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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란한 May 15. 2024

해외에서도 산은 늘 옳아 (feat. 홍콩)

이름도 예쁜 그 곳, 가든힐


한때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다니기 안전한 곳을 찾다가 평소 홍콩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홍콩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홍콩에 가보기로 했다. 홍콩의 모든 게 다 좋았지만 그중 낮은 뒷산을 올라 혼자 조용히 야경을 보며 사색에 잠겼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만에 갔을 때 올랐던 작은 전망대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홍콩여행을 계획할 때도 가벼이 오를만한 적당한 뒷산이 있는지 찾아봤다. 해외의 이국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주 오르는 익숙한 산이 주는 안락한 느낌이 좋았다.


 가든힐이라는 곳이 적당히 오를만하면서도 도심의 노을뷰를 보기에 딱 좋았다. 이름부터 너무 예쁘지 않은가. 가든힐. 여긴 무조건 가야 해 하고 일정에 넣었다. 그날 오전은 홍콩의 유명한 해변가 리펄스베이를 다녀왔다. 유독 전통시장을 좋아하는 나라서 오후에는 시장을 실컷 돌아다니며 즐겁게 구경했다.


오후 늦게서야 가든힐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많았고 현지 느낌이 낭낭한 게 너무 좋았다. 더운 날씨에 힘든 줄도 모르고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습하고 땀을 많이 흘린탓인지 뒷산을 오르기 전 시원한 음료와 잠시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나는 근처 아파트 상가의 어느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꽤 크지 않은 규모의 가게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더위를 식힌 후 나왔다. 잠깐 있었지만 친절한 카페 사장님과 조용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지금도 그 카페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홍콩을 가게 된다면 가든힐과 더불어 그 카페에 또 가보고 싶다.



가든힐로 가는 길은 예전에 어릴 때 살던 주택가 동네 뒷산을 가는 길과 너무 흡사했다.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었지만 낯설지 않았고 이국적이지만 또 익숙한 곳이었다. 계단을 좀 오르자 동네 뒷산 체육공원 같은 곳이 보이고 할아버지 몇 분이 맨손체조를 하고 있었다. 해외지만 우리나라 뒷산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니 참으로 정겹다.


조금 더 오르니 시멘트 바닥에 간간이 초록이끼(?)가 끼어있는 꽤나 투박하고도 자연스러운 전망대가 나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이른 오후여서 여유 있게 숨을 돌리며 풍경을 구경했다. 내 옆에는 어떤 홍콩청년이 꽤나 좋아 보이는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삼각대를 세워 혼자 사진을 찍고 있자 한껏 웃으며 다가와 본인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그때 한창 전화영어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나는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혼자 여행 온 거냐고, 본인은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 혼자 왔고, 여기는 이렇게 찍어야 더 멋있다며 나에게 사진 구도를 가르쳐 준다. 외국인이 혼자 삼각대로 고군분투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나 보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 사진을 찍어달라 했고, 몇 컷의 사진을 찍어줬다. 나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본인은 괜찮단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걸 보아 꽤나 아마추어 같은데, 딱 봐도 허접한 나의 삼각대와 구도도 잘 모르는 실력이 미덥진 않았겠지. 그렇게 있다 보니 노을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노을이 지는 뷰와 또 밤이 되어 휘황찬란해지는 도심의 뷰를 황홀하게 감상했다.


어찌 보면 서울 도심의 야경과 비슷한데도 반짝이는 건물 그리고 차량, 가로등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애잔해지고 먹먹해졌다. 다들 더 잘살기 위해 어딘가 반짝이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나 또한 이런저런 시기가 지나 다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구나, 각자의 삶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구나. 그렇게 혼자 사색을 즐기다가 해가 저물어 주황빛 가로등을 따라 계단을 내려왔다.


나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홍콩의 야경이었다.


       

홍콩청년이 찍어준 가든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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