를 타고 나면 항상 울고 있는 얼굴이 된다. 정말로 우는 것은 아니기에 슬픈 것은 아니지만. 먼지 가득한 바람을 맞으면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자꾸만 촉촉해져 늘 그런 얼굴이 된다. 뿌예진 시야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눈가를 문지르면 소매에 아주 작게 젖은 자국이 생긴다. 그 자국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슬프지 않지만 슬픈 마음이 되고, 울지 않았지만 운 셈이 된다. 그렇게 찔끔찔끔 울고 자전거에서 내리면 이상하게 후련하다. 도둑 눈물의 맛을 알아버린 탓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먼지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편안하기만 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릴 때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이 생각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없어졌다는 것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언가가 무너지는 순간에는 늘 먼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다. 건물이 무너질 때도, 무언가 불에 탈 때도, 하다못해 이사를 갈 때도. 사라지는 것들에는 지독한 먼지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래서 사라진 것들을 너무너무 그리워하다가도 먼지 냄새를 먼저 생각한다. 눈물을 먼지 냄새 탓으로 돌려버리면 금방 괜찮아질 수 있기에. 내 슬픔도 눈물도 진짜가 아니게 되니까. 


먼지 냄새 중에서도 가장 짙고 지독한 것이 책 먼지 냄새다. 얇은 종잇장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 먼지는 입자가 작아 그 밀도가 어마어마하다. 그렇기에 늘 낯선 곳에 가면 책이 있는 공간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에 가게 되면서 가장 먼저 정을 붙인 곳도 먼지 가득한 학교 교지편집실이었다. 유달리 해가 들지 않아 늘 밖보다 냉기가 도는 곳. 작은 공간에 비해 널찍한 6개의 책상들과 낡은 간이침대가 이 장소의 목적을 증명하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벽면을 가득 채운 낡은 책들의 먼지 냄새가 가득한 곳.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교지편집실의 먼지가 얼마나 지독했는지가 아니다. 이제 나는 교지편집실을 생각하면 낡은 책 먼지보다도 이삿날의 먼지들을 먼저 생각하기에.


교지편집실에서 찔끔거리며 우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학교 측의 공문을 받았다. 학교에서 학생복지 혁신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이 사업비로 교지편집실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니 사용할 수 있는 전자기기를 제외하고 방을 모조리 비워달라는 내용이었다. 공문이 적힌 종이를 계속 뒤적거렸지만 반복하여 적힌 ‘혁신’과 ‘복지’라는 단어들이 머리에 제 뜻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서진 나의 의자 바퀴, 밑동이 부러진 책상, 뚜껑을 잃어버린 책장…… 어느 틈에 찍어갔는지 모를 사진들은 나의 공간이 얼마나 낡고, 먼지투성이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도 불쾌했다. 그 사진들이 여러 어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그들의 입에서 먼지 냄새가, 내 눈물이 멋대로 이야기되고 버려지는 것을 상상했다. 정말로 단 한 마디의 의논도 없었다니. 나의 눈물을 빼앗겨버린 기분이었다. 익숙하게 먼지들 사이에서 울다가 더 서러워졌다. 내가 이 슬픔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먼지 냄새를 이야기하려면, 내 눈물을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눈물이 결국은 나의 것이라고 뱉을 때 무엇이 부서져 버리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마지막까지 먼지들을 치우지 않다가 공사 전날 밤 혼자 교지편집실에 왔다. 못 보던 사이 구석에 검정 테이프로 구분된 작은 공간이 있었다. 남길 물건들은 모두 이곳으로 옮겨두라는 것이다. 책장에서 오래된 책들을 순서대로 빼서 상자에 담은 다음, 검정 테이프 안에 쌓기 시작했다. 한 권을 꺼낼 때마다 종이 사이에 놓여있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를 잃고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작은 공간은 빠르게 채워졌다. 나는 쌓고, 또 쌓았다. 네 겹의 상자를 쌓을 때쯤에는 그 크기가 이미 나의 키를 넘어섰다. 나는 꿋꿋하게 책상을 밟고 올라서 책을 그 위로 올렸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모조리 옮기고 검정 테두리를 바라봤다. 책들이 잔뜩 쌓인 모양새는 너무 크고 또 너무 작았다. 고작 이 정도. 내 애정과 슬픔이 고작 이 정도로 작은 사각형 안에 담긴다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자 손에 묻은 먼지들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헛기침이 계속 나왔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에 눈물 맺힌다. 이게 다 먼지 때문이야. 얼굴을 자꾸 손으로 닦아냈다. 


아침이 되고 인부들이 서성거리자 학교에서 나와 자전거를 탔다. 집의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조금 더 오래 먼지바람이 필요했다.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는 초등학교, 할머니들이 복작거리는 야채 가게,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지나친다. 눈가가 축축해지면 잠깐 멈춰 서서 닦아내고 익숙하게 음울한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다시 페달을 밟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눈앞에 재개발 공사로 모두 무너져버린 아파트의 터가 보였다. 어떤 형태라고 말할 수 없는 흙먼지만 가득한 공간. 하지만 아파트였던 것. 누군가의 집이었던 것. 누군가의 공간이었던 것……. 익숙한 먼지 냄새에 그대로 엉엉 울어버렸다. 차마 그 먼지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계속 그렇게 울면서 폐아파트 단지를 달렸다. 


건물은 지어진 지 30~50년 정도가 되면 그 뼈대가 약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안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며 결과에 따라 때로는 그 건물을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한다. 교지편집실을 생각한다. 후에 그 공간을 쓰게 될 누군가는 콘센트가 달려있는 신식 책상과 푹신한 의자를 고마워할 것이다. 들어올 때마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적당히 상쾌한 공기를 좋아할 것이고, 단단한 책장에 차례로 깔끔하게 꽂힌 책들을 천천히 읽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 하지만…….


무너진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살고 있을까. 그들은 충분한 이별을 했을까. 그랬다가도 문득 사라진 공간이 너무 그리워지는 순간에는 어떻게 견뎌낼까. 자리를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도 울고 있는 얼굴로 자전거를 탈까. 자전거의 페달을 다시 밟는다. 익숙한 먼지바람이 세차게 스치고 얼굴이 조금씩 붉어진다. 눈가가 시큰해진다. 또 다시 울고 있는 얼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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