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록, 열두 번째.
인구 이천만. 계산되지 않은 시리아의 난민들과 불법 이주자들까지 하면 대한민국의 인구 절반은 훌쩍 뛰어넘을 것이 분명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 이스탄불. 이 메트로폴리탄 안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지역 중 하나가 유럽 지역이다. 그러나 유럽 지역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이들이 피해 갈 수 없는 일상의 악몽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트램이다.
특히나 키가 작은 나에게는 트램을 이용하는 출퇴근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아침엔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끝도 없이 트램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 갇혀 숨만 겨우 쉬었고, 저녁엔 하루의 노동이 안겨준 땀 냄새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스탄불의 가장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날 것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트램이었다.
그렇게 이스탄불에서 살기를 몇 달째, 어느새 나도 퇴근길 피곤한 몸을 벽에 기대선 여느 승객들 중 하나가 되었고, 내 앞에 앉아 졸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왜인지 알 수 없는 동질감 같은 것까지 느끼고는 했다. 내 얼굴에 쓰인 고단함과 그들의 얼굴에 있는 것들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청소부 아저씨는 빗자루를 들고 퇴근하시듯, 시미트 장수 아저씨는 시미트가 담긴 손수레를 들고 퇴근길 트램에 오르셨다. 미처 다 팔지 못한, 꽤 많아 보이는 시미트들을 무명천으로 정성스레 덮어두고선 수레의 손잡이를 꽉 붙잡으신다.
덮인 무명천을 비집고 시미트 겉에 뭍은 고소한 참깨 냄새가 솔솔 차량 안으로 퍼져나가면, 퇴근하는 사람들의 주린 배가 하나둘 꼬르륵꼬르륵 트램의 경적처럼 여기저기서 울린다.
그러다 나처럼 그 냄새에 참지 못하고 아저씨에게 일리라 동전 하나를 건네면 무명천 아래의 시미트 하나가 아저씨의 손을 빌려 빼꼼 빠져나와 내 손에 쥐어진다.
이스탄불의 트램은 삼백육십오일 언제나 한결같이 수천 년 된 고도를 달린다. 삼백육십오 개의 매일 다른 이야기와 표정으로 트램에 올라타는 이들을 반긴다. 시간을 되감아 추억을 되새기며 글을 쓰는 지금,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사람 냄새 풀풀 나던 그곳이 사무치게 그립다.
2015년 11월 19일 17시 22분 이스탄불 트램 안에서.
2020년 10월 28일 14시 03분 프라하 내 방 책상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