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거울 앞에 서 있다. 막 외출 준비를 마친 참이다. 화장용 확대경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춰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제 화장을 해도 예쁘지가 않네. 벌써 눈가 잔주름에 파운데이션이 끼고, 아무리 정성껏 퍼프를 두드려도 늘어난 모공을 감출 수가 없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나이 앞자리에 숫자 4가 들이닥친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물끄러미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오른쪽 눈꺼풀이 경련하기 시작한다. 또 이러네. 그녀는 황급히 손을 올려 눈두덩이를 마사지했다. 경련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이러다 눈꺼풀이 폭삭 무너져내릴 것 같다. 마그네슘 부족 때문인가. 요 며칠, 종합비타민을 챙겨먹지 않은 것이 떠오른다. 젊을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며 왜들 저렇게 약을 달고 사나 했는데. 수명 장수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사는 동안 제대로 작동하려는 노력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간신히 경련이 멈췄지만 살거죽이 허물어지는 듯한 이물감은 여전하다. 한껏 눈을 크게 떠봐도 무거운 눈꺼풀 탓인지 눈매가 또렷하지 않다. 늙는다는 건 이렇게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일일까. 이렇게 살다가 얼굴과 온몸이 다 녹아내리면… 그게 마지막인 걸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거울을 돌려버렸다. 손 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 무서워서인지, 서글퍼서인지, 마그네슘 부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윤희는 예뻤다. 어느 정도로 예뻤냐면, 결혼식에 온 대학 동기들이 화장실에 모여 '얼굴 반반한 거 하나로 의사한테 취집한다'고 뒷담화를 할 만큼 예뻤다. 남의 경사에서 그 짓거리를 하는 대학 동기들과 신부 대기실로 쪼르르 달려와 '세상에, 니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너 취집한다고 씹고 있더라. 시댁 식구들이 듣기라도 했으면 어떡해? 내가 다 무섭다, 진짜'라며 신명나게 말을 옮기던 회사 동기 중 어느 쪽이 더 악당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녀는 그저 쓴웃음이나 짓고 말았다. 하객 머릿수나 채우고 사진 배경으로나 세우면 그만인 인간들을 상대로 일일이 열을 낼 필요가 없으니까. 돌아보면 그것마저도 달콤쌉쌀한 추억이다. 이어진 신부 입장에서 그녀가 버진로드에 등장한 순간, 조명보다 강렬하게 쏟아지던 선망과 동경의 눈길을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답게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며 윤희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답했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너라도 날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정작 나를 보니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실감에 망연해서 할 말을 잃었을 거야.
세상 꼭대기에 올라선 그 기분. 다른 세상의 그들을 굽어보며 미움조차 일어나지 않던 가진 자의 여유가 마치 전생의 일이었던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도 다 헛말이고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이렇게 하향평준화의 내리막길을 달려, 그들과 만나게 되는 거다. 결국은 같은 세상에서. 윤희는 한숨을 토하며 여전히 떨리는 손가락들을 주물렀다. 차고 축축하다. 그들과 함께할 지하 세계의 예고편처럼.
“엄마, 30분에 나가자며!”
딸 서하였다. 다운타운에 브런치 먹으러 갈 거니까 예쁘게 꾸미라고 했는데, 오늘도 후줄근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그런데 예쁘다. 그래도 예쁘다. 윤희는 잠시 남을 보는 것처럼 서하를 관찰했다. 아직 젖살이 남아 토실한 두 볼에서 꾹 누르면 손가락을 튕겨낼 듯한 탄력이 느껴진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몸의 성장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안을 때마다 낯선 볼륨감에 깜짝깜짝 놀라고, 서하가 트월킹 연습을 한다면서 거울 앞에서 엉덩이를 털어대면 멍하니 입을 벌리고 보게 된다. 기러기 생활을 하느라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남편이 딸을 볼 때마다 어색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빠, 아빠 하면서 다리에 매달리는 어린애였을 때 캐나다로 보냈는데 갑자기 너무 여자라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거다.
윤희는 서하가 부러웠다. 큰 굴곡 없이 살면서 남을 부러워한 적이 별로 없는데, 이제 와서 딸이 몹시도 부럽다. 딸은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싱그러운 젊음과 무한한 가능성뿐 아니라 부모의 전폭적인 애정과 지원, 뭐든지 독점할 수 있는 외동이라는 지위, 영어와 불어, 한국어가 모두 능통해지는 다중언어 환경까지. 서하는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원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빌기도 전에 이루어지는 마법처럼. 뭐라도 더 해 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쪽은 언제나 부모와 조부모들이었다.
브런치를 먹으며 윤희는 서하에게 물었다.
“에일라는 승마 배운다던데, 너도 해 볼래?”
“아니.”
“왜, 전에 목장에서 말 탔을 때 재밌다고 했잖아.”
"나쁘진 않았는데, 배우고 싶은 정도는 아냐."
“이번 겨울 방학에 파리 가는 건 어때? 아빠한테 너 프렌치 얼마나 잘하는지도 보여주고.”
“싫어,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
케일 샐러드를 씹던 윤희는 입 안에 남은 질긴 섬유질 덩어리와 함께 한숨을 꿀꺽 삼켰다. 늘 이런 식이다. 감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저한테 주어진 환경을 충분히 즐기고 실컷 누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왜 이렇게 열의가 없을까. 내가 너였다면… 네가 가진 것들이 나한테 주어졌다면 난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 참 불공평하네. 미운 마음이 불길처럼 확 타오른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실은 친엄마였다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엄마, 화났어?”
“아니.”
윤희는 반사적으로 대답한 뒤에야 깨달았다. 자신이 입 안의 여린 살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는 것을.
***
집에 돌아온 윤희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몸을 눕히고 쉬다가 깜빡 잠들었다. 꿈에 거울이 나왔다. 큼직한 타원형에 고풍스러운 금빛 테두리를 둘러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다. 앤티크풍 거울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춰보려 했지만, 온통 뿌옇게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왜 이러지. 윤희는 답답해서 옷소매로 거울을 문질러 닦았다. 거울이 차츰 맑아지더니 드디어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거울 속에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서하였다.
“딸이 되고 싶으세요?”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린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침착하고 사무적인 목소리. 윤희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다.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드릴게요. 딸이 되고 싶으신가요?”
목소리는 거울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뜨끔하다. 아무도 못 보게 꽁꽁 감춰둔 속내를 찔린 것 같아서. 그리고 불쾌하다. 네가 뭔데 이걸 건드려. 윤희는 아까 서하 앞에서 억눌렀던 분노를 터트렸다.
“무슨 소리야? 나한테 내 딸이 되라고? 미쳤어? 난 그 애한테서 아무것도 뺏지 않을 거야!”
“뺏으라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둘이 되는 거죠. 현재의 당신은 당신인 채로 남고, 또 하나의 당신이 딸이 됩니다.”
거울은 진상 고객을 다루는 베테랑 상담원처럼 예의 바르지만 무감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윤희는 대뜸 소리부터 지른 게 부끄럽기도 하고, 거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이해가 안 가서 잠자코 있었다. 그때 거울 속이 흐려지면서 서하가 사라지더니 윤희가 나타났다.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그녀는 홀린 듯이 거울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열한두 살쯤 되었을까. 눈빛은 총기가 가득하고 내면에서부터 생명력이 뿜어져나온다. 마치 서하처럼. 뭐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찬란한 가능성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윤희는 그 아이가 되고 싶었다. 지나간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의 풍족한 현실에서 그 잠재력을 한껏 키워내고 싶었다.
때맞춰 거울이 나직하게 속삭인다.
“잃는 게 아니라 얻는 겁니다. 본질은 하나를 둘로 나누는 거지만요.”
“이해가 안 돼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죠?”
“클론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세요. 구성 성분은 당신과 동일하지만 좀 더 어리죠. 그리고 당신이 양육자가 되어 원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클론에게는 당신의 의식이 이식돼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후로는 두 사람의 의식이 연동되면서 한쪽이 느끼는 즐거움이 다른 쪽에게도 전달되고요.”
“서하한테는… 아무 일도 없나요? 달라지는 게 없는 거죠?”
“당신에게 당신이라는 딸이 생기니까, 원래 있던 딸에게는 자매가 생기겠지요. 그 환경적인 변화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대로입니다.”
“그럼 전 딸이 되고 싶어요.”
“네, 진행하겠습니다.”
윤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주의사항 같은 건 없나요?”
거울은 한 호흡 정도 침묵하다가 답했다.
“잊지 마세요. 보이는 건 둘이지만 실체는 여전히 하나랍니다. 다시 하나가 되고 싶다면…”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서서히 현실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거대한 엄지와 검지에 잡혀 꿈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쿵쿵,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거세게 뛰는 사이로 통화 연결음이 울린다. 핸드폰을 집어 화면을 확인하니 남편이었다.
“응, 여보.”
- 어디야, 밖이야? 주말이라 전화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어서.
“아, 미안해요. 점심 먹고 와서 전화한다는 게 깜빡 잠들었네.”
- 서하는 별일 없고?
“승마도 싫다, 파리도 싫다, 시큰둥한 거 빼고는 뭐 별일 없지.”
- 사춘기가 왔나, 왜 그런대. 유하는 잘 지내고?
유하가 누구지… 다음 순간, 윤희는 아일랜드 식탁 너머의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꿈에서 본 얼굴.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 등교 직전의 현관 거울에서, 학교 가는 버스 유리창에서, 교실 뒷문 옆 거울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얼굴이다. 한 사람의 두 얼굴은 30여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하나를 둘로 나눈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이라도 결국은 타인이다. 부모로부터 유전자와 가치관을 물려받았지만,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존재. 하지만 이 아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고, 우리는 하나다.
유하는 윤희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알아. 사랑해, 유니짱.”
그 순간 콧날이 시큰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니짱은 12살의 윤희가 일기장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사람보다 인내심이 강하다는 종이 친구가 갖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연보라색 하드커버에 앙증맞은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는 동생 저금통에 손을 댔다가 엄마에게 매 맞은 일, 학교 앞 분식집에 가려고 담을 넘었는데 밑에서 선생님이 딱 기다리고 있었던 일, 친구랑 싸우고 한 달 넘게 서로 말을 안 하면서 속앓이를 하다 펑펑 울며 화해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담겼다. 일기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랑해, 유니짱’이었다.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게 된 이후에도, 윤희는 가끔씩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곤 했다. 사랑해, 유니짱. 유니짱은 어느새 일기장이 아니라 스스로의 애칭이 됐다. 윤희는 떨리는 입술을 열어 오랜만에 그 이름을 불렀다.
“유니짱, 다시 만나서 반가워.”
유하가 거실을 가로질러 윤희에게 다가온다. 윤희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옹골차게 꽃잎이 들어찬 꽃봉오리 같은 자신을 꼭 안았다. 메마르고 삐걱대는 육신이 더는 거슬리지 않는다. 곧 화려하게 피어날 젊음을 품 안에서 실감할 수 있었기에.
***
다시 학창 시절이 시작됐다. 윤희는 선생님한테 예쁨 받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던 모범생이었고, 유하도 당연히 그랬다. 하지만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학교 생활을 했던 윤희에 비하면 유하는 낙원으로 등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7학년에는 반이 3개 있고, 한 반의 정원은 25명이다. 산타클로스처럼 길게 수염을 기른 유하의 담임 선생님은 재미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매일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어 줄 이벤트를 궁리했다. 오늘은 안 쓰는 물건들을 가져와 벼룩시장을 열고, 내일은 장기자랑을 하고, 모레는 그 장기자랑에서 받은 상품으로 선생님과 편의점에 가서 뭐든지 원하는 간식을 하나 골라잡는 식이다. 날마다 이름을 불리고, 칭찬을 듣고,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았다.
유하는 학교 밴드에 가입해 드럼을 쳤다. 멜로디 없이 리듬만으로 심장을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좋다고 했다. 대학 시절, 풍물 동아리에서 북을 두드렸던 윤희와 마찬가지로. 밴드 콘서트를 보러 간 윤희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꾹 찍어 누르면서 눈물을 참아야 했다. 맨 뒤에 앉은 유하는 앞에서 지휘하는 선생님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박자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보조 지휘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까딱까딱 페달을 밟으면서 5기통 드럼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스스로가 너무 멋지고 자랑스럽다. 내가 될 수 있었던 나. 심취한 표정으로 연주에 열중하던 유하는 윤희와 눈을 마주치고 살짝 웃더니 스틱을 빙그르르 돌리는 쇼맨십을 보였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유하는 학교 배구부에도 가입했다. 매일 새벽, 그리고 일주일에 2번씩은 수업을 마친 뒤에도 체육관에 모여 고된 연습을 하느라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드디어 열린 옆 학교와의 시합 날, 유하는 중요한 승부처에서 상대편의 코트에 맹렬한 스파이크를 꽂았다. 관중석에 있던 윤희는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잘한다, 우리 딸!”
머릿속에서 도파민 폭탄이 팡팡 터진다. 옆에 앉은 서하가 그만 앉으라고 윤희의 옷깃을 잡아당기다가, 결국 포기하고 긴 머리채로 제 얼굴을 가렸다.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마친 유하는 곧장 윤희를 향해 손키스를 날렸다. 근처에 앉은 부모들이 일제히 윤희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윤희는 유하처럼 화사한 손키스로 보답했다. 바로 이거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대로 변하면서, 나에게만 내리쬐는 한 줄기 조명 아래 주인공이 되는 기분. 이 느낌이 그리웠다. 새벽부터 따스한 침대를 벗어나 피멍이 들도록 연습하는 고통 없이도 이걸 누릴 수 있다니. 또 하나의 자신은 이제 가능성을 벗어나 현실이 됐다.
유하는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틈틈이 동네 도서관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리딩 버디’로 활동했고, 등하교 때는 신호등이 없는 학교 앞 건널목에서 아이들을 건네주는 교통 봉사를 했다. 리딩 버디는 서하가 처음 캐나다에 와서 영어를 익히고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서하가 가서 자기가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랐지만 권할 때마다 질색을 해서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걸 유하가 대신해주고 있으니 마음의 빚을 갚은 듯이 후련하다. 교통 봉사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유하는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널목을 지키다가 힘차게 호루라기를 불며 깃발을 올려 차들을 멈추게 했다.
"유하야, 힘들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장갑을 끼었어도 싸늘하게 식은 손을 잡으며 윤희가 물었다. 유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경험이 재산이잖아.”
그건 윤희의 좌우명이었다. 뭐라도 하면 남는 게 있다. 어떤 경험도 헛되지 않다. 도전의 결과, 우리는 이기거나 배우니까. 윤희는 마주 웃었다. 매사에 내 마음 같은 유하를 키우면서 더는 서하를 닦달하는 일도 없어졌다. 결국 각자 사는 인생이다. 폭포수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처럼 유하로부터 쏟아지는 도파민에 흠뻑 적셔지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윤희는 조금 반성했다. 내 인생을 열심히 살면 자식한테 기대할 필요가 없구나. 못 이룬 꿈을 위탁하고 자시고 할 필요 없이 원하면 스스로 하는 게 최선이었어.
서하는 대체로 홀가분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지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는 유하만 좋아해!”
“무슨 소리야, 좋아하면 널 더 좋아하지. 우리가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만데.”
윤희는 서하를 달래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세월 앞에 장사가 없지. 너랑은 10년 좀 넘은 사이지만, 나 자신과는 40년도 넘었잖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도 함께였네. 그때 계단을 내려오던 유하가 윤희와 눈을 마주치더니 재빨리 뒤돌아 다시 올라갔다. 둘이서 시간을 좀 보내면서 서하를 다독여주라는 뜻이다. 유하의 신호를 접수한 윤희가 힘주어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엄마는 사실 너를 제일 사랑해.”
서하는 싫지 않은 눈치였지만 입을 삐죽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뭐야, 유하랑 짰어? 둘이 똑같은 소리를 하네.”
“유하가 뭐라고 했는데?”
“엄마는 언니를 더 좋아한대. 첫정이 무섭다고.”
“그래? 맞는 말 했네.”
“엄마, 유하한테 가서는 또 널 제일 사랑한다고 할 거지?”
“아니, 안 그럴 거야. 약속해.”
그럴 필요가 없거든. 우린 이미 서로 어떤 마음인지 아니까.
하루는 유하가 못 보던 후드티를 싸들고 돌아왔다.
“이게 뭐야?”
윤희가 묻자 유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학교 끝나고 스쿨버스 타려는데 갑자기 메이슨이 와서 주고 갔어. 버스 놓칠까 봐 일단 들고 온 거야.”
윤희는 후드티를 펼쳐 이리저리 돌려봤다.
“입던 거 같은데? 갑자기 왜 지가 입던 옷을 벗어줘?”
물 마시러 온 서하가 끼어들었다.
“그거 고백이잖아. 사귀자는 뜻이야. 내일 그 옷 입고 학교에 가면 오케이하는 거고.”
윤희와 유하는 동시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하가 한발 앞질러 윤희의 생각을 입 밖에 냈다.
“귀엽다, 귀여워.”
서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가 귀여워? 메이슨이?”
“꼭 메이슨이 귀엽다는 건 아니고, 그냥 애들 하는 짓이.”
“그럼 내일 입고 갈 거야?”
“뭘 입고 가. 돌려줘야지.”
“왜?”
그 질문엔 윤희가 대신 답했다.
“유하 바빠. 연애 말고도 재밌는 게 너무 많아서.”
서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해, 진짜. 그걸 왜 엄마가 정해? 둘이 한몸이야, 뭐야.”
다음 날은 학교를 일찍 마치는 금요일이었다. 윤희는 학교로 유하를 태우러 갔다가, 먼발치에서 유하가 남자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 유하는 후드티를 담은 쇼핑백을 내밀며 뭐라고 말했다.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근데 미안해.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 이어지는 가벼운 포옹. 메이슨은 영혼이 20% 정도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유하가 차에 탈 때까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간만에 보는 익숙한 표정이네. 윤희는 자신에게 영혼이 털렸던 남자들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할 때면 뒤따르곤 했던 씁쓸함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영광은 현재진행형이니까.
윤희는 그렇게 유하의 모든 영광을 함께 누렸다. 유하의 삶이 짜릿한 만큼 윤희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녀는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에 익숙해졌다. 더는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고, 노력하는 방법마저 잊었다. 45세까지 20대 시절의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윤희였지만, 유하를 만나고 15년간 20kg이 불었다. 매일같이 온몸이 무겁고 찌뿌둥하고 손목, 허리, 무릎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데가 없이 시리고 저렸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윤희는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2기, 생존율은 92%. 하지만 이 형편없는 육신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싸우고 싶지가 않다. 굳이 왜, 뭘 위해서. 어쩌면 이건 나에게 주어진 신호인지도 모른다. 차마 내던질 엄두가 안 나서 억지로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신호. 어딘가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반발한다.
- 그래도 끝까지 뛰어야지.
그녀는 냉큼 받아쳤다. 이게 끝까지 뛴 거야. 그때부터는 이어달리기였잖아. 나는 벌써 다음 주자한테 배턴을 넘겼어. 남은 과제가 있다면 서하가 애 낳고 키울 때 도와주는 정도인데, 그것도 젊은 유하가 나보다 잘하겠지. 거울의 마지막 당부가 떠오른다. 보이는 건 둘이지만 실체는 하나. 하나가 사라지면 남은 하나로 존재가 통합될 거라고 말했다. 그래, 이제 통합해야 할 때가 왔어. 이 몸뚱이로 사는 인생에는 아무 미련도 없는데 너무 오래 끌었네. 윤희는 결심했다.
***
여기가 어디지? 윤희는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작은 방이다. 서향으로 난 창문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쏟아진다. 자석에 이끌리듯이 창문 앞으로 가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 온기가 느껴진다. 따듯하고 좋네. 근데 여기는 어디지? 가벼운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가 들어온다.
“유하님, 면회 시간이에요.”
“내 이름은 윤희인데요.”
“네, 윤희님.”
여자가 빙긋이 웃는다. 생각났다.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곳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긴 한데 좀 모자라서 몇 번씩 이름을 말해줘도 금방 잊어버린다. 여자를 따라 복도로 나선다. 복도에는 유니폼을 입지 않은 노인들이 서성거린다. 윤희는 등을 쭉 펴고 성큼성큼 걷는다. 나이 든 사람들은 부러운 듯이 젊은 사람들은 딱한 듯이 쳐다본다. 왜들 저렇게 나를 볼까.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여자는 복도를 따라 쭉 내려가더니 오른쪽 방문을 열고 말했다.
“유하님 오셨어요.”
윤희라니까, 참. 아까 있던 방의 1.5배쯤 되는 공간이다. 그리 크지는 않은데, 양쪽으로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통유리창이 있어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아기띠를 멘 젊은 남자가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주 끄덕였다. 꽃무늬 천소파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다. 윤희는 반갑게 불렀다.
“서하야! 우리 딸, 우리 이쁜 딸 왔어?”
“응, 엄마. 잘 지냈어요?”
서하는 웃었지만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얘가 왜 이렇게 불편해 보이지? 이 남자 때문인가. 윤희는 서하에게 바짝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으며 은밀하게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니?”
“엄마 사위잖아, 앤드류.”
"어머, 이게 무슨 소리야? 너 결혼했어?”
“응, 3년 됐어.”
“넌 어떻게 엄마도 모르게 결혼을 하니?!”
윤희는 기가 막혀서 서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여운 마음이 더럭 올라온다. 서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윤희의 손을 잡았다.
“엄마도 거기 있었어. 아니, 엄마는 올 수 없었지만… 유하가 와서 신부 들러리도 하고, 반지 갖고 있다가 우리한테 주고 그랬는데 기억 안 나? 사진 보여줄까?”
“아니, 유하가 누군데 자꾸 사람들이 찾는 거야? 아까도 저 사람이 나한테 유하라고 불렀어. 윤희라고 알려줘도 또 유하라고 하는 거야. 유하가 대체 누구니?”
“엄마 둘째 딸. 엄마, 유하라면 죽고 못 살았잖아. 둘이 한몸인 것처럼 죽이 잘 맞아서 엄마가 할 말을 유하가 하고, 유하가 할 말을 엄마가 하고 그랬잖아. 생각 안 나?”
“무슨 소리야. 나한테 둘째가 어딨어. 너야말로 생각 안 나니? 동생 낳아줄까 물어보면 외동이 좋다고 펄펄 뛰면서 질색팔색을 해놓고선.”
그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띠를 메고 왔다 갔다 하던 남자가 얼른 서하 옆에 앉아 아기를 안겨준다. 서하가 능숙하게 앞섶을 풀고 젖을 먹였다. 윤희는 넋을 놓고 아기를 본다. 아기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향긋한 아기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져나간다. 아기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도록 열심히 젖을 빨았다. 촉촉해진 이마 위로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달라붙는다. 윤희는 엄지로 잔머리를 살살 넘겨주며 말했다.
“이뻐라… 조그만 것이 참 열심히도 산다, 저도 사람이라고. 그래야지,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눈빛이 놀랍도록 맑고 차분해 서하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한 번만 더… 불러볼까. 하지만 다음 순간, 유하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얘는 누구니?”
서하는 실망을 감추고 대답했다.
“은호예요. 엄마 손녀. 엄마 이름이랑 초성이 같아.”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덧붙였다. 유하랑도.
“우리 딸, 갓난쟁이 키우느라 힘들어서 어떡하니. 엄마가 도와줘야 하는데.”
“아냐, 엄마. 걱정하지 마. 나랑 앤드류랑 번갈아 가면서 휴직도 내고, 잘하고 있어.”
서하는 당장이라도 같이 나갈 기세인 유하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
면회를 마치고 의사까지 만난 다음 요양원을 나섰다. 쓸쓸한 바람이 분다. 몸 밖에서도, 가슴 안에서도. 은호가 칭얼대는 통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앤드류가 그녀를 맞이했다.
“의사가 뭐래?”
“맨날 똑같은 소리지, 뭐. 속도를 좀 늦추는 게 최선이고, 낫는 병은 아니라고.”
앤드류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전에 우리 엄마가 말한 건… 혹시 생각해봤어?”
서하는 실소했다.
“뭐, 죽은 엄마가 동생한테 씐 것 같으니까 굿 하라는 얘기? 여기 입소하기 전에 뇌 사진 찍은 거 같이 봤잖아. 몸만 20대지, 뇌는 팔십 넘은 노인네라고. 노인성 치매 진단받아서 여기 들어온 거 잊었어? 당신도 치매야?”
“아니, 뭐… 엄마도 답답하고 황당하니까… 그런데 진짜, 처제는 왜 당신을 딸이라고 부르는 거야?”
“글쎄, 조기치매라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왜 본인을 엄마라고 생각하냐고. 다른 망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잖아.”
“병 걸리기 전부터도 원래 좀 그랬어. 나보다 3살 어리면서 자기가 언니인 것처럼… 아니, 엄마처럼 굴고. 엄마 돌아가신 다음부터 더 엄마 같아지긴 했지만.”
“역시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신 게 너무 충격이었던 걸까?”
“모르지. 그때 당시에는 나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는데. 엄마 유서도 찾아내고, 암 진단서도 찾아내고. 내가 정신 놓고 있어서 장례도 혼자 치르다시피 했어.”
윤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조사는 신병을 비관한 자살로 결론이 났다. 5년 생존율 90%가 넘는 유방암 2기 진단이 자살할 만큼 비관적인 일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자필 유서가 발견된 마당에 더 따지고 들 사람도 없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유하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나를 챙겼는지 몰라. 진짜 엄마처럼. 그게 너무…”
서하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질끈 감았고, 앤드류가 뒤를 이어 마무리했다.
“고맙고 다행이었지. 처제가 그렇게 살뜰하게 챙겨준 덕분에 당신이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었잖아.”
나란히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서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아냐, 여보. 실은 나, 그 애가 엄마를 삼킨 것처럼 엄마 같아진 게 너무 소름 끼쳤어. 남편이 또 굿타령을 할까 봐 말할 수 없었던 속내는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애착 인형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아플 때나 힘들 때나 늘 함께했던 애착 인형. 이제는 인형 없이도 혼자 잠들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소중했다. 실제 도움 받을 일이 없다고 해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졸지에 사라진 것만으로도 황망한데 갑자기 새 인형이 주어진다. 자, 이게 그 인형이야. 똑같은 거니까 앞으로는 여기 의지하고 위로도 받고 해. 새 거라서 더 좋을 거야. 서하는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거짓말. 그간 내가 길들였던 시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똑같다는 거야?
서하는 유서의 마지막 문구를 떠올린다. 우리 딸, 슬퍼하지 마. 엄마는 사라지는 게 아냐.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거야. 읽는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오직 나에게만 보내는 메시지라는 걸. 왜 딸들이 아니라 딸일까. 엄마는 왜 마지막 순간에 유하를 잊었을까. 그리고 엄마가 된 유하는 왜 스스로를 잊었을까. 답 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떠다닌다.
그때 은호의 옹알이가 서하를 현실로 되돌렸다. 앤드류가 한껏 들떠서 소리쳤다.
“여보 들었어? 지금 은호가 엄마라고 했어! 은호야, 다시 해 봐! 엄마, 엄마!”
서하는 한순간 모든 시름을 잊고 활짝 웃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지만, 우리는 이따금씩 서로 연결된다. 지금처럼 그 연결을 실감하는 순간마다 내 우주를 밝히는 별이 하나씩 태어난다. 우리 딸, 고마워. 너는 이미 나한테 가장 좋은 것을 줬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