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짙은 선팅이 되어 있는 차창인데도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한줄기 봄 햇살은 오른쪽 귓가 언저리를 따스하게 만든다. 조수석에 앉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길가 벚나무들을 구경했다. 모자를 쓴 이유는 기분이 우울해서가 아니다. 이마 한 군데, 우측 광대뼈 한 군데 총 두 군데 점을 뺏기 때문에 차양을 위해 착용했다. 레이저를 피부에 쏘았으니 자외선 차단에 애써야 한다는 병원 지시가 있어 야외에 나가 벚꽃 구경 하자는 걸 극구 사양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지나간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전국 벚꽃이 만개했다. 아주 옅은 분홍빛이 도는 벚꽃, 살짝 미색 가까운 노란끼가 가미된 벚꽃, 눈처럼 하얀 벚꽃, 일조량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지 봉우리 시절 맞아온 바람의 강도에 따라 부드러운 바람을 쏘이면 안정적인 핑크색이 되고 바람기가 별로 없으면 하얀 와이셔츠 색이 되는지 그건 모르겠다. 내 눈에는 나무마다 꽃 색깔이 달라 보인다는 게 중요하다.
혹자들은 벚꽃이 일제의 잔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만, 그렇다고 내가 친일 사상이 있는 건 아니다. 꽃이 예쁠 뿐. 일본 소설도 즐겨 읽고,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벚꽃도 좋다. 그런다고 해서 일제 강점 역사를 잊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벚꽃을 보고 예쁘다고 말해도 나는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유독 눈에 잘 띄는 건 분홍빛 벚꽃이다. 희미한 핑크색이 빛에 반사되면 수정 구슬처럼 찬란하게 반짝인다. 강렬한 진핑크도 아니고 이건 뭔가 싶은 촌스러운 분홍도 아니다. 옅고 희끄무레하고 각도에 따라 흰색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핑크색 벚꽃. 복숭아향 팝콘이 나온다면 그런 색깔일까. 피치 팝콘. 그렇군! 피치 팝콘이라는 간식을 영화관 앞에서 튀겨 판다면 벚꽃 무더기 비슷할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담한 묘목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신도시라 강남대로변에 있는 울창한 플라타너스 같은 장엄한 나무가 아니라 짤막짤막한 벚나무들이 몇 개의 가지에 일렬횡대로 꽃을 피우곤 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도 어렸다. 벚나무 키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도 자랐다. 몇 해 전만 해도 놀이터에서 재잘거리며 뛰어놀던 아이들이 어른 키만큼 커져, 무리 지어 트램펄린 주변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변성기 걸걸 거리는 목소리로 자기네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도 있다. 아참! 동네에 유명한 공원이 있어 거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나들이 오는 상춘객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아마도 유모차를 밀고 오는 사람들 중엔 외지인도 있을 것이다. 요즘 유모차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홀더가 장착되어 있나 보다. 유모차를 미는 손잡이 앞에 테잌아웃 컵 두 개를 꽂아 놓고 밀다가 목마르면 한 모금 마시곤 하는 모양이다. 유모차 탄 아기들 머리 위에 뭐가 삐죽 나와있나 했더니 아메리카노 빨대였다. 아기 엄마들은 저걸 꺼내서 마시고 다시 꽂나 보군. 아이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일석이조다.
에잇 애들 데리고 나오지 마숑. 부럽습니닷.
그들은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아이 데리고 다니는 부부 모습을 볼 때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빨빨거리고 도망치면 아빠가 뒤따라가 숨을 헐떡 거리는 척 연기하며 냉큼 붙잡고. 붙들린 아이는 발버둥 치며 자지러지게 웃고. 벚나무 주가지가 튼실해지고 서브 가지들도 쭉쭉 뻗으면서 꽃 개수도 늘었다. 저출산이네 출산 지원 대책이네 해도 벚꽃이 늘듯 어디선가 나오는 아이들 숫자가 많아질수록 내 마음도 살살 긁힌다. 빨리 갖고 싶네요 아이.
벚나무 밑에서 꽃들 배경으로 사진 찍고 하는 건 올해는 못했다. 햇빛을 보지 말아야 하는 사유가 얼굴에 있는 한 실외로 나가긴 힘들 것이다. 혼자 찍는 독사진은 벚꽃이 아무리 예뻐도 올해는 만류하겠습니다. 꽃보다 피부요. 피부를 지키기 위해 벚꽃 구경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하하핫! 팡팡 튀겨진 피치 팝콘들 아래에서 난 덜 튀겨진 옥수수 알갱이마냥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나에게도 희망이 있답니다. 아이를 갖는다는 노력과 희망. 어서 아이가 나에게로 와주어서 아빠, 엄마, 아이 셋이 되어 벚꽃 나들이 나가고 싶네요. 아가야 엄마에게 어서 와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