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으로 마음을 채우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작은 성지
옷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디자인의 옷을 구경하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는 과정을 좋아한다. 꼭 사지 않아도 구경하고 나면 옷으로부터 뭔가 신선한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나는 쇼핑몰이나 단골 옷가게로 향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시간도, 경제적인 여유도 넉넉지 않아 옷으로 스트레스를 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와 산책 삼아 들른 시장에서 우연히 빈티지숍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간판을 봤을 땐 '이곳에 누가 가긴 할까?' 하는 의심이 스쳤지만, 이미 눈이 휘둥그레진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아기띠를 멘 채로 슬금슬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거대한 패턴의 자켓, 휘황찬란한 블라우스, 메이커 가방과 신발, 두툼한 외투까지 6평 남짓한 공간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선 나를 아주머니들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러곤 딸아이를 보고는 '너무 귀엽다'며 다가와 발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저때가 좋았지' 하며 이내 각자의 넋두리를 시작하셨다.
잠깐 머무는 사이 이곳이 예사로운 가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수많은 어르신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나름의 ‘쇼핑 루틴’도 존재했다.
“언니, 미우미우 신발 들어왔어. 한 번 신어봐. 문 앞에 있어.”
“여기만 오면 이렇게 많이 사게 돼.”
“그래, 오늘은 그만 사~”
그 대화들을 들으며 이분들이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오래된 관계임을 느꼈다. 이 가게는 시장을 꽉 잡고,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곳이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라디오 삼아 눈으로는 재빨리 옷을 스캔했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만 구경할 수 있으니 손은 더욱 분주해졌다. 어르신 스타일의 옷은 빠르게 넘겨가며 집중해서 들춰보다가, “어머나!”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반팔 블라우스를 발견한 것이다. 스퀘어넥에 어깨는 퍼프 형식, 하얀색에 앞섶엔 디테일한 주름까지. 조심스럽게 “얼마예요?” 하고 물었더니, 사장님이 “셔츠류는 다 만 원이에요”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오버가 아니라, W컨셉에서 샀다면 12만 원은 족히 줘야 할 옷이었다.
그렇게 나는 기분 좋게 옷을 샀고, 자연스럽게 그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그 블라우스는 아이 100일 촬영 때도 입었고, 시간이 지나 팔뚝살이 빠진 뒤에도 여름마다 꺼내 입으며 뽕을 뽑았다.
문득 옷 구경하고 싶은 날이면 나는 여전히 그곳으로 향한다. (사실 오늘도 가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결국 못 갔다.) 지금까지 산 옷들을 떠올려보면 셔츠, 블라우스, 니트, 바지, 스커트에 폭신한 털실 가방까지 꽤 된다. 횟수로는 10번이 넘는다. 아직 단골 아주머니들처럼 신상 정보를 나눌 정도는 아니지만, 사장님께 “이거 저한테 어울릴까요?” 하고 물을 수 있을 만큼은 익숙해졌다. 어쩐지, 매번 보물이 하나쯤 있을 것 같아 자꾸 발길이 간다.
나는 왜 이곳이 아주머니들의 성지가 되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수다도 떨고 기분 전환도 할 수 있는, ‘만원짜리 힐링 장소’이기 때문이다. 새 옷 한 벌을 덜컥 사기 어려운 엄마들이 이곳에선 마음 편히, 기분 좋게 옷 한 벌을 사간다. 그런 마음을 조용히 채워주는 이 공간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