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엉킬 때는 미용실로 - 뜻밖의 위로

예쁜 마음으로 버티는 중입니다

by 탄산수

나를 당황케한 미용실 디자이너님

"어서오세요" 미용실에 들어선 나는 당황스러웠다. 무표정을 넘어 초지일관 카리스마 눈빛을 유지하던 원장님이 살갑게 웃고 계셨기 때문이다. 머리 스타일도 검은 생머리에서 보글보글한 펌으로 바뀐 탓에 더더욱 그녀의 변화가 극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지레짐작하기에 그녀가 이렇게 변화한 것은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님이 무릎을 다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 가게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동료분께 미뤄오던 서비스 정신을 장착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았을까. 더욱이 동료분은 상냥한 미소와 적당한 수다를 장착한 덕분에 예약이 늘 가득차 있었던 데 반해, 그분은 보조처럼 늘 작업을 도와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늘진 얼굴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신 덕에 자신감도 생기고 인상도 많이 밝아지셨다는 것을 느꼈다.


이 헤어샵을 다닌지 4년만에 그분이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말투를 쓰는 대구분이라는 것과 고2 딸의 엄마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나와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지만 내가 3살 딸의 엄마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셨다. 신경 안 쓰는 듯 하면서 다 기억하고 계신 선생님께 작게 감동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이를 낳다가 태반이 유착되어 죽을 뻔한 이야기부터, 아이를 낳고 미용일을 시작해 악착같이 버틴 이야기, 웹툰 작가를 꿈꾸는 딸의 이야기까지 그간 숨기고 있던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결혼과 육아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녀 모두 경제력을 갖추지 않으면 아이를 낳고 살기 힘든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등골이 휘어요' 18년 동안 미용일을 하면서 딸을 키운 엄마도 돈 걱정은 피할 수 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실감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며 허덕허덕 사는 것이 부모의 삶일까'


의외의 위로

일이 잘린 이후로 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자책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보장된 수익은 아니다보니 불안하고 더없이 초조하다. 남편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고 용기를 주지만 자극 추구가 강하고 즉각적인 성과에 익숙한 나는 먼 미래를 보고 하루 하루 살아내기가 벅찬 것이 사실이다.

욕심이라도 버리면 좋으련만 나란 엄마는 아이에게 예쁜 옷도 사주고 싶고, 좋은 식재료로 요리해주고 싶고, 발레 수업도 계속 듣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퇴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라는 곳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으면서도, 안정감을 찾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어디서도 이런 이야기는 꺼내기 어려웠는데 엄마라는 길을 먼저 걸어온 미용사 선생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니 곱슬머리와 함께 나의 구불거리는 마음도 어느정도 펴졌다. 나는 나답게 살면서도, 엄마의 책임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선생님이 밝아지신 것처럼 나도 매일 묵묵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밝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예쁜 마음으로 버티는 중입니다

'고객님 가고 나면 어떻게 저렇게 예쁜 사람이 있을까 하고 우리끼리 얘기해요' 디자이너님이 내 머리에 에센스를 발라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두 분이 늘 우리 이모 같아서 머리가 끝나면 간단한 간식을 사다드리고는 했는데 그걸 염두하고 하신 말씀인 것 같았다. 나는 늘 쑥쓰러워서 '제 꺼 사면서 샀어요' 후다닥 드리고 돌아왔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시니 기분이 참 좋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내 모습에만 시야가 좁혀져 지내왔는데, 예쁜 마음을 나누고 사는 나를 다시 발견한 기분이었다. 디자이너님이 발견해주신 나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면서 현실에 치여 너무 마음 조급하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하루였다. 구불구불한 마음이 쫙 펴졌다.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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