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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Aug 07. 2024

상담실을 찾다 (1)

 망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학교가 아닌 내가. 비단 기정과의 관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좌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교실 운영에서도 손을 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꼭 그만큼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실망과 경멸, 체념의 빛을 읽었다.

 “담임이 멍청한데 착해서 더 화가 나.”

 어느 날은 내가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을 때, 문 안쪽 맨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내가 온 줄을 모르고 뒷줄의 친구에게 나에 관해 험담을 하고 있었다. 짐짓 모른 체하며 교탁 앞에 섰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시에 나는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상태였다. 수업을 하거나 동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져 해야 할 말을 통째로 잊어버린다거나, 이명과 함께 잠깐씩 정신이 끊기는 듯한 경험을 자주 했다. 건망증이 심해져서 조‧종례 시간에 전달해야 할 공지사항을 수첩에 적어놓고 빼먹는 일도 빈번해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혹독하게 비난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갔다.


 어느 순간부터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상대와 시선을 맞추는 것이 두려워져 복도를 지날 때면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공강 시간에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 멍청한 년, 병신.

 - 이러니까 내가 너를 믿지 못한다고 하는 거야.

 내 안에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 상처의 언어가 시간의 겹을 뚫고서 나를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죽고 싶었다. 아니, 죽여 버리고 싶은 건가? 어느 쪽이든지 간에 견디기 버거운 감정이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에서는 죽어가는 마음을 구하고 싶었다. 필사적으로 학교 근처에 있는 상담 센터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마음공간 심리상담소. 상담사는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상담 교사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는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힘들만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안한지.”

 상담사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가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향해 차분하고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눈을 감고, 어깨에 힘을 자연스럽게 풀어 보세요. 지금 너무 경직돼 있어요.”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말대로 몸이 굳어 있다고 느꼈지만 힘을 빼는 건 불가능했다. 어둠 속에서 상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에 가족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좋았어요. 부모님 모두 저를 무척 사랑해 주셨어요. 어릴 때 오빠와 자주 다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가 아주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구요.”

 “성장 과정에서 힘들었던 기억은요?”

 “글쎄요.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를 제외하면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들다고 해봤자 다른 사람들도 다들 겪는 문제인걸요.”

 타닥타닥. 상담사가 부지런히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내게 눈을 떠도 좋다고 말하며, 맨 위에 ‘감정 일지’라고 적힌 종이를 건넸다. 짤막한 한숨과 함께.

 “요즘에는 교사라고 해도 참 어린애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온단 말이야.”

 상담사의 말에 종이를 건네받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상담자로서 그녀가 괜찮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은 한 회기, 10회차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절실하게 도움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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