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 Jul 09. 2024

세 번째 사건

누구도 다치지 않는 결말

 이듬해 3월에 나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세 번째 사건은 4월 첫 주에 열린 학부모 총회로부터 불거졌다. 교실에서 열댓 명 남짓한 학부모들 앞에서 학급 운영 방침을 이야기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에 저녁 9시 무렵이 돼서야 총회를 마무리했다. 교실에 남아서 노트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자리에 홀로 남아있던 학부모 한 명이 머뭇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까 정은이 어머님이라고 하셨죠. 혹시 저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네, 실은……. 선생님께 얘기를 해도 되나 지금도 망설여지는데,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윤리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한 번씩 성차별적인 얘기들을 농담처럼 꺼내신다고 하더라구요.”

 “윤리 선생님이요? 그게 정말인가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윤리 선생님은 평소 말수가 적고 점잖은 분위기를 풍기는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정은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이에게 들어보니 여학생들이 불편해 할 만한 얘기들이어서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염려가 됐어요. 선생님께서 윤리 선생님과 한번 대화를 나눠 보시고, 주의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너무 염려치 마세요.”

 나는 온화한 말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나에게 당부했다.

 “이 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알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때 사실 나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크게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갈등을 봉합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머릿속으로 한수현 선생님과, 주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만으로 열세 살이던 시절의 나. 어느 날 밤에 친오빠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옷 안에 손을 넣어 몸을 더듬었던 기억. 소스라치게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정신이 들었지만, 애써 몸을 뒤척이며 오빠가 나에게서 떨어질 때까지 자연스레 잠에서 깨어나는 시늉을 했었다. 다음 날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과연 그날 밤에 오빠는 내 방문을 열지 않았다. 수치심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사건을 필사적으로 지우려 애쓰며 가족을 향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나는 괜찮아. 이 일로 상처받지 않았어. 내가 입을 다물자 일상은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극도로 불안정했던 감정들도 시간이 흘러감과 함께 어느덧 의식의 표면 아래로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튿날 학교에 출근해서 자세한 정황을 듣기 위해 반장과 부반장을 학년 상담실로 불렀다. 아이들은 반에서 다수의 여학생들이 윤리 선생님의 말을 불쾌하게 여긴다는 데 동의했다. 게다가 다른 반 친구와도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나에게 건넨 진술서에는 ‘예쁜 사과가 맛이 좋은 것처럼 여자도 예뻐야 보기 좋다’는 발언을 비롯해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내용들이 제법 포함돼 있었다.

 혐오감이 치밀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윤리 선생님이 순순히 학생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문제의 발언을 여러 반에서 했다면, 사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 대 일로 대화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그가 수업에 들어가는 학급의 담임 선생님들을 회의실로 불러 사안을 밝혔다.

 “우선은 각 반 담임 선생님들께서 학급 임원들을 통해서 실태를 파악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네요.”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들 가운데 한 명이 내 말에 동조하며, 전반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였다. 학생부에서 오래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남자 선생님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제 생각에 이런 문제는 매뉴얼대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학년부장 선생님에게 보고를 한 뒤에, 부장님의 지시에 따라 담임 선생님들이 행동을 취하는 게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그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 여러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년부장은 승진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와는 별개로 관리자의 명령을 절대로 거스르지 않을 사람이었다. 새로 전근 온 선생님들 몇을 제외하면 자리에 모인 선생님들 모두가 나보다 이 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던 이들이니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애초에 내가 담임 선생님에게 먼저 협력을 구하려 했던 까닭은 앞선 경험들로 인해 관리자의 문제 해결 방식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런 속내를 섣불리 드러낼 수 없었다. 여론의 흐름이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그럼 선생님께서 부장님께 보고해 주시겠어요?”

 나에게 이견을 제시했던 남자 선생님이 물었다. 내가 수긍하기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압력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먼저 교장의 지시 아래 각 학급의 담임 선생님이 아닌 교감이 직접 반장들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아이들은 수업에서 윤리 선생님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내가 반 아이들로부터 들었던 얘기와는 분명 다른 내용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교감 선생님에게 한 말이 진실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왜 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굳이 교감을 끌어들였을까, 교감은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질문을 던졌을까, 아이들의 대답은 과연 생기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인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 교장은 나를 교장실로 호출했다.

 “선생님을 부르기 전에 윤리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얘기를 해 봤는데요. 원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선생님 반에서 분위기를 띄우려다가 그만 실언을 하셨던 모양이에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리면 본인이 하는 말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니까 어쩌다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어쨌든 다음번 수업에 들어갈 때 아이들 앞에서 사과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선생님도 동료 선생님의 징계를 바란 것은 아닐 테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교장은 내 앞에서 최초에 문제를 제기했던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처벌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 이 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학부모 총회 날에 정은의 어머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일 내가 그녀의 말에 따라서 윤리 선생님과 대화를 시도했더라면, 그녀의 바람대로 됐을까? 그편이 옳았을까?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화장실 배수구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처럼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어쨌거나 윤리 선생님은 약속을 지켰다. 아이들의 아량은 나보다 훨씬 넓었다. 나는 이 세 번째 사건을 거치면서 학교를 완전히 불신하게 됐다. 관리자들뿐만이 아니라 동료 선생님들마저도. 그간 문학 수업을 통해서 가르쳐왔던 연대라는 개념은 어린 아이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끈을 여전히 놓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향하지 못한 증오심이 칼날의 방향을 바꿔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 다 네 잘못이야. 네가 비겁하고 어리석어서 일을 망쳤어.

 몇 번이고 회의실의 장면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난도질했다. 아주 가끔씩 내면에서 다른 목소리가 올라오기도 했다.

 - 그래도 네가 문제를 드러내서 그나마 사과가 이루어진 거잖아. 윤리 선생님도 앞으로 조심하겠지.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이어지는 비난 앞에서 금세 힘을 잃었다.

 - 아니, 네가 받아낸 건 겨우 반쪽짜리 사과에 불과해. 게다가 너는 그때 회의실을 나오면서부터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모든 과정에서 손을 놓고 있었지. 책임지는 게 두려웠던 거야.

 - ……

 자신을 혹독하게 질책하는 비난의 목소리 앞에서, 더는 어떤 변명도 무의미했다.  

 한편 마음의 다른 층위에서는 윤리 선생님을 향해 품은 감정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싹튼 의심이 거둬지지 않았던 탓에 나는 윤리 선생님이 진정으로 학생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사과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처벌받기를, 아니 본심으로는 학교에서 그의 존재가 사라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경할 정도로 강렬한 분노가 과연 윤리 선생님만을 향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전 02화 두 번째 사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