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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민 Oct 27. 2020

제조된 지 1년 차 트라우마

상처 속에 나를 방치하면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나요?

 나의 꿈은 어릴 적부터 오직 한 가지였다.

'작가'가 되는 것, 그래서 성장 시기 내내 드라마 작가와 방송작가를 고민하던 중 둘 다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100세 시대니까 :)

그래서 대학교를 2월에 졸업하자마자 3월에 한 방송국 휴먼다큐 프로그램에 막내작가로 취직을 하였다.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에게 방송국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음에도 방송국 생활은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딱하고 나올 것 같았던 아이템은 일주일 동안 구글링을 해도 나오지 않았고, 전화 한 통이면 생길 것 같았던 출연자는 2주 동안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방송국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초짜라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휴먼다큐라 일반인 출연자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겹치지 않는 아이템을 찾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일적인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건 상사의 괴롭힘이었다.


 일에 서툴다 보니 혼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서 인격적으로 공격을 받으면서도 잘못된 건지 몰랐다.

말을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나와 같이 일하는 남자 막내작가와 관련하여 나지도 않은 소문이 났다고 얘기하면서 나의 행동을 단속했다. 또한 팀에서 가장 높은 상사가 나를 별로 좋지 않게 본다고 말하며 나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나와 같이 일하는 막내 작가들끼리 일을 하며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꼬웠는지 막내작가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어색한 사이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방법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 무의식에 숨어 상처로 곪고 있을 뿐.

 퇴사 후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말을 맞추어 본 결과 그 상사가 나한테 했던 말들은 다 거짓말이었다. 정말 상사한테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상사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지 잘 몰랐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이게 바로 어른들이 말하던 지독한 사회생활인 줄 알았다.

 한 달 정도 이런 상태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쿵쾅거렸고, 카톡이나 문자가 올 때마다 긴장하며 수신자를 확인하곤 했다. 나중엔 이런 것이 싫어 그 상사가 전화 올 때 특정한 전화벨이 울리도록 설정해두었다.

 

 결국 나는 어느 날 평소보다 더 선을 넘은 상사의 행동에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노트북을 접고 바로 방송국을 뛰쳐나왔다. 비록 갑작스레 퇴사를 결정한 나의 행동이 책임감은 없었지만, 인격이 부족한 사람 밑에서 일하며 나 자신을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방치하며 스스로 학대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 깔끔하게 잘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일을 그만둔 후에도 계속 그 상사는 나의 꿈에 등장해 나를 괴롭혔다. 또한 TV를 틀면 방송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떠올라 좋아하던 TV도 잘 보지 않게 되었고,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게 트라우마가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상사로 인해 방송국을 떠올리면 거북함이 들 정도로 22년간 가졌던 꿈을 한 달 반 만에 잃어버린 것이다.


왜 그때 옳지 못하다고 말하지 못하였을까?


 아마도 잘 못 보고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을 참는 것이 진정한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넘기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 그리고 이 잘못된 습관은 나와 같이 처음으로 사회에 나온 초년생들에게 대대로 내려와 관습이 된다.  이런 잘못된 습관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 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생활이 아닌 부당한 대우에서 생긴 자신의 상처의 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회초년생으로 개인적으로 바라본 사회의 일부이며, 부당한 대우 속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않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는 어떤 말투와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고, 나는 상대에게 어떤 말투와 대우를 받고 있는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훈계와 지랄은 다르다.

때문에 난 매일 진심으로 바란다 서로 모진 말을 주고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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