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람, 여섯 번째.
꼭 그런 날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데도 쉽사리 멈출 수 없는 날.
때운 치아가 많은 탓에 젤리나 캐러멜은 먹지 말라는 충고를 십수 년 넘게 치과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온 나였다. 그런데 그날은 자꾸만 곰젤리 생각이 났다. 그러다 온종일 알록달록한 곰들이 머릿속을 헤엄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한 봉지를 막 사온 참이었다. 에이, 설마 별 일 있겠어. 나는 젤리 봉지를 뜯어 곰 두 마리를 입에 넣었다.
두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여덟 마리. 봉지 안에 있던 곰들이 곧 내 뱃속을 헤엄치게 생겼다. 곧이어 쑥-
'쑥?'
괜한 걱정이었다 생각하던 찰나에 무언가 쑤욱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금니 아래 갇혀있던 어금니에 수십 개월 만에 와 닿는 생생한 공기의 감촉. 아, 그래서 직감은 무서운 것이거늘, 어리석은 자여.
나는 얼른 그대로 입을 벌려 모든 걸 뱉어냈다. 빠진 금니를 깨무는 바람에 피눈물 나는 지출을 해야 했던 지난 경험 덕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히 빠진 금니는 온전한 본래 모습을 잃지 않은 듯했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면 좋담. 이집트에서 맹장 수술도 해봤고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에 걸려 산소호흡기 신세도 겪어봤지만 외국에서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은 다름 아닌 치과였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한 번 손을 대면 다시 복구를 할 수 없는 게 치아 치료인 만큼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불현듯 며칠 전 투어에 오셨던 치과 의사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투어 이후 사진을 주고받았던 개인 연락처가 있어 염치 불고하고 여행 중 이런 연락을 드려 정말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조언을 구했더니, 때마침 다른 도시 여행을 끝내고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이니 본인이 한번 봐주시겠다는 게 아닌가!
다행히 간이 진료를 봐주신 선생님은 모양이 변형되지 않아 치과로 가져가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다시 끼울 수 있을 테고, 한국 휴가까지 남은 몇 개월 간은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 하셨다. 터키 친구들을 통해 믿을만한 치과를 수소문했지만 치과들은 모두 하나같이 탐탁찮았다. 그 날 시리아 친구 야민과 저녁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야민이 눈을 흘기며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소피, 우리 아버지가 의사라고 했잖아. 의대 교수로도 재직하셔서 분명 치과 의사 한 명쯤은 알고 있으실 텐데! 나한테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기다려봐 당장 알아보자."
야민은 곧장 집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의 아버지는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스탄불에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제자에게 사정을 얘기해놓았으니 내일 가면 된다고 연락을 취하겠다고 전해오셨다. 세상에 이렇게 빠르다고?
이튿날 퇴근 후 야민과 만나 치과로 갔다. 근데 도착한 곳은 간판 하나 없는 그냥 휑한 아파트 건물이다. 알고 보니 터키 정부에서 시리아 난민들의 비자 신청이나 합법적 소득 활동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에, 같은 난민 신분의 시리아 출신 의사들이 이렇게 다른 난민들을 위해 비밀리에 불법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불법 치과라니!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한참 답이 없기에 야민이 가지고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건다. 전화가 끊기고 삼 초 후 문이 딸각 열리며 좁은 틈 사이로 한 남자가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속삭이듯이 아주 낮고 빠른 목소리로 야민에게 아랍어로 인사를 건넨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야민이 자신의 친구이니 믿어도 좋다고 안심을 시키니 그제야 그는 빗장을 풀고 우리에게 들어오기를 청했다.
뭐야 나 치과에 온 거야 아니면 스파이 작전에라도 휘말린 거야?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나도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일단은 들어가 보는 거다.
어두운 현관 너머에 대체 어떤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야민은 내 친구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진즉 알고 있는터라 내 몸을 감싼 것은 공포가 아닌 예측 불가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었다.
남자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아주 오래된 가정집의 거실이었다. 다만 두껍게 쳐진 커튼과 부서진 치과 진료용 의자, 테이블 위에 놓인 아랍어로 쓰인 의료 허가증이 이 곳이 평범한 가정집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깐만, 부서진 의자? 설마 여기서 진료를 하겠다고?
푸하하 하하하
옆에서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야민이 갑자기 주체하지 못한 듯 큰 소리로 폭소를 터트렸다.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꺽꺽대며 웃더니 얼씨구, 눈물까지 글썽인다. 어리둥절해하는 내 어깨를 잡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헤이 소피, 내가 설마 널 죽게 하겠어? 걱정하지 말라고! 넌 저 의자에서 진료받지도 않을 거고, 너를 치료해 줄 의사는 다마스쿠스에서 제일가는 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사람이야. 정말이지 너는 어쩜 표정조차 거짓말을 못하는 거니? 무슨 도살장에 끌려온 새끼양 같다. 아이고 배야, 너 때문에 내가 웃다가 먼저 죽겠어 정말."
아차 싶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혈연에 학연까지 동원해 팔을 걷어붙인 야민인데 내 표정에 너무 적나라하게 겁먹은 티가 났었나 보다. 민망해진 나는 얼른 대답했다.
"야, 그런 거 아냐. 사실 여기가 진료하는 곳이면 어쩌지 싶어 걱정한 건 맞아, 인정할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진짜 끝내 주잖아! 심지어 여기 내가 출퇴근 길에 항상 지나다니는 길인데 이런 곳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어? 아마 네가 아니었으면 죽어도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난 도살장이 아니라 애초에 접근이 금지된 다른 세상 한복판에 끌려온 거라고!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잖아! 근데 진짜, 내가 본 치과 중에 제일 끝내주는 곳 같아. ㅋㅋ"
"그렇잖아도 너라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나! 자, 하이파이브!"
우리 두 사람이 비밀 모임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 마냥 이 끝내주는 상황에 키득거리고 있을 때 의심 많은 그 남자가 들어오더니 우릴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내하는 대로 옆방엘 갔더니 웬걸, 진짜 치과 진료실이 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실내와 멀쩡하다 못해 새것처럼 윤이나는 치료용 의자. 그리고 하얀 가운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흘란 와 싸흘란. (어서 오세요.)
아랍어로 인사를 건네는 그. 굉장히 선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남자였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예전에 학회 참여로 서울에 가본 적이 있다며 굉장한 나라에서 온 귀한 손님이라며 반색을 한다.
"자 그럼 한번 볼까요?"
치과 특유의 냄새가 폴폴 나는 의자에 눕자 그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세심히 이를 관찰했다. 곧 간호사가 깨끗이 소독한 금니를 들고 왔고, 그는 몇 번을 이리저리 만져대더니 웃으며 다행히 이가 잘 맞물려 떨어진다며 바로 붙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접착제를 듬뿍 바른 금니를 단단히 붙이고 나서 꼭 물고 오분만 있으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물고 있던 스틱을 빼주고선 끝났다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쉽게 끝나다니! 만세!
그는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가뜩이나 자신보다 어려운 난민들을 돕는 그의 치과는 어려운 살림일 것이 불 보듯 뻔해 나는 꼭 치료비를 내야겠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시리아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불법 치과에 온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한국 손님에 대한 호의로 받아들여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중동에서 짓궂은 젊은이들 때문에 시달리면서도 그곳에 대한 애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던 대다수의 아랍인들이 지닌 따뜻한 마음과 외부인을 향한 환대. 지금 그가 내게 베풀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이었다.
그들의 문화에서 손님의 지나친 거절은 호스트에 대한 무례함이자 명예를 욕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결국 나는 그의 뜻에 따라야 했다. 그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고 나오는 길, 지불하지 못한 치료비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날 보며 야민이 말한다.
"소피, 저 양반이 네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봐. 그가 굉장히 돈을 밝히는 이라고 아버지가 사전에 귀띔을 해주었거든. 그래서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르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치료비를 받지 않다니 이건 기적이야! 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면 분명 깜짝 놀라실 거야."
"에이, 다 너와 네 아버지 덕분이지 뭐."
"아냐. 정말 아버지 때문이 아니래도? 넌 주변의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기꺼이 누군가를 돕곤 하잖아. 난 그냥 사람은 나눈 만큼 다 돌려받는 거라고 생각해. 어쨌든 정말 잘 됐다 그렇지?"
"아,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넌 모를거야. 특히 여기 터키에서는 더더욱! 그나저나 정말이지 너무 고마워 야민. 네 덕에 시리아 불법 치과를 가보다니. 절대 잊을 수 없을 끝내주는 경험이었어."
다행히도 이는 내가 한국에 휴가를 갈 때까지 잘 버텨주었고, 나는 무탈하게 한국에서 진료를 끝낼 수 있었다.
시리아 의사 아저씨가 붙인 금니를 한국에서 다시 떼어냈을 때, 나는 금니를 가져가도 되겠냐 물었다. 이걸 왜? 하고 의아해하는 얼굴의 간호사 언니에게 말했다.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는 금니거든요."
2015년 늦여름, 이스탄불.
2016년 3월, 한국.
세상 어디나 선과 악은 공존한다. 인간 본성 안에서 선한 부분을 조금 더 믿어보는 것, 삶과 여행의 길 위에서 스치는 모든 이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잊지 않으려 애쓰는 부분이다. 중동에서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이들과 나를 보호해준 이들 모두가 같은 아랍인이자 같은 무슬림이었듯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종교도 인종도 아닌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