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에는 도서관이 있으니까

다시 도서관에 가다

by 김민


공식적인 데뷔는 미륵산으로 올라가는 길 중턱에 자리 잡은 통영도서관이었다.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었을 때의 희열은 엄청났다, 노란색 종이로 된 도서대출 카드는 책의 세계를 여행할 여권이었다. 지금은 책을 골라 키오스크에 대출카드만 찍으면 되지만 그때는 증명사진을 붙인 종이 대출 카드에 날짜와 책 제목을 적고 도서관 직원의 서명을 받아야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책을 반납할 때도 사서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다. 기본이 두 권이었고 시리즈인 경우는 세 권까지 빌릴 수 있었다. 방학 때마다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침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가 집으로 가 식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 퍼먹은 뒤 다시 도서관으로 왔다.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책을 읽다가 책 두 권을 빌려 돌아왔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엎드려 책을 펴는 순간 낡은 담요는 마법의 양탄자가 된다. 책을 읽는 건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일이었다. 세상 변두리에서 사건의 중심으로 단박에 파고든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다. 그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면 작은 방이 비좁게만 느껴졌다. 아편에 찌든 중독자처럼 도서관으로 가 새로운 책을 빌려왔다. 세상은 적어도 책의 너비만큼은 머물 공간을 허락해 주었다. 도서관은 나를 품어주는 유일한 장소였으며 책은 말을 건네주는 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명절이면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분들을 홍천 고모할머니나 만덕 고모할머니라 불렀다. 세 들어 살던 집주인 아주머니를 큰방아줌마로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통장 댁이나 영천 댁, 광주 댁으로 불린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그리운 이가 모처럼 꿈에 나왔다. 꿈을 핑계로 안부를 전했다. 내게 서울은 그가 사는 곳이다. 담양하면 대나무를 떠올리고 영광하면 굴비를 떠올리고 통영하면 굴, 포항하면 과메기를 떠올리듯이 지역을 상징하는 이름이 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관계없이 서울은 그의 땅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포항에는 누구, 베트남에 누구, 광주에 누구, 용인에는 누구 그런 식이다. 나도 그들에게 통영에 사는 누군가로 인식되겠지. 살아온 날들도 지명으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의정부에서의 시간, 안산에서의 사건, 진주에서의 날들. 내가 머물렀던 그 때 그 장소들.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는 이들도 그러한 장소로 남았으리라. 몸은 갈 수 없으나 마음을 두고 온 장소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렴풋하게 장소가 지닌 힘을 느끼게 된다. 도서관이 내겐 그러한 장소였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장소였다. 고요에 몸을 맡기고 귀를 기울이는 장소. 그 시절 내게는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을 찾은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꼬맹이 때는 높아보이던 계단을 이제는 그 때의 나만한 자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오른다. 구름과 바다 빛으로 물들인 도서관 건물. 하늘색 공중전화 부스는 세련된 빨간 색으로 다시 칠했고 몰래 술을 마시던 도서관 뒤편에는 벤치를 놓고 햇빛을 막을 지붕까지 올렸다. 여덟 개의 계단을 다시 오르는데 참 많은 계절이 필요했구나. 코로나 때문인지 개인학습실은 비어 있고 종합자료실에는 신문을 읽거나 책을 고르는 몇 명뿐이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몇 명의 남녀. 잔뜩 꽂힌 DVD들. 낯설어진 건 세월이 흐른 탓일까. 생각대로 살아내진 못했지만 무수한 이야기를 품은 채 돌아왔다. 그 때 그 아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닐 테지만 서른 번의 봄을 살았다. 뜨거웠던 여름도 있었다. 졸업식 날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던 통영중학교 운동장에는 잔디가 심기고 육상 트랙이 깔렸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푸른 땀을 흘린다.

헤밍웨이는 품위를 잃지 않는 건 장소의 이름뿐이라고 했지만 충무 시는 통영시가 되어버렸다. 어린 나를 품어주던 충무시립도서관도 통영도서관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도남동, 용화사, 미수동 세 갈래 뿐이던 버스 노선은 100번에서 700번 대까지 복잡해졌고 번화가는 데파트에서 항남동, 항남동에서 무전동으로 옮겨 갔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옮긴 죽림은 매립지이니 원래 없었던 장소인 셈이다.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얻지 못해 터덜터덜 건너던 충무다리 옆에는 번쩍거리는 통영대교가 생겼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책방인 남해의 봄날도 전혁림 미술관도 그 때는 없었다. 주말에 약수를 뜨러 가던 미륵산은 케이블카가 생긴 뒤로는 길이 제멋대로가 되어 버렸다. 세 살 때부터 살았던 집은 폐가가 되었고 뛰어놀던 공터는 사라졌다. 실내화 가방을 빙빙 돌리며 걷던 골목은 큰 길이 되었고 횡단보도에는 마스크를 낀 학생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도서관은 남아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지닌 신성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도서관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품어주는 장소로 남아 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있는 한 세상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설혹 장소가 변하더라도 그가 향유했던 풍경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풍경을 지닌 힘으로 다음 장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전히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버스는 용화사 고개를 돈다. 변한 건 살아낸 덕분이고 변하지 않은 것도 살아있기에 보는 거겠지. 사는 게 녹록치 않아 세상에 자신을 위한 장소가 허락되지 않은 기분이 든다면 도서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우리가 머물 장소는 세상이 내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내어준 곳이니까. 세월에 밀려난 게 아니라 자신을 미뤄뒀던 것뿐이니까.


누군가 남긴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이 이곳에 있다.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다는 실감이 여기에 있다. 희망 따위 없는 삶이라 생각했지만 적어도 책을 읽을 정도의 빛은 항상 비추고 있었다. 햇빛이건 달빛이건, 반지하 원룸 형광등이건, 땀에 절여진 몸을 밀어 넣은 심야버스 불빛이건 말이다. 여행 따위 못 가도 아쉽지 않았다. 그래도 책이 있었으니까. 해외에 가지 않아도 우주를 헤엄치고 시간을 탐험할 수 있었으니까. 도서관이 있는 한 길을 잃어도 갈 곳이 있었다. 홀로 버려져도 날 위한 목소리가 있었다. 삶을 버티려면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도서관은 삶을 버티기 위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주었다. 도서관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었다. 그저 책을 읽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도서관을 이루는 책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오롯하다. 대단한 일이라야 도전일까. 지금껏 해온 선택들이 모두 도전이었다. 거창해야 모험일까.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겪은 모든 일이 모험이었다. 읽어보지 않으면 이야기의 무게를 알 수 없고 살아보지 않으면 이야기의 끝을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기보다 어쨌든 선택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아무 방법도 없다고 여기는 순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나타나는 거라고.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은 없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억울해 할 필요도, 시대에 뒤쳐질까봐 불안해 할 이유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계절을 살아갈 뿐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뿐이다. 생각한대로 되지 않은 건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이곳이 내가 와야만 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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