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 Jun 25. 2024

첫 번째 사건

균열

 나는 11월 초순에 태어났다. 곧 다가올 추운 계절을 지나기 위해서 이름에 온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작명소 주인은 내 부모에게 ‘南延(남연)’이라는 이름을 내주었다.

 ‘남쪽으로 이끌다’라는 의미인데, 어릴 적에는 내 이름이 썩 내키지 않았다. 대체 남쪽에 뭐가 있다는 거지? 세상에 좋은 뜻이 담긴 예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나에게는 이런 센스도 성의도 없어 보이는 이름이 따라붙었나 싶어 그런 이름을 작명소에서 덥석 받아온 부모님이 약간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건 2019년 이후로 나에게 일어난 여러 변화들 가운데 하나였다.




 2019년에 나는 세 번째 근무지였던 K고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당시에는 교직에 남으려면 마음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확신처럼 품고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얽혀 있지만, K고교에서 2년 동안 근무하면서 겪었던 세 개의 사건과 학생 한 명과의 관계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개중에 첫 번째 사건은 2017년, 학교를 옮긴 첫해에 2학년부에서 함께 일했던 한수현 선생님에게 벌어졌다. 그녀는 영어 교사로 나보다 나이가 일곱 살 많았다.

 우리는 평소에 따로 만나서 밥을 먹거나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교무실에서 서로 재밌게 읽은 책을 추천해주거나, 가벼운 수준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친밀감을 공유했다. 우리 사이에 공통점은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라는 만화책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수현은 초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은근하게 배어 있었고, 편안한 옷차림을 즐겼다. 나는 그녀의 수더분한 모습에서 곧잘 들꽃의 이미지를 연상하곤 했다.


 사건의 발단은 수현의 반 학생이었던 오주환의 무단결석에서 비롯됐다. 7월의 어느 날이었다. 결석한 다음날에 주환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수현을 찾아왔다. 결석 사유를 무단이 아닌 질병으로 정정하고 싶어서였다.

 “그럼 어제 핸드폰을 꺼놓지 말았어야지. 최소한 진료 확인서라도 가져오든가.“

 “아, 샘. 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아침부터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고 방에서 내내 잤다구요. 저녁때까지 핸드폰이 꺼진 줄도 몰랐어요.”

 제발 믿어 주세요. 실랑이 끝에 주환이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결국 수현은 한숨을 쉬며 학부모 확인서를 주환에게 내밀었다.

 내 자리는 창문을 등진 채로 수현과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파티션 너머로 주환의 얼굴이 보였다. ‘됐다!’는 표정이었다. 주환은 의기양양하게 교무실을 나갔다.


 수현이 주환에게 학부모 확인서를 건네받은 건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였다. 주환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로 아버지 혼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주환을 키우고 있었다.

 “요즘 아버지가 많이 바쁘셔서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주환의 징계 건으로 그와 통화를 시도했을 때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환이 교실로 돌아간 뒤에 수현은 예전 자료에서 그의 아버지가 작성한 서류 몇 개를 골라서 따로 빼놓았다. 주환에게서 받은 확인서 양식에 담긴 내용과 사인의 필체가 몹시 수상쩍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확인서와 예전 서류들을 책상 위에 나란히 늘어놓고, 나를 불러 확인을 요청했다. 한눈에도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이 정도면 뭐, 빼박인데요.“

 “그렇지?”

 수현이 혀를 차며 허탈하게 웃었다.


 수현은 주환을 불러 사실을 추궁했다. 주환은 얼굴이 벌개진 채로 언성을 높였다.

 “아, 짜증나. 대체 왜 제 말을 안 믿어주시는 거예요. 제가 쓴 게 아니라구요!”

 교무실 안에 있던 선생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환을 향해 쏠렸다. 수현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선생님도 네 말을 믿어주고 싶지.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확인서의 필체가 이전 것과 너무 다르잖아.”

 “……그래서 무단결석이라는 거예요?”

 “그래야겠구나.“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주환이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년.”

 “뭐라고?”

 가까이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남자 선생님 두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차례 훈계가 이어졌다. 주환은 내내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로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주환이 교무실로 돌아가고 나서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가 그 정도 선에서 상황이 일단락된 줄로만 알았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바로 다음 날 오후였다. 주환의 아버지가 변호사 둘을 대동하고 학교에 나타났다. 수현은 5교시 수업 도중에 학년 상담실로 불려갔다. 그날 종례를 마치고 나서 학년부장이 수현을 대신해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전해주었다.

 상담실에 교감과 수현, 주환의 아버지와 변호사들까지 전부 다섯 사람이 모였다. 먼저 주환의 아버지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학부모 확인서를 작성한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필체는 그날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해서 자기 아들이 억울하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수현의 입장에서 주환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한 것은 단지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항변은 주환의 아버지가 진실이라고 내세운 주장 아래서 묵살됐다.

 다음 차례는 변호사였다. 주환이 비록 욕설을 내뱉었다고 해도, 교무실이라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교사 여럿이 학생 한 명을 훈계한 상황은 아동학대 사례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작 상황을 위협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사람은 주환의 아버지였다. 그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담임의 미숙함에 있으므로, 당장 출결을 정정하고 아들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수현을 협박했다.

 교감은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일방적인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학생부장이 말을 끝마쳤을 때 교무실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아동 학대라고? 그럼 앞으로는 학생이 교사한테 욕을 지껄여도 점잖게 있어야 돼?“

 “학부모가 ‘내가 썼다’고 우기면 바로 진실이 되는 건가?“

 “자기는 아들 담임선생님을 상대로 막말이나 하면서 누가 누구한테 미숙하다고 하는 거야?“

 수현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때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 중에 한 명이 의견을 냈다.

 “이런 문제는 교권보호 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수현 역시 동의했다. 학년 부장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교장실로 내려갔다. 그러나 교장의 입장은 우리와 달랐다. 자신은 이 문제가 어디까지나 분쟁 없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며, 만일 수현이 교권보호 위원회를 연다면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은 오직 수현 본인에게 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교장과 주환의 아버지가 바랐던 대로 출결 처리가 이뤄졌다. 나중에 학년부장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그날 주환의 아버지는 교장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제 아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아이가 나중에 설령 교도소에 갈 만한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주환은 교내 일진 무리들 사이에서 영웅이 돼 있었다. 수현은 그해를 보내고 이듬해에 학교를 옮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