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의 이사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분양받고 거의 삼 년 가까이 기다려 온 날들이다. 입주자 카페와 단톡 방에서 새 아파트가 조금씩 올라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주위 인프라를 확인하면서 지내온 세월이었다. 드디어 다음 달 중순에는 입주 사전 점검을 가게 되었다. 요즘은 즐거운 일이 거의 없었는데 새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주 주말에는 이사를 위해서 묵은 짐을 정리했다. 신발장에 몇 년씩 묵혀있던 축구 공부터 시작해서 튜부, 돗자리까지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렸다. 신발을 정리하다 보니 막내가 초등학교 때 열심히 타던 인라인스케이트가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때가 좀 끼긴 했지만 거금을 주고 산거라 아직은 멀쩡했다. 옆 집 꼬마가 생각났다. 다짜고짜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만에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아유, 우리 집에는 그거 있어요!"
퇴짜를 맞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층에 있는 꼬마가 생각났다. 바로 계단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또 초인종을 눌렀다. 또 한참만에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내친김에 헬맷이랑 무릎보호대까지 다 주고 왔다. 그냥 버리기 아까웠는데 고맙게 쓸 새 주인을 찾아주니 나름 보람이 있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리된 신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쾌감과 뿌듯함이 올라왔다.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지금 아파트는 버리고 비우는 중이지만 새로 이사 갈 아파트는 채워야 한다. 큰 평수에서 작은 평수로 이사 가기 때문에 지금 쓰는 가구는 거의 다 버리고 가야 한다. 소파부터 시작해서 애들 책상, 침대, 식탁까지! 작은 평수에 맞는 가구들로 새로 채워야 한다. 워낙 작은 평수로 이사 가는 거라 애들 방 가구는 붙박이 가구로 맞춤 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사야 할 가구는 소파와 식탁 정도이다. 소파는 작은 사이즈의 밝은 색 위주로 고르기로 한다. 식탁은 좁은 주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확장형으로 골라본다.
결혼해서 이십 년이 넘도록 이렇게 찬찬히 이사 갈 집을 어떻게 꾸밀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면서 애 셋을 키우면서 허둥지둥 닥치는 대로 살아온 세월이다. 이삿짐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못 쓰거나 안 쓰는 물건을 버릴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이사는 포장이사로 청소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대로 살았다. 집은 그냥 잠시 퇴근해서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었다.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애들도 이제 다 자란 지금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집을 꾸며볼 여유가 생겼다. 너무 감사한 시간이다. 나의 보금자리를 내가 주인이 되어 챙길 수 있다는 것! 이제까지의 삶은 육아와 직장에 쫓기면서 산 허깨비의 삶인 듯하다.
이번 주는 그릇을 정리해보련다. 결혼하면서 근 이십 년 넘게 끌고 다닌 그릇들이다. 친정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릇 집에 가서 이것저것 산 것을 이십 년 넘게 끌고 다녔다. 그중에는 그 긴 세월 동안 겨우 한 두 번 정도밖에 안 쓴 것들도 있다. 옛날 그릇이라 요즘 스파게티를 담으려고 해도 마땅한 것이 없다. 다 부피만 차지하지 쓸만한 것들이 없다. 새 집에 어울릴 만한 브런치 세트로 식구 수만큼만 장만해봐야지! 요런 소소한 기쁨으로 행복한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