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 - 그 선배 ver.

제 1편) 그 선배 ver.

by 은쓰다

"어머! 너무 예쁘다. 봄은 봄인가 봐요. 저 꽃 좀 봐요. 선배"


회사 근처에 새로운 맛집이 오픈됐다며 가보자는 후배의 말에 따라오긴 했는데 매일 먹는 점심 한 끼를 굳이 이 긴 줄을 서가며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자니 나왔고, 맛집 명성에 맞게 맛있긴 했다.

신입사원 때부터 벌써 3년을 보고 있는데 뭘 그렇게 매 번 맛집이며 핫플이며 친구들과 다녀온 사진을 보여주고는 다음 회식은 여기를 가보자며 졸라대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밥이니 술이니 거기서 거기인데….

이번엔 회사 근처라니 거절할 명분이 없어 왔다. 덕분에 점심시간 보다 조금은 이르게 나와 생각보다 길지 않게 기다리다 식사를 마쳤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울만한 장소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뒤따라 나오던 후배는 쪼르르 달려가 식당 앞 인도가장자리에 꾸며진 화단으로 간다. 듣고 보니 작은 풀꽃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민들레 빼고는 이름도 잘 모르겠고 별 관심도 없는지라 가게 모퉁이를 지나 멀찍이 떨어져 담배를 물었다.


연신 카메라로 꽃을 찍던 후배가 여전히 쪼그려 앉은 채로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묻는다.

"대리님, 대리님은 무슨 꽃 좋아해요?"

이제 막 한 모금 빤 담배를 입을 삐뚜름히 돌려 옆으로 토해내며 대답했다.

"꽃? 좋아하는 꽃?"

단순한 질문인데도 사실 중요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선뜻 대답이 안 나온다.

"글쎄... 없는 것 같은데...”

후배는 역시 이런 싱거운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슬쩍 눈을 흘긴다.

"으휴~ 그럴 줄 알았어요."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며 구겨진 바지를 털고 내 쪽으로 걸어오며 질문을 한다.

"왜 대리님이 꽃에 관심이 없는 줄 아세요?"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 대답 없이 다가오는 그 애를 쳐다봤다.

묻기는 했지만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라는 듯이 말을 잇는다.

"옛날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마음에 꽃이 없는 사람은 꽃을 볼 줄 모른대요."

무슨 스님 같은 선문답을 하며 가까이 온다.

그러더니 언제 꺾었는지 작고 노란 민들레를 내민다.

엉겁결에 남아 타들어가는 담배탄을 날려 끄고는 눈앞에 노란 민들레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후배는 입을 앙 다문채 보조개가 옴팡들어가게끔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다.

또 저 보조개….

시키지도 않은 보고서를 만들고 메일로 보내도 될 걸 굳이 출력까지 해와서 내밀 때는 항상 단단하게 입을 앙 다물고는 보조개를 패고 쳐다본다. 내가 다 읽을 때까지 옆에 있을 작정으로 뚫어져라 본다.

무언가 실수를 하면 내 책상을 두 손으로 잡고 매달리듯 쪼그리고 앉아서 세상 다 무너진 듯이 입꼬리와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자책을 하며 「선배님, 저는 바보인가 봐요. 억 단위를 천 단위로 써서 보내서 계산서가 잘못 왔어요. 죄송해요. 제가 경영팀 하고 업체에 다시 정정 요청할게요. 정말 죄송해요. 다신 이런 실수 안 하겠습니다. 」 라고 할 때도 옴팡 옴팡 입술을 오므렸다 펴며 보조개가 들어갔다 나왔다 설명을 해댄다.

지금은 갑자기 왜 또 이런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가 싶어 쳐다봤다.


"그래서 이제 내가 선배 마음에 꽃을 좀 심어주려고요."

잠시의 호흡을 두더니 휙 돌아선다.

"얼른 들어가요. 점심시간 다 끝나가요."

갑작스러운 말을 곱씹어 보느라 잠시 서서 애꿎은 민들레 꽃대를 검지와 엄지 사이에 쥐고 빙그르르 돌린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민들레의 노랗고 작은 소용돌이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뱅글뱅글 돈다.

입가에 미소도 배시시 나온다.


앞서가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밥 먹느라 집게핀으로 설기게 틀어 올려진 머리카락 사이에 민들레를 꽂았다.

"음…. 꽃은 잘 몰라도 꼬치는 맛집 안다. 이따 퇴근 후에 닭꼬치에 맥주 한 잔?!”

그러고는 민들레를 내밀던 그 손을 슬며시 잡았다. 차마 이런 아재개그를 던지며 후배를 바라볼 엄두는 나지 않아 앞만 보고 걸었다.


후배는 소리 내어 대답하진 않았지만, 손을 빼지 않는다.

옆 눈으로 그녀 머리에 꽂힌 민들레가 살랑살랑 움직인다.

그녀가 산들산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