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키] #24 터키살이 1주년, 그날의 일기.

순간의 기록, 열네 번째.

by Sophie




2016년 2월 4일. 이곳 이스탄불에 온 지 딱 일 년 되는 날이다.

새롭다. 믿을 수가 없다. 정말로 내가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니.
여행이 아닌 삶을 꾸리기 위해 왔던 세 번째 국가였고,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곳이기도 했다.
한국과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가진 덕에 보다 쉽게 적응했고, 그동안 살았던 아랍 국가들과 다를 바 없었기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었다.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면, 나는 지난 시간 동안 행복했다. 여기서 일 하는 게 내 생에 손꼽을 정도로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 중 하나였고, 결국은 얻었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했고 뿌듯했다.

그리고 시작한 첫 직장 생활에서 남은 삶도 함께 나누며 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인연을 선배로 만났다. 직장이지만 동료라곤 서로 뿐인 특수성과, 같은 성별, 함께 살며 나누는 일상까지 더해져 선배는 내게 직장 선배 그 이상의 인연이 되어주셨다. 장담하건대 선배가 아니었다면 절대 일 년 동안 이곳에 있을 수 없었을 거다.

십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오신 분들에 비하면 고작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행복하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비록 노동의 강도나 업무량에 비해서는 적은 급여였지만 그저 매 순간을 행복으로 채워갈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곳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그 사실 자체로도 나는 감격스러웠고 행복했다.

일을 하며 참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났다. 일 년 동안 일을 하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중 50명 정도 되는 분들과 진득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찰나의 인연이었다. 내게 스쳐 지나가는 손님들 중 하나일 수도, 그들에게도 여행지의 한번 보고 말 가이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스침이 연이 되어 이렇게 보고 싶고, 기억나고, 감사한 존재들이 되었다. 내가 이 일을 하며 얻은 가장 감사한 선물들이다.


사람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없겠냐마는, 사람 때문에 기뻐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싱글벙글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오던 적이 더 많았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며칠, 혹은 몇 년이 되든 그것은 단 한 가지, 좋은 손님들과 그들로 인해 얻는 보람 때문일 것이다.

유학 시절보다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대인 관계.
그 시절 하루가 머다 하고 열던, 파티라기엔 너무나 소박했어도 함께여서 행복했던 단란한 저녁 파티 같은 건 여기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외국에 있어도 새로운 만남을 만들 길이 없던 이 일상에 지칠 뻔한 적도 있었다.

결국 1년 동안 다섯 명의 외국인 친구를 만났지만 터키인이었던 한 명은 이스탄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또 다른 터키 친구는 다음 달 독일로 유학을 가고, 동네 친구였던 시리아 친구는 합법적인 난민 지위 취득과 일자리를 위해 터키 정부의 비자 발급을 기다리다 결국엔 지난달 추운 겨울 바다를 건너 독일로 떠났으며, (터키 정부는 본국 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난민들의 정착을 막기 위해 노동생산이 가능한 성인 남성에게는 난민 자격이나 비자를 거의 내주지 않는다. 즉 불법체류를 벗어날 수 없다.)


동생이 여기서 다니던 학원의 같은 반 친구였던 일본인 친구와 시리아 친구 그 둘만이 남았다. 외국인으로 터키에 사는 고민들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그들과의 우정 덕분에 나는 종종 업무로 인해 답답했던 숨통을 틔우고 많은 위로를 얻었다. 얼마나 그 둘의 존재가 감사한지 모른다.

새해를 맞으며 정리하는 글을 써보려 했건만, 결국 이곳에 온 지 일주년을 기념하여 지난날을 정리한다.
지난 일 년의 모든 일들에 감사한다. 나는 행복했고, 슬펐으며, 신나서 춤을 췄고, 와하하 웃었고, 서럽게 울었다. 요르단에서의 시간이 벌써 3년 전이라는 세월 속에 흘러가버렸듯, 이곳에서의 시간도 '벌써?'하고 놀랄 만큼 언젠가는 추억이 돼버릴 것을 안다.

오늘이 너무 기쁘고 뜻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십 년이 지나 이곳에서의 생활을 다시 보더라도 내가 했던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대견해.라고 스스로 말해주고 싶은 오늘.


2016년 02월 04일.

내 사랑 이스탄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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