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필사를 한다는 건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나는
시인의 일생과
감정과
그리고
창작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때문이다.
시 한 편에 온전히 보이기 때문이다.
지워지기 쉬운
그래서 지워지기도 했을
추억이 오는 것이다 - 그 기억을
아마 세월은 떠올려 볼 수 있을
추억,
내 두 손이 많은 시들을 필사한다면
필경 시인이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은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로 손꼽힌다.
한 번 읽어서는 느끼지 못할, 곱씹을수록 방문객의 시적인 매력이 극대화된다.
마치 앞이 안 보일 만큼 거대한 덩어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며 반복되는 장면이 희미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방문객 시를 필사하고 모방하면서 되뇌어 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끊는 사회에서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만큼 큰 심적 부담이 있는 관계 맺기!
특히나 여럿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아끼고 즐기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는 더욱 부담이 크다.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사람과의 대면은 감정 소모가 커서 책 속 등장인물들이나 작가들이 쓴 글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걸까?
시나 책을 읽다 와닿거나 간직하고 싶은 글귀를 필사하는 게 어찌 보면 간접적인 관계 맺기라 생각한다.
글쓴이의 그 당시 상황과 감정을 짐작해 보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혼자서 대답하고 수긍하기도 한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끝까지 애쓰며 헤아리다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엿보기도 한다.
흐릿했던 생각이 점점 명확해지면서 확신이 차면 책과 더 가까워졌단 생각에 괜스레 웃음이 난다.
그런 점에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은 마음이 맞는 이들과 시 낭송회 같은 기회를 통하여 몇 번 더 읊고 싶다.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온전한 나만의 시로 재탄생시키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