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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n 29. 2020

천생연분을 부르는 손목 시계

50대 새로운 연애 도전기

연애결혼을 한 남편과 나는 예물과 예단도 다 생략하고 단출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도 남편은 시계는 좋은 걸 하자면서 오메가 시계를 그 당시에 50만 원을 주고 하나씩 사서 꼈다. 벌써 20년도 넘은 시계이지만 명품시계라서 그런지 시간도 잘 맞고 디자인도 그렇게 촌스럽지 않아 지금도 잘 차고 다닌다. 그런데 결혼할 당시에는 날씬했지만 애 셋을 낳은 지금은 군살이 붙어 할랑했던 시계가 손목에 꽉 낀다. 그래서 조금만 끼고 있다가 답답하면 잘 풀러 놓게 된다.


몇 년 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답답해서 시계를 끌러놓고는 방석에 두고 그냥 왔나 보다. 식당을 나왔는데 뒤에서 사장님이 내 시계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온다.

"저 시계를 두고 가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몇 주전 후배와 모임이 있어 양꼬치집에 갔을 때도 답답해서 시계를 끌러 놓았나 보다. 계산을 하고 차를 몰고 나오려는데 또 사장님이 달려 나온다.

"시계를 두고 가셨네요!"

"선배! 이거 선배 시계예요?"

"어! 내 시계네! 감사합니다."


오메가 시계면 딴에는 명품시계라서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탈만도 한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쯤 되면 슬슬 하늘의 뜻을 의심하게 된다.

'설마, 남편과 나는 천생연분? 결혼 시계도 계속 나한테로 돌아오고 말이야!'


어제는 순둥이랑 산책을 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남편이 딱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 가?"

"응 병원"

남편과 나는 이렇게 일부러 짜 맞추려고 해도 힘든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 몇 달 전에도 둘러둘러 순둥이와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저만치서 남편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둥아! 어디 갔다 와?"

남편이 반색을 하면서 순둥이를 맞는다(속으로는 내가 더 반가웠겠지만 무뚝뚝한 성격에 순둥이의 이름을 부른다고 애써 위안함).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인연 이런 것은 아닌지. 남의 편인 남편을 자꾸만 멀리 하고 싶어도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결혼 시계처럼 남편과 나는 계속 이렇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꼭 남편 차 옆에 주차를 하게 된다. 마치 사이좋은 부부처럼 내 차와 남편 차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것이 천생연분일까?


그러고 보면 남편과 나는 공통점도 많다. 둘 다 달달한 음식을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쇼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둘 다 크림빵과 잡채를 좋아한다. 밀어내고 싶어도 자꾸만 만나게 되고 잊어버리고 싶어도 다시 계속 나에게로 돌아온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서 아기자기한 맛도 없고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부메랑처럼 잃어버려도 계속 나에게로 돌아오는 결혼 시계처럼 항상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다. 며칠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50대에 남편과 새로운 데이트를 시작한다는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자꾸만 서운한 것을 들춰내 밀어내지만 말고 이제 내가 남편을 품어볼까? 그리고 우리도 50대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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