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
두 번째 사건의 시발점은 그해 9월 체육대회였다. 단체줄넘기를 하던 중에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서 대표 선수로 나섰던 해민이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렸다.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하필이면 체육 수행평가를 앞둔 시기였다. 체육 선생님이 중간고사 전까지 날짜를 최대한 미뤄주긴 했지만, 해민은 결국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치렀다. 배드민턴 종목으로 결과는 B등급이었다.
해민은 반에서 줄곧 1등을 해온 학생으로 교대 진학을 목표에 두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전 교과에서 거의 최상위 등급을 받아야만 교대 진학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수행평가 결과가 공개된 바로 다음 날, 2교시 쉬는 시간에 맞춰 해민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해민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학교 행사에서 반을 위해서 뛰다가 다친 건데요.”
물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해민과 그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어머님, 저도 해민이의 사정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수행평가 규정상 ‘질병’ 기준으로 처리를 한다고 해도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학교 차원에서 학생을 배려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 일로 아이의 교대 진학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구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요. 정말로 유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말씀이신 거죠? 일단 알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억눌린 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대로 전화가 끊어졌다.
3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학년부장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샘, 지금 교장실에 해민이 어머니가 와 있어요.”
“네?”
나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그녀와 통화를 마친지 이제 막 한 시간이 지난 참이었다. 요구받은 대로 해민의 최근 성적표와 체육 교과의 수행평가 기준안을 챙겨 들고서 학년 부장과 함께 서둘러 교장실로 내려갔다.
우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해민의 어머니는 교장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교장은 나에게서 해민의 성적을 확인하고는, 해민의 어머니를 달래며 아이가 체육 성적 때문에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노라고 공언했다.
교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민의 어머니는 교장실 밖에서 나에게 자신이 해민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저는 Y대에서 무용을 전공했지만, 해민이를 낳으면서 제 꿈을 접어야 했어요. 그때부터 오직 해민이만을 위해 살았다구요!”
그 순간에 나는 그녀가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느꼈다.
맹목은 상처를 먹고 자란다. 교대를 향한 그녀의 맹목적인 집착이 향한 곳에 과연 진짜 해민을 위한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폭발적으로 분출한 감정을 맞닥뜨리고 나서 나는 한차례 몸을 떨었다.
그 뒤에 체육 선생님이 상황을 정리했다. 팀 평가에서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VIP로 선정됐던 주희를 설득하여, VIP에게 주어지는 가산점을 해민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었다.
“괜찮아? 원하지 않으면 거절해도 돼.”
나는 교무실로 주희를 불러 물었다. 내심 주희가 싫다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VIP 가산점이 제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요.”
주희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주희를 향해 웃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해민의 어머니와, 교장의 뜻을 거스르며 갈등을 끝까지 밀고나갈 용기는 내게 없었다. 나는 겨우 학생의 선의에 기대어 분란을 피했을 따름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후로 나는 종종 주환의 아버지와 해민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둘이 얼마나 다른지에 관해 곱씹어 생각했다. 주환의 아버지는 아들의 처벌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거짓 주장으로 담임 선생님을 위협했고, 해민의 어머니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서 모두에게 적용되는 평가 기준을 무시했다. 비록 보여지는 양상은 다르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두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게 과연 자식을 진정으로 위하는 행동인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한편 학교는 부모의 엇나간 욕망 앞에서 지켜야 할 경계를 고수하지 못했다.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더 큰 문제를 키우는 꼴이었다.
그 무렵부터는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주말에 이따금씩 친구를 만나는 일도, 책방을 구경하는 일도, 남편과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점점 뜸해졌다.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에 슬픔이 배어들었다. 학교가 내세우는 규준과 부모의 기대 아래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차츰 선명해졌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의 절규를 내 고통과 얼마쯤 동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