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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11. 2023

감자가 아니라 사랑이 고팠어!

카톡~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자 별로 반갑지 않은 메세지였다. 대학교 단톡방에 선배가 올린 글이었다. '스님이 감자를 많이 수확했으나 판로가 없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 연락주세요!' 스팸성 문자인 것 같아 조금 속이 상하려고 하는 찰나였다.


카톡~ 바로 답글이 올라왔다. '감자 주문할께요~ 친정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철마다 농사물이며 기름 짜서 보내주셔서 처치 곤란이라 짜증을 냈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채소 한쪽도 사먹으면서 철마다 어머니 보고싶네요~~' 갑자기 가슴 한편이 찡해지면서 아려왔다. 우리 집 싱크대 한 켠에도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주신 감자 한 푸대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이맘 때면 인터넷에 '감자 요리'를 검색한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에서 한 마녀 할머니는 감자로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감자 케이크, 감자 수프, 감자 스튜 등등. 커다란 국자를 손에 들고 뾰족한 삼각 모자를 머리에 쓰고 신나게 요리를 하는 마귀 할머니를 그린 동화책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도 그 마귀할머니 만큼은 아니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행사에 감자를 포슬포슬 분나게 잘 삶을 수도 있게 되었고 왠만한 감자요리는 꾀고 있다고 나름 자부한다. 작년에는 감자 스푸에 꽂혀서 애들에게도 많이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감자를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몇 달 뒤 열어보고는 모두 시커멓게 멍이 들어 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왠지 힘들게 농사지어 보내주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올해도 어김 없이 한 자루의 감자가 우리 집에 실려왔다.감자 자루에는 감자가 썩으면서 생긴 구더기도 함께 와서 한바탕 파리 잡기 소동을 벌였다. 감자 푸대를 씽크대에 붓고는 썩은 감자는 빨리 버리고 깨끗이 씻어서 냉장고에 저장했다. '어유~~ 이걸 언제 다 먹지!! 빨리 먹어 치워야 할텐데~~' 작년 일이 생각나면서 살뜰히 챙겨주시는 시어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하다 '감자채전'을 알게 되었다. 감자채를 친 다음에 물에 담가 전분을 뺀 다음 소금 간을 하고 후라이팬에 거의 튀기다시피 기름을 흥건히 두르고 익혀내는 것이다. 그 위에 피자치즈를 얹어서 함께 구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기름을 잔뜩 둘러서 튀겨낸 것이라 가장자리는 바삭바삭 거의 감자 과자 수준이다. 중독성이 강해서 한 자리에서 세 판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다. 덕분에 감자가 쑤욱 줄어들었다. 물론 감자를 깍고 채 썰고 지져내고 기름 튀긴 그릇의 설거지까지 모든 수고로움은 내 몫이다.  ㅠㅠ


'엄마, 감자 삶은 것 먹고 싶어!' 큰 애가 카톡을 보내왔다. '감자 삶아놓을테니까 집에 와라!' 

퇴근하자마자 감자를 수북이 냉장고에서 꺼내서 껍질을 깍고 채를 쳤다. 먼저 껍질 깍은 감자를 냄비에 담고 소금을 적당히 뿌린 후 삶아냈다. 그 사이 채 친 감자는 물에 불려서 전분을 빼냈다. 딸아이가 감자채전을 좋아할 것이 분명하였기에 한 네 판 정도 구워냈다. 


큰 애는 퇴근하고 와서는 허겁지겁 감자를 먹어치웠다. 포슬포슬 짭조름하게 삶아진 감자를 바로 원샷해버렸다. 감자채전도 맛있다면서 바로 두 판을 후루룩 해치웠다. 남자친구를 준다기에 다시 감자 껍질을 깍고 감자채를 쳐서 또다른 감자채전을 해주었다. 


감자를 후루루 쩝쩝 먹고 있는 딸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딸애는 감자를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이 고팠던 거였다. 여름 내내 손주를 위해 땡볕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뜨근한 사랑, 또 그것을 받아 식구들을 위해 부지런을 떨면서 감자 요리를 해대는 엄마의 살뜰한 사랑! 이런 사랑이 고팠던 것이다. 이런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으로 우리들은 힘든 삶을 버텨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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