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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동자 Jul 23. 2019

내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다.

편집자로서 보낸 실패의 1년 돌아보기

사실은 글을 쓰는 지금 시점이 더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지점이지만, 2018년은 개인적으로도 흥미 있는 일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업무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팔자에도 없는 팀장이 된 것. 팀장이 됐다고 해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고깔 하나 둘러쓰고 액막이하는 게 전부였지만, 어쨌든 조금 낯선 일을 갑자기 하게 됐다. 해야 해서 하게 됐고, 하고 나니 욕심이 났다.



아 그러니까 저 말씀하시는 거죠?로 시작한 2018년

쪽팔리기 싫어서

뭐라도 써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글에만 집중했던 시간보다, 남의 글을 읽고 뭐라도 반응해야 했던, 그리고 이 기대에 호응해야 하는 글을 써야 했던 이 시간에 내 엉망인 글들을 좀 더 다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난 늘 수줍어지는데, 아무리 봐도 내 글이 내 마음엔 도통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 밥벌이를 하는 만큼, 글 쓰는 데는 자신 있다는 걸 자기최면처럼 되뇌며 다녔지만, 아직 내가 내놓은 글이 내 기준에서 합격한 일은 별로 없다. 


처음엔 반쯤 지목받아 ‘어 저요?’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나름의 포부는 있었다. 남의 글을 보고, 동시에 내 글을 쓰며, 나는 답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이고, 그래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 소비자가 우리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합리적 소비를 이끌 수 있는 글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 기조가 잘 녹았는지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모르겠다. 그것보다 해야 할 일, 써야 할 글이 너무 많았다.


어쨌든 열심히 읽고, 열심히 화답했고, 쪽팔리지 않게 열심히 글을 썼다. 일을 마무리하며 매월 몇 개의 글을 썼는지 통계를 내봤는데, 글 수는 줄었으나 전체적인 분량은 제법 많이 늘었다. 글을 이만큼이나 열심히 쓰다니. 꾸준히 운영하던 개인 채널을 개점 휴업하게 될 정도로 회사에서 열심히 썼다. 브런치를 열고 여기에도 글을 남겨놔야지...라고 개설은 서둘러 했지만, 결국 첫 삽을 뜬 건 한 해가 지나 일을 내려놓은 후에서였다.



아마도 실패로 기록될

지난 1년


합리적인 소비자의 위치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했고, 우리가 모두 목표를 공유하길 바랐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혼자만의 목표였지만, 내가 좋은 영향을 미쳐 더 나은 글이 나오길, 그래서 글쓰기가 더 즐거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냉정히 결론을 내려보자면 작년 한 해는 결코 성공한 해는 아니었다. 내 결과물과 그 성과를 개인의 나와 조직 속의 나로 나눠보자면 결과는 한층 선명하다. 조직 속의 나의 성과는 내놓은 (슬프지만) 기사의 조회수와 같은 수치로 판가름 나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개인의 나 영역에서 내 결과물은 스스로 만족했지만, 역시 이를 수치화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는 기거하는 플랫폼이 운영을 엉망으로 한 탓도 있지만, 개점 휴업 상태로 내버려 둔 탓이 크다.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게 패착의 이유랄까. 지나고 작년을 돌아보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크다.



나라고 어떻게 알겠어

그냥 쓰는 거지 뭐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니 뭐니, 어쨌든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쓰는 글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되짚어볼 기회라는 게, 말은 쉽지만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 어쩌면 평생 벌어 먹고살지도 모를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덤처럼 붙잡았달까? 나는 어떻게 글을 쓸 때 쉽게 쓸 수 있는지를 알았고, 좀 더 반응이 좋은 유형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남을 좀 더 신경 쓰는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아보자면 글에 관해 오갈 데 없는 낙천성이 생겼달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글을 쓰면서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앞선 실패는 정량적인 결과를 올려놓고 계산기를 두드려본 것이고, 정성적인 결과만 놓자면 나쁘지 않았다.


내 글이라서가 아니라 작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글이 조금은 시시하게 보이기 시작한 탓이랄까.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흰 백지 앞에서 무턱대고 겁내기보다는 이젠 뭐라도 써볼 수 있는 용기 한 줌은 생긴 것 같다. 이번 글보다 다음 글은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리란 기대감. '나라고 어떻게 알겠어. 그냥 쓰는 거지 뭐.'하고 자리에 붙어 앉아 키보드를 조금 두드릴 수 있는 근성도 한 줌.



이렇게 여름밤 산책을 끝내고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글을 끼적이고 있는 것도 그런 탓이다. 내게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던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제 침대에 드러누우러 가겠다. 이다음 글은 이번 글보다 더 나은 글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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