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얼마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낯이 익은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이웃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할머니가 "○○이 더 예뻐졌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는 쏜살같이 "저 안 예쁜데요?"라고 대답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할머니는 "눈이 더 커진 것 같아"라고 덧붙이셨고, 아이는 "저 어릴 때 쌍꺼풀 수술했는데요?"라고 말하며 의식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냥 씩 웃어줬다.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마치 '아니야, 너 정말 예뻐'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 눈이 부시도록 예쁜 아이가 왜 자신을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아이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그랬다. 학창 시절, 오똑하지 않은 코, 쌍꺼풀 없는 눈, 곱슬머리, 누렇고 여드름 난 피부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장나라 언니처럼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를 갖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점점 자신을 자책했고,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엄마와 성형수술을 약속했다. 대학에 가기 전에는 꼭 수술을 하기로. 그리고 그 약속은 변함없이 지켜졌다. 수능이 끝난 뒤, 나는 고대하던 수술을 했다. 겉모습은 조금 나아졌지만, 내가 바랐던 만큼 예뻐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내가 예쁘지 않다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외모에는 늘 관대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예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예쁘다고 참 잘도 찾아냈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잘 들여다보면 안 예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물셋, 팀플에서 만난 국문과 언니가 지금도 떠오른다. 그 언니는 통통했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지 않았지만, 항상 웃는 얼굴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따뜻하고 품격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타인의 예쁜 점은 그렇게 잘 보이면서, 유독 내게는 항상 부족함만 보였다. 결국 그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대 내내 치열하게 결핍된 나와 싸우고, 또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서른셋이 된 지금, 나는 어느새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되었다. 10년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깨달은 것도 컸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될 수 없는, 귀한 사랑을 먹고 자란 존재들이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다시 배웠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내 속도대로 나를 챙기며 살아가는 내가 좋다. 결국 외모는 내 내면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만족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놀이터에서 만난 그 초등학생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부디 나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진하게 싸우고, 깊이 화해하고,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