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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마음 Oct 27. 2024

#9 묘사하는 글쓰기

- 몸 

글 쓰는 동지 여러분, 


오늘의 주제는 '묘사하는 글쓰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보여주는 글쓰기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SHOW, DON'T TELL은 글쓰기 세계의 오랜 격언이죠. 여기서 강조하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기술을 훈련하기 위한 주제입니다.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화자의 직접적인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인물이나 풍경, 장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의도를 전달하는 거죠. 


글로 만드는 영상물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펜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나레이션 없이 화면만 보여주는 영상이지만, 이걸로도 얼마든지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를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편영화 혹은 다큐를 찍는다면 어떤 소재를 어떻게 연출하실까요? 


저는 몸을 주제로 여러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옴니버스식 연출을 택했습니다. 이전 주제에서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글을 진행했다면, 이번 주제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의 비중이 커졌네요. 


인간의 신체는 원래부터 저에게 중요한 화두이자 영감을 주는 소재였는데요. 수습기자 시절 국립과학수사원에서 부검 장면을 견학했던 날은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세신사에게 몸을 맡겼던 날, 제 몸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작업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실감하며 부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죠. 


최근 들어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노쇠해지는 스스로의 육체, 그와 대조적으로 봄을 맞아 물 오르는 나무가지처럼 성장하는 청소년의 육체를 보면서 경이로움과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아래는 수강생들이 이 주제로 브레인스토밍한 내용입니다. 


가족과 함께한 캠핑의 풍경을 소재로 분위기 전달에 집중. 


영화 ‘추격자’의 인상 깊은 탈출 장면을 묘사. 한여름 더위라는 배경과 살인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탈출 시도가 자아내는 서늘한 느낌의 대비감에 집중. 


평소 좋아하는 숲을 소재로 삼아 숲의 사계절 풍경 묘사. 


해당 주제에서 자주 나왔던 공통 질문과 답변도 참고해 주세요. 


1.철저히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글에서 비유를 사용해도 괜찮을까? 


비유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는 표현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가령 ‘굵은 팔뚝 같은 나뭇가지’는 괜찮지만, ‘굵은 팔뚝처럼 든든한 나뭇가지’나 ‘앙상한 손가락처럼 쓸쓸한 나뭇가지’라고 하면 화자가 해당 사물을 ‘든든하다, 쓸쓸하다’라고 생각하는 심경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니까 피하는 것이 좋다. 


2.묘사를 위한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묘사하는 글쓰기에 꼭 미사여구가 필요하지는 않다. 이럴 때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재를 바라보는 앵글을 다양화하는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묘사하려고 하면 표현의 한계가 느껴지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보는 구도를 달리 하는 방법. 가령 캠핑장이라고 하면 캠핑장의 배경이 되는 산맥, 캠핑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사람들이 앉은 자리 주변의 나무들, 사람들 하나하나의 표정, 사람들이 나누는 구체적인 이야기 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앵글의 다양화가 가능. 



#1. 소중한 몸


한갓진 오전. 젊은 여성이 인적 드문 거리를 바지런히 걷고 있다. 한 손에 큼직한 기저귀 가방을 들고, 가슴에는 아기 띠로 아기를 안은 채. 꽃샘추위로 쌀쌀한 3월 초지만 그녀의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슴에 안긴 아기가 몸을 뒤척이며 칭얼거린다. “응, 우리 아가, 힘들어요? 거의 다 왔어요.” 그녀는 3층짜리 낡은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보건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아유, 다 왔다. 이제 계단만 올라가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왼손으로 난간을 붙들고, 가방을 든 오른손으로 아기를 감싸며 힘겹게 계단을 오른다. 두리번대면서 복도를 걷다가 오른쪽에서 ‘베이비마사지’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은 문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지만, 오래된 경첩이 요란스럽게 삐걱대는 소리를 낸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본다. 그녀는 귀가 빨개진 채로 말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맨 앞에 선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손사래를 친다. “아직 시작 안 했어요. 얼른 매트 하나 차지하고 앉아요.” 그녀는 먼저 가방을 내려놓고, 점퍼 주머니에서 손소독제를 꺼내 손바닥에 듬뿍 짠 다음 손을 싹싹 문지른다. 폭신한 매트에 다시 도톰한 수건을 깐 다음에야 그 위에 아기를 눕힌다. 앞으로 숙인 두 어깨에 땀에 젖은 아기 띠 자국이 선명하다. 앞자리 여성들과 잡담을 나누던 중년 여성이 소리 높여 말한다. “자, 다들 준비되셨으면 마사지 시작할게요.” 팔부터 조물조물, 다리도 쭉쭉, 배 위에서 작은 동그라미를 빙글빙글. 강사의 지시에 따라 아기의 작은 몸을 마사지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온 오른 손목을 허공에 탈탈 털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도 마사지는 멈추지 않는다. 강사의 지시가 이어진다. “우리 아기 다리 길어져라, 소화도 쑥쑥 잘 돼라, 얘기하면서 해주세요.” 사람들이 저마다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녀도 입술을 달싹인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아기가 방긋 웃는다.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떨어져 아기의 몸을 타고 흐른다. 얼른 수건 한 자락을 집어 살며시 닦아낸다. 잠시 넋을 놓고, 아기의 발그레한 두 뺨과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팔다리를 홀린 듯이 본다. 강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손가락으로 발바닥도 조물조물 주물러 주세요. 너무 세게 하지 마시고 살살, 지문으로 문질러 준다는 느낌으로요.”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마사지에 열중한다. 심장이 튼튼해진다, 소화가 잘 된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된다는 자리를 순서대로 정성껏 문지른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이 환히 웃는 엄마의 얼굴에 머무른다.



#2. 껍데기인 몸


텅 빈 복도가 길게 이어진다. 복도를 따라 쭉 내려가면 왼쪽에 위치한 큼직한 통유리창 안쪽으로 사람 너덧이 보인다. 전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두건 안으로 밀어넣고, 하늘색 마스크를 쓰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진녹색 가운을 걸쳤다. 가운데 놓인 금속제 평상에 사람이 누워 있다. 그 옆에 바퀴 달린 수레 위에는 가위와 바늘, 실, 톱 등이 가지런히 놓였다. 가운을 입은 사람 하나가 입을 연다. “26살 여자고요, 사인은 익사입니다.” 옆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시작하지.” 그들은 평상 위에 누운 사람의 배를 쭉 가르고, 안엣것을 하나씩 꺼내 꼼꼼히 확인한다. 빠르고 정확하며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서 몸에 밴 일상의 리듬이 느껴진다. 커다란 금속 대야 안에 심장, 폐, 간, 위장, 그 밖의 장기들이 수북하게 쌓여간다. 머리뼈 절단에는 톱을 사용한다. 서걱서걱, 톱날이 뼈를 자르는 소리가 복도에 울린다. 시취가 스멀스멀 퍼진다. 아무리 두꺼운 철문이라도 그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다. 모든 절차를 마친 그들은 대야에 담긴 장기들을 다시 몸 안으로 털어 넣는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꺼냈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한꺼번에 확. 축 늘어진 살가죽 아래에서 내장이 뒤죽박죽 섞인다. 한 사람이 바늘을 집어 들고 갈라진 몸을 얼기설기 꿰맨다. 삐뚤빼뚤한 바느질이지만, 불평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입을 열어 말한다. “점심은 뭐 먹을까요?” 바늘을 잡은 사람이 대꾸한다. “내장국밥 어때?” “좋죠.” 갈무리된 시신을 담은 평상이 나간다. 곧이어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온다. 그들이 나가는 철문 위쪽에 ‘부검실’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적막한 복도를 거슬러 건물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오렌지색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걷는다. 햇살이 화창한 날이다. 삼삼오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멀어지는 사람들의 뒤쪽으로 관공서 특유의 네모반듯한 건물이 버티고 섰다. 정문의 물결무늬 조형물 위로 또박또박한 글씨체의 간판이 내걸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3. 그 사이의 어딘가


여자는 화창한 햇살을 뒤로 하고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간다. “대인 하나요.”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던 중노년 여성이 탈의실 열쇠를 내준다.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벌써부터 공기가 촉촉하다. 사물함에 옷을 넣고 알몸이 된 여자는 욕탕에 들어서자마자 한구석에 놓인 평상 쪽으로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저 때 밀려고요.” 평상 옆에 있던 검은 브라와 팬티 차림의 여자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온탕 가서 20분 불려 오세요.” 여자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 무더기에서 의자 하나를 집어 샤워 코너로 간다. 먼저 의자에 비누칠을 박박 하고 샤워기로 헹군 다음, 그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샤워를 마친 여자는 등 뒤로 미역처럼 축 늘어진 긴 머리를 둘둘 말아 올리고 탈의실 열쇠에 달린 스프링으로 묶어 고정했다. 온탕에는 할머니 둘이 몸을 담그고 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발끝부터 물에 들어간다. “앗, 뜨거…” 조용한 목욕탕에 소리가 크게 울린다. 할머니 하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고, 다른 할머니가 웃음기를 섞어 타박을 준다. “아, 온탕이니까 뜨겁지.” 여자는 멋쩍게 웃는다.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조금씩 몸을 낮춰 가장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도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간신히 온몸을 탕에 넣었다. 그녀는 맞은편 벽에서 물을 뚝뚝 흘리는 시계를 보며 긴 바늘이 6에 갈 때까지 기다린다. 사방이 온통 뿌옇게 흐리다. 물속에서 조금씩 발장구도 치고, 손가락만 써서 몸을 쑥 들어 올리기도 하면서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걸린다. 바늘이 5와 6 사이에 갔을 때, 때 미는 아주머니가 여자를 찾으러 온다. “아가씨, 이제 와도 돼요.” “네.” 여자는 다시 조심조심 욕탕을 벗어나 평상으로 갔다. “누워요.” 아주머니가 손바닥으로 평상을 탁탁 두드린다. 벌거벗고 평상 위에 누운 여자는 오른팔에 때가 밀리는 동안 난감한 표정으로 왼팔을 가슴 위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당면한 오른팔에만 집중한다. 목과 가슴, 배를 밀 때는 쓱싹쓱싹, 허벅지와 정강이를 밀 때는 쭉쭉. 때수건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몸 위를 지나간다. 앞면을 다 민 아주머니가 손바닥으로 평상을 두드린다. 탁탁. 여자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반짝 떴다. 다시 탁탁. 영문을 몰라 눈만 더 크게 뜬다. “아, 돌아누우라고.” 아주머니는 손수 여자의 몸을 잡아 오른쪽으로 돌려준다. 작업 대상인 여자의 몸은 네 구역으로 분할된다. 앞면 오른쪽과 왼쪽, 뒷면 오른쪽과 왼쪽. 다음번 탁탁 소리에 여자는 지체 없이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마지막 순서로 평상 위에 엎드렸을 때, 아주머니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 끼얹으며 묻는다. “근데 젊은 사람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엔 동네 할머니들만 오는데.” “회사에 휴가 냈어요. 다음 주에 결혼식이라 준비하려고요.” “어머, 축하해요. 젊어서 몸이 너무 예쁘다. 신랑 될 사람은 좋겠네.” 심드렁하던 목소리가 한결 정다워진다. 엎드린 채로 고개가 한쪽으로 꺾인 여자는 다소 짓눌린 소리로 답한다. “감사합니다.” 등과 엉덩이까지 다 밀고 내려가려는데,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평상이 아니라 여자의 날개뼈 언저리를 두드린다. 손가락 끝으로만 살며시. “잠깐 기다려요. 서비스로 얼굴 마사지도 살짝 해줄게.” “아, 감사합니다.” 정면으로 누운 여자의 목소리는 전보다 밝고 가볍다. 손바닥에 오일을 발라 새 신부의 얼굴을 문지르는 아주머니의 손길 역시 전보다 정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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