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 Jul 31. 2024

기정 (3)

한계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를 맞았다. 개학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기정이 종례 시간을 앞두고 핸드폰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교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 행동을 기정이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라고 해석했다. 묵직한 핸드폰 가방을 들고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기정의 뒷모습을 미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뒤집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월 말. 이번에는 폭행 사건이었다. 다른 반 학생과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주먹을 휘둘러서 학생부로 불려간 것이었다. 학생부를 다녀온 기정이 교무실에서 멋쩍은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서 있었다. 그애의 웃는 얼굴에 거부감이 들었다. 너무 싫어. 나는 화가 난 감정을 그대로 기정에게 퍼부었다.

 “하, 2학기가 돼서 좀 정신 차리려나 기대했는데……. 개학하고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짓을 한 거니?”

 “선생님, 일단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그 자식이 저를 먼저 도발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기정의 말을 가로막았다.

 “변명하지 마. 화가 난다고 해서 다 너처럼 욱해서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아.”

 기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네가 그애를 때린 순간부터 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거야. 알겠니?”

 나는 기정의 눈을 쏘아보며 힘주어 말했다. 기정은 입을 다문 채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선생님, 저 다음 달에 전학 갈 거예요.”

 기정이 나에게 이 얘길 꺼낸 건 일주일 동안의 정학 처분을 받고 난 다음날이었다.

 “갑자기 전학이라니, 어디로?”

 “근처에 있는 S고등학교로요. 어머니께서 학교 앞에 원룸을 잡아주신다고 했어요.”

 “뭐? 어머니께서 자취를 허락해주셨다고?”

 나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기정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학 가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거기에 가면 징계 기록도 없어질 테니까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니?”

 “네.”

 빈정대며 물어본 말에 기정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뾰족하게 대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

 “S고등학교면 우리 학교랑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거기에 네가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어?”

 “몇 명 있긴 한데, 걔네들 신경 안 쓰고 생활할 자신 있어요. 아, 선생님. 저 좀 제발 믿어 주세요.”

 “믿어달라고? 그럼 평소에 믿음이 가게 행동을 했어야지. 어머니와 같이 살아도 이정도인데, 혼자 자취를 하면서 생활 태도를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정말로, 할 수 있어요.”

 기정이 힘주어 대답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단 알겠어. 선생님이 오늘 중에 어머니랑 통화해 볼게. 너도 전학을 가는 게 진짜 도움이 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

 “알겠습니다.”

 기정이 나가고 나서 나는 저녁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장 기정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잠깐만요’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가게 밖으로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어머님,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에 기정이가 저를 찾아와서 다음 달에 전학을 갈 계획이라고 말하고 갔는데, 사실인가요? 듣기로는 S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원룸에서 자취를 할 거라는 데요.”

 “맞아요. 제가 그러라고 했어요. 차라리 애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사고를 좀 덜 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녀의 대답이 무책임하다고 여겨져 화가 났다. 나는 냉랭하게 되물었다.

 “그게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요. 아니면 아이에게 휘둘리는 일일까요.”

 몇 초 간 침묵이 흐르고, 이어 긴 한숨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글쎄요.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결국 기정은 전학을 가지 못했다. 자신의 기대가 꺾였다는 사실을 안 직후부터 기정의 태도는 돌변했다. 한동안 나는 그애의 직설적인 분노를 온몸으로 받았다. 가령 복도에서 나와 마주쳤을 때 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한다거나 입모양으로 내비치는 욕설 같은 것들. 한 번은 수업 중에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대로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대체 왜 전학을 안 보낸 거예요? 그럼 서로가 편했을 텐데.”

 기정과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옆자리에서 지켜본 동료 선생님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이 상태에서 S고등학교로 전학을 보내면, 아이의 상태가 더 나빠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쯧. 그녀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행동이 어쩐지 나를 향한 무언의 비난처럼 느껴져 낯이 뜨거워졌다.

 그 시점에서 나는 한계선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기정을 도울 수 없었다. 도리어 돕는다는 명목을 앞세워 기정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만 냈을 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