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by 김민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들도 있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지식을 쌓고 지혜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저 책을 읽는 행위 자체였다. 좋은 일이라고는 없을 때에도 책을 읽는 기쁨은 있었다. 현실에서 도망치는 거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글을 읽는 동안에는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삶을 버티기 위해 독서라는 행위가 필요했다. 몸은 시궁창에 있어도 마음은 우주를 헤엄칠 수 있었다. 단순한 도피만은 아니었다. 글은 단순한 활자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이야기에는 작가의 세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가 읽는 순간 내게 스며들었다. 작가들의 사유와 철학, 그들이 본 세상과 역사, 낯선 풍경과 신비한 이야기, 그들이 느꼈던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 상실과 수용 같은 감정들도 내게 스며들었다. 황홀한 스며듦을 경험한 사람은 독서라는 행위에 중독되고 만다. 중독이라 불러도 좋다. 도피라 말해도 좋다. 언제라도 책을 펼치는 순간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지탱하니까.


어릴 때 먹던 비파 열매처럼 달콤한 문장이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은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었다. 그녀의 색은 블루, 해가 뜨기 직전의 파랑 혹은 바다의 푸름이었다. 조금 깊어지기 위해 필요한 색깔. 영혼의 무지개를 위해 필요한 색깔이었다. 그녀의 문장은 다정했다. 그녀의 책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동네 같았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라버린 화분에 매일 물을 주던 때였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조차 모호했다. 무수한 오늘이 밀려와도 나는 여전히 어제에 있었다. 무언가 끝나길 바라면서도 이대로 끝나길 두려워하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문장이 나를 안아주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서글퍼도 찬란한,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의 소중함이 그곳에 있었다.

전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여자와 동거하는 여자도, 어린 딸을 데리고 떠돌며 그 시절의 남자를 그리워하는 엄마도, 서로의 남자친구까지 공유하는 자매도, 게이 남편과 알코올 중독인 부인도, 친구의 아들을 만나는 여자도, 엄마 친구와 만나는 남자도, 부모가 남긴 유산으로 책만 끼고 사는 중년도, 아빠가 다르고 엄마가 다른 형제들도 그녀의 공간 안에서는 온전한 존재였다. 저마다의 삶을 납득시키는 힘이 그녀의 문장에 깃들어 있었다. 당연하지 않아 보이는 것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하는 다정함이 있었다. 아무리 소란한 사건이라도 보통의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별난 것들을 보통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이, 보통의 것들을 찬란한 빛으로 감싸는 손길이 있었다.


결핍된 것들에는 결핍된 것만의 충족이 있는 법이니까. 독특하다고 잘못된 건 아니며, 엉뚱하다고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평범하지 않다고 죄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삶은 원래 오묘한 거니까.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과 상황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일방적인 판단 아닐까. 이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정상적인 거라는 편견에 맞서는 나긋나긋한 저항. 상냥한 태도로 타인의 삶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폭력이라고, 다정한 말투로 저마다의 삶에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억압이라고, 일반적이라는 기준은 결국 타인의 말이거나 자신만의 생각일 뿐이라고, 상식은 사람보다 위대하지 않고 도덕은 인간보다 위에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아이는 왜인지 물으며 어른이 되지만 이유를 묻지 않으며 어른이 된다. 어떤 상처는 보듬어주고 어떤 흉터는 모른 척 할 수 있어야 어른이 아닐까. 공감은 자신의 공간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겠지. 그녀의 문장은 하모니카 소리처럼 투명하게 마음을 감싸주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끌어안은 그녀의 문장이 스며들수록 내가 소유한 삶의 형태를 납득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나를 용서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공간은 모든 것을 담았던 장소임을 깨달았다. 불행이 닥치면 순서 같은 걸 따질 필요 없다. 일단 사건이 일어나면 원인을 알아내도 소용없다. 독화살에 맞아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쏘았으며, 화살을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활의 색깔이 어떻고 살촉은 어떤 모양인지 알아내려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저마다의 선택을 할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일은 나의 ‘일부’ 가 되는 것이다. 한 때 전부였던 것을 자신의 ‘일부’로 포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성장’이겠지. 어떤 사건이라도 나를 이루는 이야기가 된다. 인생에 기승전결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숨결, 나뭇잎의 감촉, 오늘의 풍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잊지 않은 이름은 지지 않는 꽃이 되고 잊어버린 이름도 길을 잇는 숨결이었다.

슬픔을 떼어낼 수 없을 때면, 쓸쓸함이 일렁일 때면, 발걸음을 늦춰 그녀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맞대고 걸었다. 아픔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그녀의 문장에 엎드려 울었다. 그녀의 문장들 사이에 슬픔을 묻어두었다. 추락하기보다 타락하기를,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고 잘못된 길이라도 걸어주기를, 그것 또한 인생이 될 테니까. 그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일로 한참을 울었지만 소중한 기억을 온전히 남길 수 있었다. 그녀 덕분에 ‘한낮에도 어두웠던 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계절 사이에 갇혀 헤매던 어느 날. 내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갔다. 긴 꼬리를 가진 커다란 그림자였다. 나는 그것을 오래된 슬픔이나 미련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낙하하는 저녁’은 ‘별사탕이 내리는 밤’이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다. 그렇게 상실을 받아들였다. 어둠을 끌어안음으로써 스스로 빛이 되는 방법을 배웠다.

그녀는 말해주었다. 회복할 필요 없어, 병든 게 아니니까. 고치지 않아도 괜찮아. 고장 난 게 아니니까. 그것 또한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면 돼. 기쁨으로 향하고 아픔을 멀리하는 건 생명의 본능이고, 우리가 겪은 어떤 아픔도 무의미하지 않은 건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때문이야. 아픔이 우리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을 위한 일이야. 당신은 우주의 일부이기에. 함부로 축약해서는 안 될 소중한 무언가가 여기에도 있어. 반짝이지 않는 순간은 없어. 지금을 사랑해주지 않았을 뿐이야.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이 순간을, 이 사람을, 이 지금을 사랑해야지. 무언가를 남기려 애쓰지 않기로 하자. 그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돌이키지 않아도 좋을 지금을 살아내기로 하자.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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