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제국실록

파운데이션 - 아이작 아시모프

by 김민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에서 테드 창과 켄 리우까지 놀라운 SF들을 읽었지만 최고의 장편을 뽑으라면 파운데이션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가진 천문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역사, 지리, 신화, 종교, 심리학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모두 풀어내려면 은하계 정도의 공간으로는 부족했고 몇 만 년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SF라는 틀에 담겨있지만 역사 소설 같기도 하고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소설이지만 추리소설의 맛도 보여주면서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철학소설이기도 한 작품이다. 어쩌면 파운데이션은 과학소설보다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이란 정의가 어울릴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은하제국이란 단어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가장 미래적인 것과 가장 오래된 것이 공존하는 세계라니. 이건 뭐 참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해리 셀던은 1만 2000년 동안 존속해 온 제국이 5세기 안에 멸망한다고 예언한다. 전체 인구가 100경에 이르는 은하제국의 미래를 심리역사학이라는 수학적 방식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의 그의 주장이다. 셀던은 몰락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제국 멸망 후 제 2의 제국이 등장하기까지의 30000년의 혼란기를 1000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면서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한 ‘은하대백과사전’을 편찬하자고 한다. 셀던의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은하계 한구석의 황폐한 행성 터미너스로 이주해 백과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터미너스의 명시장 샐버 하딘, 우주무역상인 림마 포네츠, 최초의 무역 왕 호버 말로, 매력적인 심리학자 에블링 미스, 트레비스와 페롤렛이 마주한 가이아의 진실은? 은하계의 운명을 놓고 벌어진 삼자대면의 결과는? 오로라, 콤포렐론, 솔라리아, 멜포메니아, 알파 행성을 거치는 여정은 마치 어린 왕자 성인 버전 같다. 제2파운데이션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가? 제2파운데이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해리 셀던은 행성 자체를 돌로 삼고 은하계를 판으로 삼아 거대한 바둑을 둔다. 그가 무슨 수를 둘지 예상하는 재미, 그대로 맞아 떨어졌을 때의 기쁨만큼 뒤통수를 맞는 즐거움도 크다. 심리역사학은 마치 놀라운 마법처럼 보인다. 심리역사학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마야인들의 운명론을 떠오르게 한다. 과연 미래는 예측할 수 있는가? 해리 셀던의 예언이 흐름을 바꾼다면? 예언은 가능한가? 예언자가 존재한다는 건 미래는 고정되어 있다는 뜻일까? 예언 자체가 변수가 된다면? 셀던조차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난다면? 그의 예측을 신뢰해도 되는 걸까?

3650페이지에 이르는 여정을 따라가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10년 전 읽었던 복선이 눈에 들어온다. ‘맞아 이런 반전이 있었지.’ 반전을 알고 보는 것 또한 새로운 기쁨이다. 모든 것이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것은 한 장면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선택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 미약한 존재라 해도 그 역시 세계를 이루는 조각인 것이다.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각이 필요하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 세계를 구하는 일이 될 수 있고 한 사람을 기쁘게 하면 세계는 좀 더 나은 곳이 될 테지. 제국이 붕괴된 후 피비린내 나는 ‘대약탈’ 시기 은하계 학문의 중심지를 수호한 이름 없는 학생들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나아가지 못했을 거다.

고정된 텍스트를 통해 나의 변화를 실감하는 것도 독서의 기쁨이 아닐까. 일단 기록되면 그것은 고정된 사실이 된다. 고정된 사실을 해석하는 자신이 달라졌다는 말은 나의 역사도 진행형이란 뜻이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을 통해 나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바뀌지 않는 역사를 통해 방향을 수정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면 운명이 된다는 걸 믿는다. 생명을 이길 운명은 없다는 걸 안다. 나의 선택이 세계를 바꾸지 않아도 좋다. 지금까지 한 선택의 합이 나라는 존재이며, 나 역시 우주를 이루는 존재이니까.


예언보다 위대한 건 행동의 힘이 아닐까. 내일을 미리 아는 것보다 새로운 오늘을 만드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닐까. 대륙을 발견하는 것보다 새로운 섬을 만드는 것이 훨씬 근사한 일이 아닐까.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면 우주에게 그의 행동으로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거다. 그 모든 목소리가 모여야만 ‘역사’라는 흐름이 된다. 소망의 힘은 예언보다 강하고 상상의 힘은 운명을 만들어 낸다. 살아있는 존재만이 길을 만든다. 불변하는 것은 오직 시간의 흐름뿐이다. 절대적이라 믿은 모든 것이 저 뒤편으로 사라진다. 일상은 물론 시대까지도 영원에 비하면 찰나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삶은 반짝거린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에 비로소 빛나는 것이 생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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