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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자작시 / 창백한 얼굴

눈을 떴을 때는...

by 한 줄이라도 끄적

아들의 자작시




창백한 얼굴




검은 정장을 걸쳐 입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남자

창백한 것도 아닌 새하얀 얼굴을 한 채 걸어오는 남자

검은 정장은 옷자락의 펄럭임에 한순간에 검은 도포를 펼친다.



눈앞에서 흐르는 검푸른 파도

일렁이는 형체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들

쩍쩍 달라붙는 흙

뒤틀리다 못해 찌그러진 입속에 썩어 문드러진 살들이 무더기로 있었다.



세 명의 여자는 서로 머리카락을 엉키며 서로의 머리를 뜯어내려고 한다.

세 명의 여자 뒤에 있는 거대한 고목나무는 그 자체로 웅장함을 준다.

고목나무는 불길함을 느끼게 해주는 부적들을 계속해서 떨어트리고

나는 한 손에 부적을 쥐고 검은 도포의 남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말하고 또 한 번 명한다

'내가 명하노니, 다시 돌려놓아 주어라.'



눈을 떴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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