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M 바르콘셀로스
나의 첫 번째 도서관은 세 들어 살던 단칸방 구석에 있던 책장이었다. 싸구려 합판으로 만든 다섯 단짜리 책장.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고 밥상을 들이면 식당이 되는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맨 위에는 아버지가 샀으리라 짐작되는 글씨가 작은 책들이 꽂혀 있었지만 그것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4단 전체와 3단 일부에 거쳐 40권짜리 위인전이 있었다. 흰색 하드커버 책등에는 간디, 강감찬, 을지문덕, 헬렌 켈러, 이순신, 황희, 신사임당, 세종대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3단에는 20권으로 이루어진 학습과학만화가 자리했다. 바다의 신비, 우주의 비밀, 인체의 구조 따위의 제목이었다. 어느 날인가 출판사 영업사원이 방문했고 그의 언변에 아버지가 넘어 간 건지 아니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마음먹은 건지는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몇 번인가 같은 책을 구매한 걸로 추정되는 아이들과 봉고차를 타고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 공원이나 체험행사 같은 곳에 갔던 기억만이 흐릿하다. 2단과 1단에는 야시장에서 사온 책들. 오싹오싹 공포체험, 흡혈귀의 첫사랑, 14살 소녀의 러브레터 같은 책이 채워져 있었다. 아무튼 본전은 확실히 뽑았다. 위인전 커버는 하도 봐서 너덜거렸고 학습과학만화는 쭈글쭈글해졌다. 단칸방 도서관에 신간도서가 입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인집 식구는 시청에 다니는 아저씨와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사이에 자식이 다섯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정이 많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챙겨주었고 어린 우리 남매를 예뻐했다.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다섯 가정은 여름에는 해수욕장에 함께 갔고 겨울이면 김장을 같이 담글 정도로 가까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그 집 첫째인 상열이 형은 서울대를 가서 동네의 자랑이 되었다. 둘째인 명순이 누나는 일찍 시집을 갔다. 그 아래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연순이 누나, 그리고 쌍둥이로 태어난 도열이 형과 민순이 누나가 있었다. 연령대가 다양했던 만큼 책의 종류가 많았고 고급스러운 책들도 꽤 있었다.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들어가 책을 봐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시절이었고 그래도 되는 나이였다. 그곳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전집이나 세계의 명시 따위의 책을 가져와 읽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가정형편 조사라는 걸 했다. 담임은 종이를 나눠주고 냉장고는 있는지, 자동차 종류는 뭔지, 집은 월세인지 전세인지, 아니면 자가인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적게 했다. 선생의 얼굴이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중산층이라고 손을 들자 “너는 아니니까 손 내려”라고 말했다는 사실뿐이다. 선생의 한 마디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병균 같은 것이 몸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린 내게는 막을 힘이 없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박히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죽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을 원망할 수 없으니 아버지를 원망했다. 같은 반 아이들의 눈치를 보았고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놀이는 재미없어졌고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즈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다. 제제의 가난이 내 것 같았다. 실직한 아버지, 장난치다 매를 맞는 아이, 처음으로 공감한 책이 그런 내용이었다는 게 행운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 제제는 물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할까.” 왜 나는 그런 방식으로 철이 들어야만 했을까. 나에게 뽀르뚜까 아저씨는 없었지만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은 자유로웠다. 어머니 동료들의 집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동네 아이들의 집에 놀러가는 이유도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리코더나 스케치북, 크레파스 같은 걸 사달라고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한 학기가 끝날 때 책거리라고 분단별로 가져온 과자나 음식을 나눠먹을 때도 혼자였다. 같이 먹자는 아이도 있었지만 고집스럽게 등을 돌리고 꾸역꾸역 빵을 먹었다. 식빵에 뚝뚝 떨어지던 눈물. 그 때 먹었던 땅콩크림 샌드위치가 처음 맛본 눈물 섞인 밥이었다. 나는 그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제제, 왜 자식은 부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성장해야 하는 걸까. 왜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어른이 되는 걸까. 아직 아이들이 철이 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어. 스스로에게 상처 내면서까지 어른이 되었으니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으려 애쓸 뿐이지. 그런데 말이야. 제제, 모든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어. 삶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상실하는 과정임을 깨닫고 지금을 힘껏 껴안는 사람이 어른이었어. 부를 수 없는 이름은 헤어질 일 없는 이름이 되더라. 돌이킬 수 없는 때는 사라질 일 없는 순간이 되더라. 가끔 떨어지는 것은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어. 무너지는 것은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였어. 나이 든다고 지혜가 저절로 쌓이지는 않더라. 낡지 않으려는 마음에 깃드는 거더라. 사는 게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지금껏 빛나지 않았던 순간도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