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수줍은 아이야”라는 말 대신
주말에 아이와 함께 결혼식에 다녀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 식장에서 아이는 내 뒤에 꼭 붙어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치마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 하마터면 내 아랫도리가 벗겨질 뻔했다.
그 순간에는 그냥 웃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정말 이해해줬을까?’ 부끄러워도 어른들께 인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의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새로 간 유치원 문 앞에서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초인종을 누르자 엄마는 안에서 “얼른 가!”라고 소리쳤고, 나는 울면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수줍음 많았던 나를 엄마는 엄하게 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그저 물러터진 딸이 세상 속에서 상처받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마음보다 차가운 말의 온도를 더 크게 느꼈다. 공감 한마디가 있었다면 오히려 더 용기가 났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수줍음 많던 내가, 학창 시절에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좋아했다. 매 학기 반장선거에 나가고, 웅변대회에도 출전했다. 교내 방송반 아나운서로 하루도 빠짐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 위의 나는 떨리면서도 짜릿했다. 그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경험이 나를 키웠다. 그 덕분에 내 안에는 ‘수줍은 나’와 ‘나서는 나’가 함께 살아가게 됐다. 친구들 기억 속의 나는 늘 먼저 나서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지금도 낯선 환경에서는 여전히 몸이 굳는다. 소개팅 자리에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상대에게 “편하게 드세요, 안 잡아먹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 이건 정말 타고난 기질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유연해진 건 사실이다.
결혼식장에서 돌아온 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줍은 기질을 아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사회적 기술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없을까?’
찾아보니, 답은 아주 단순했다.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서 바랐던 바로 그 마음이었다.
1. 공감하기 – “그럴 수도 있어.” 하며 아이의 성향을 인정해주기.
2. 구분하기 – 단순한 낯가림과 불안으로 인한 회피를 구분해 지도하기.
3. 연습시키기 – 역할극으로 상황을 미리 경험하게 하기.
4. 자기 확신 키우기 –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긴장을 다스리는 연습.
5. 존중하기 – “우리 아이는 원래 낯을 가려요.”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기.
특히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이를 ‘낯가리는 사람’으로 낙인찍으면, 아이 스스로도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만약 결혼식장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불편하지? 엄마도 그래. 하지만 조금 지나면, 점점 괜찮아질 거야.”
MBTI가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을 지나치게 한 가지 틀에 가두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조용하기도 하고, 왁자지껄 떠들기도 한다.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인 계산도 잘한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유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살아 있는 존재다.
러닝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존경하는 사업가이자 철학가인 료 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오늘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게으른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대신, ‘내 선택이 나를 게으르게 만든 건 아닐까?’ 하고 돌아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기질은 바꾸기 어렵지만, 선택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수줍은 기질을 가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변했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수줍은 사람이야”가 아니라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