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는...
검은 정장을 걸쳐 입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남자
창백한 것도 아닌 새하얀 얼굴을 한 채 걸어오는 남자
검은 정장은 옷자락의 펄럭임에 한순간에 검은 도포를 펼친다.
눈앞에서 흐르는 검푸른 파도
일렁이는 형체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들
쩍쩍 달라붙는 흙
뒤틀리다 못해 찌그러진 입속에 썩어 문드러진 살들이 무더기로 있었다.
세 명의 여자는 서로 머리카락을 엉키며 서로의 머리를 뜯어내려고 한다.
세 명의 여자 뒤에 있는 거대한 고목나무는 그 자체로 웅장함을 준다.
고목나무는 불길함을 느끼게 해주는 부적들을 계속해서 떨어트리고
나는 한 손에 부적을 쥐고 검은 도포의 남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말하고 또 한 번 명한다
'내가 명하노니, 다시 돌려놓아 주어라.'
눈을 떴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