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 - 그 후배ver.

제 2편) 그 후배 ver.

by 은쓰다

"어머~ 너무 예쁘다. 봄은 봄인가 봐요. 저 꽃 좀 봐요. 선배"


오늘도 출근길에 인스타를 뒤지며 회사 근처 맛집을 찾았다. 마침 유명셰프의 제자가 운영한다는 핫플레이스 맛집이 회사 근처에 오픈됐다는 소식!

매일 구내식당밖에 가지 않는 대리님을 끌고 점심 보다 조금 이르게 나왔다. 점심 먹는데 줄까지 서야 하냐며 약간 투덜거리시긴 했지만 역시 누구보다 복스럽고 맛있게 식사를 하신다. 볼이 터지게 크게 밥을 넣고는 입을 꼭 다물고 꼭꼭 씹는 모습이 햄토리 같고 귀엽다.


길가 쪽 화단에는 정갈하게 트리밍 된 회양목 울타리가 있었고, 다행히 뽑혀나가지 않은 풀꽃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어떤 꽃들이 있나 살펴보니 하얀 냉이꽃과 민들레, 작은 별같은 연보라 색 꽃 몇 송이가 보인다.

선배는 역시 밥을 먹자마자 담배가 생각나나 보다. 어차피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동안 나는 꽃이나 구경할 겸 화단가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꽃사진으로 도배된 엄마의 카톡 프로필이 생각나 엄마에게 보여줄 겸 몇 장 찍다 고개를 돌려 대리님을 쳐다봤다. 역시 이 봄을 즐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리님, 대리님은 무슨 꽃 좋아해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담배를 옆으로 뿜어내며 대답한다.

사실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데 항상 담배를 태울 때 나한테 담배연기가 오지 않도록 굳이 표정과 입을 일그러뜨리며 옆으로 연기를 뿜는다는 걸 알고 있다.

“꽃? 좋아하는 꽃?”

역시, 꽃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마냥 대답한다.

“글쎄…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사실 나는 리시안셔스를 좋아해. 오묘한 색의 얇은 곁꽃잎이 예쁘고 무엇보다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마음에 들어서…」 라는 식의 대답이 나온다면 더 이상할 것도 같지만, 역시나 당연한 듯 무덤덤한 대답이지 싶다.

“으휴~ 그럴 줄 알았어요.”

저 사람은 모른다. 본인이 얼마나 예쁜 꽃을 마음에 지닌 사람인지를….

그래서 작은 민들레 한 송이를 꺾었다. 꽃을 꺾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세상 무뎌서 촉촉함이라고는 없는 저 사람에게 몽글몽글한 꽃과 봄을 알게 해 주고 싶다.


“왜 대리님이 꽃에 관심이 없는 줄 아세요?”

일어서서 다가가는 나를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신입사원 때부터 내 사수였던 저 선배는 늘 저런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업무를 알려줄 때는 항상 진지한 표정이지만 그 외에는 가끔 피식 웃는 것 말고는 별 표정이 없다.

내가 기대 이상으로 잘했을 때도, 업무에 실수를 했을 때도 대부분 저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저 표정이 의미하는 바가 뭔 지 몰랐지만 3년쯤을 보다 보니 다른 걸 알 수 있다.

잘했을 때는 단단한 눈빛으로 응원을 해줬고, 실수를 했을 때는 동글동글한 눈빛으로 위로를 해줬다.

지금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그냥 멀뚱멀뚱한 표정이다.

“옛날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마음에 꽃이 없는 사람은 꽃을 볼 줄 모른대요.”

나는 꺾은 민들레를 내밀었다. 이제는 멀뚱멀뚱한 표정에 뭔 소린가 싶은지 미간에 약간 주름이 간다. 담배를 끄더니 내민 민들레를 받아 든다.


“그래서 이제 내가 선배 마음에 꽃을 좀 심어주려고요.”

나도 모르게 마음에 있는 말이 쏟아져 나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얼른 들어가요. 점심시간 다 끝나가요.”

뱉고 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먼저 돌아서 버렸다.

너무 빨리 걸어가면 내 등 뒤에 왠지 ‘어색 어색’ ‘오글 오글’이라는 말풍선이 붙을 것 같아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왜 안 따라오는 거야. 더 어색하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톡하니 머리에 민들레가 꽂힌다.

“음… 꽃은 잘 몰라도 꼬치는 맛집 안다. 이 따 퇴근 후에 닭꼬치에 맥주 한 잔?!”

이건 무슨 답인가 싶다. 드디어 맛집 타령하던 내 맘을 알아챈 건지, 농담인 건지 싶었는데 슬며시 손까지 잡는다.


차마 못 쳐다보겠다.

머리에 꽂힌 민들레가 내 심장 소리에 맞춰서 풍선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목소리까지 떨릴 것 같아서 차마 말은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른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민들레를 스친다.

그가 잡은 손을 선들선들하게 흔들며 걷는다.




▽▽ 짝꿍 이야기 - 그 선배 ver. 보러가기 ▽▽


01화 살랑살랑, 봄 - 제 1편 그 선배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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