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약속
그해에 나는,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데 무력감을 느꼈다.
대표적인 문제는 출결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지각을 하면서 태연하게 병원에서 진료확인서를 받아왔다. 확인서의 사유란에는 어김없이 ‘상세 불명의 OO’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장 흔한 병명은 복통이나 두통 같은 것들이었다.
교무실에 찾아와서 조퇴를 요청하는 학생들도 매일 끊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정말로 아픈 아이들과 교실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매달 지각과 조퇴, 결석에 따른 신고서와 증빙자료들을 합치면 어지간한 책 한 권 분량이 나왔다. 놀라운 점은 이런 변화가 내 체감상 불과 1~2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차츰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텐데’라는 회의가 나를 잠식해갔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딱히 방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무너져 가는 학교에서 문제 현상의 이면을 차분하게 들여다볼 여유를 갖기란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그저 당면한 과제를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버거운 실정이었다.
반에서는 학생 한 명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애의 이름은 박기정으로 자기보다 한 학년 위인 ‘오주환’을 친한 형으로 따르는 무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기정이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
만일 4월 어느 날에, 기정이 청소를 마친 빈 교실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지 못했더라면, 나는 기정에게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잔뜩 풀어진 얼굴로 곰살스럽게 어머니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그간의 이미지와 상반돼서 인상에 또렷이 남았다.
마침 그 다음 주가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나는 일말의 호기심을 품은 채로 기정의 어머니와 통화를 시도했다. 몇 차례 신호음이 가고, 명랑한 톤의 목소리가 나를 맞았다. 그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잡음처럼 들렸다.
“선생님, 제가 지금 식당에서 일을 하는 중이라 길게 통화하기가 어려워서요. 괜찮으시다면 저녁 9시쯤에 제 쪽에서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까봐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약속한 시간에 맞춰 핸드폰이 울렸다. 낮에 들었던 것과 다르게 목소리에서 피로가 느껴졌다. 30분 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그녀로부터 학기 초 기초조사 자료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내밀한 가정 사정을 전해 듣게 됐다.
“실은 제 남편이 화가 나면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를 때가 많아요. 기정이도 어릴 때는 힘이 약하니까 대응을 못했었는데, 사춘기가 지나면서 같이 싸우는 일이 부쩍 늘었어요. 학교에서도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솔직히 이 상황이 너무 벅찬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녀의 말투에서 흐느낌이 묻어나왔다. 그 순간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자석처럼 이끌려 그녀를 향해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을 했다.
“……어머님도, 기정이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안타까워요. 저도 힘껏 도울게요. 기정이도 분명히 어머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당시에 나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말의 무게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순진하고 오만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